베이징 싼잉탕 사진예술센터에서 열린
한 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입니다. 미국 현대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와 그의 사진 세계를 사랑하는 십여 명의 중국 작가들 작품을 함께 내건 일종의
헌정 전시였는데요. [Resonance - A Tribute to Robert Frank]라는 전시 제목처럼 로버트 프랭크에게 바치는 헌사였습니다.
전시장
전경
로버트 프랭크는 현대 사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진가입니다. 한 사진사가는 사진의 역사가 모던에서 현대로 넘어오게 된 계기 중 하나로 1958년 출간된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들>을 꼽을 정도지요.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진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싼잉탕 전시에는 프랭크의 오리지널 프린트도
몇 작품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유독 관심이 생겼습니다. 1961년으로 표기되어 있는 사진은 찰스 진이라는 한 개인 컬렉터의 소장품이었는데요.
(이분은 유명한 컬렉터로 개인 소장품으로 별도의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1))

New Jersey, Robert Frank, ‘61
필자가 흥미를 갖게 된 건 다름 아닌
촬영 연도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1960년대는 로버트 프랭크가 사진을 거의 찍지 않고 영화 제작에 몰두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인들>
출간 이후, "스틸(still)” 사진이 아니라 더 많은 내러티브를 말할 수 있는 "움직이는” 이미지 - 영화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60년대는 가끔 의뢰를 받고 작업 하긴 했어도, 3) 프랭크의 사진 커리어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1961년 사진이라니 궁금해질
수밖에요. 하지만 사진에 적혀 있는 정보, “New Jersey, Robert Frank, ‘61” 만으로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갤러리 담당자에게 혹시 컬렉터가 어떤 기회로 이 작품을 구했고, 더 정보가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말해줄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없다고 하더군요.
자, 이럴 땐 뭐가 필요할까요? 예,
구글이죠! 그런데 이미지 검색도 하고, 로버트 프랭크의 1960년대 행보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다양한 키워드로 검색해도 딱히 나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영화가 아닌 사진과 관련된 프랭크의 행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더군요.

구글
이미지 검색 화면. 대부분 중국의 전시 소식 기사만 나온다.
그런데 더 이상의 정보는 없는 건가라고
생각했을 때쯤 자료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로버트 프랭크 컬렉션이었는데요. 작가가 직접 기증한
컬렉션은 193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전 생애에 걸친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리스트도 오리지널 프린트와 컨택트 시트, 사진집들과 영화 필름, 그리고 네거티브 원본과 각종 서류까지 거의 모든 자료를 망라했습니다.

NGA 로버트 프랭크 컬렉션
혹시 여기서 필자가 찾는 사진을 확인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60년대 사진 중 스캔본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네거티브 항목을 들여다봤습니다.
컬렉션 전체로는 약 3,000여 개의 네거티브가 있는데, 1960년대 초반으로 시기를 줄이니 수백여 개로 리스트가 줄었습니다. 다시 1961년으로
시기를 특정하니 드디어 80여 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볼 수 있겠지 하고, 제목을 읽어 보는데 한 제목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Angels in appliance store window (후략)”. 이거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지가 없으니 바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요.

전자제품
가게 창가의 천사와 케네디 취임식 3
그래서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담당자에게
작품 사진과 함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혹시 필자가 찾는 사진이 해당 네거티브에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하면서, 사진을 만나게 된 사연을 적었지요. 그런데
담당자는 다른 업무들 때문에 자신이 직접 확인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겠지요?
한 번 더 메일을 보냈습니다. 정말 많이 바쁘겠지만, 혹시 해당 네거티브의 이미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을지 문의했지요. 그리고 며칠 뒤… 두둥!

NGA의 로버트 프랭크 컬렉션 1990.28.3260
친절한 담당자가 네거티브 스캔을 떠서
보내 줬습니다! 들뜬 마음을 부여잡고, 이미지를 열어 보니, 역시! 찾아 헤매던 이미지가 들어 있더군요. 자, 여기까지 이 작품이 로버트 프랭크가
1961년에 찍은 사진이 맞는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우선 프린트의 프레임에 적혀 있는 장소는 뉴저지인데, 컬렉션의 네거티브 자료에는 "...케네디 취임식 3”이라는 설명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컨택트 시트 위쪽 사진들을 보면 사람들 뒤로 미 국회의사당이 보입니다. 순서는 조금 섞여 있지만, 어쨌든 비슷한 풍경이 연속한 프레임 번호(14~64)에
있음으로 이 컷들은 워싱턴에서 찍었다는 추정이 가능했습니다.
그럼 어째서 필자가 찾은 사진은 뉴저지일까?
프레임 번호(65~71) 뒤쪽이 비어 있는데 워싱턴에 다녀와서 찍은 사진일까? 아니면 오기? 마지막 컷을 보면 바닥에 눈이 조금 쌓여 있는데 케네디
취임식이 있던 당시 워싱턴이나 뉴저지에 눈이 내렸을까?
그래서 다시 한번 검색에 들어갑니다.
먼저 날씨를 찾아보니 1961년 1월에는 그해 겨울 중 세 번째로 큰 폭설이 미 북동부에 내렸습니다. 그러니 눈이 들어간 풍경은 워싱턴이나 뉴저지
양쪽 다 가능했겠네요. 다음은 비슷한 시기에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이 들어간 기사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갔다면 작업 의뢰를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NGA의 컬렉션에 따르면 1961년 [Aperture] 9호와 1962년 스위스 매거진 [Du]에 실린 프랭크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1961년 기사는 JSTOR 사이트로 확인해 보니 해당 이미지는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아쉽게도 [Du]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고요. (이베이에서
500달러에 파는 게 하나 있던데 그렇게까지 확인할 있은 아니다 싶더군요.)
NGA의 로버트 프랭크 컬렉션 1990.28.3260
다음은 혹시 당시 NYT 같은 잡지의
취임식 기사에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이 실린 것은 없는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검색에서 나오는 것은 없었습니다. 사진의 출처가 궁금해서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옥션 하우스의 로버트 프랭크 사진 경매 히스토리를 뒤져 봤는데 역시 비슷한 이미지는 나오지 않았고요.
이리저리 검색해서 네거티브 원본에 연필로
체크해 놓은 천사 사진이라도 있을까 했는데 역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 이번에는 여기쯤에서 접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궁금증은 언젠가 워싱턴에
갈 때를 대비해서 남겨 두려고요. 그런 날이 오면 NGA의 컬렉션에 있는 네거티브를 일일이 보면서 1960년대의 로버트 프랭크는 무엇을 담았을지
보고 싶네요.
각주 1) “Photography from the 20th Century: The Private Collection of Jin Hongwei” https://www.smartshanghai.com/event/35979 2) “An interview with Robert Frank” https://americansuburbx.com/2011/12/interview-robert-frank-if-an-artist-doesnt-take-risks-then-its-not-worth-it-2007.html 3) https://www.nga.gov/features/robert-frank/photographs-and-film-1959-8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