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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일어난다 | ARTLECTURE

봄이 일어난다

-고사리 개인전 : 드는 봄,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 Springtime Delight,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Insight/
by 김진주
봄이 일어난다
-고사리 개인전 : 드는 봄,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 Springtime Delight,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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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기후변화로 계절의 변화가 전과 같지 않아
봄과 가을이 야속하리만큼 짧게 느껴집니다.
계절을 느끼기에 그 시간이 너무 짧아,
봄과 가을이 없어진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도 가을도 포기를 못하겠습니다.

특히 봄은 추운 겨울을 견딘 후 맞이하는 계절이라 그런지, 유난히 반갑습니다.

모두에게 매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봄이 있을 겁니다.

올해의 봄을 만나기 앞서,
각각의 다른 전시를 통해 만난 3명의 예술가가 전하는 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봄을 엿보며,
우리의 봄을 기대해봅니다.


고사리 개인전 : 드는 봄

 

 

“‘봄이 온다라는 말이 인간중심적인 말이라는 거 아세요?” 작품설명을 해주시던 작가님의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거리낌 없이 썼던 말이었고, 문학적인 표현이라 주장해볼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며, 제 때에 맞게 변화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할 뿐, 상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절로 수긍이 되었습니다.

 

 

 

“‘입춘(立春)’들 입()’자를 쓰지 않고, ‘설 립()’자를 쓰는데,

이것은 봄이 우리에게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남동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추위에 얼어붙었던 땅과 물, 생물들이 움직이고 일어서는 절기에요.”

 

 

 

절기에 대한 설명을 더해주실 때, 지금까지 느껴왔던 봄에 대한 감각들이 향수가 일 듯 머릿속에 불러졌습니다. 도시 속에서 잘 조성되어 느낄 수 있는 인위적인 봄이 아닌, 얼어붙은 땅이 녹아 땅 속 생물들이 분주하게 움직임을 바라보며 흙 놀이를 하던 순간, “할머니, 이 꽃은 이름이 뭐에요?”라고 질문 폭격을 던지며 들꽃들을 만났던 순간, 경칩이 되면 진짜 개구리가 우는지 보겠다며 집을 나섰던 어린 시절의 봄들이 피어올랐습니다.

 

 

전시는 총 3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땅과 자연에게 받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으셨다는 말에서 작가님이 체감한 봄이 얼마나 풍요롭고 따뜻했는지 담겨있었습니다.



고사리, <퇴비언덕>



작품 <퇴비언덕>은 작가님이 실제 농사에 쓰기 위해 직접 만든 퇴비와 전시장에 퇴비가 놓인 첫 주에 촬영한 영상이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여타의 전시에서도 실제의 공간을 가져온, 혹은 묘사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뭔가 달랐습니다. ‘? 살아있는데?’ 꿈틀거리는 생물들을 목격한 순간, 프로젝터의 빛이 닿은 자리에 피어오른 초록 생물체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깨닫고는 놀라움에 뇌가 저릿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연을 흉내 낸 것이 아닌 진짜 자연이 살아있었습니다. ‘퇴비고, 빛이 있으니 새싹이 자랄 수도 있지.’라고 논리적으로 새로울 것이 하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위에 놓인 퇴비 속에서 새 생명이 움튼 것이 어찌나 놀랍던지요. 한참을 작품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작가님에게 의도하신 건지 물어보았습니다. 공간의 습도를 맞춰놓기는 했지만 이렇게 싹이 틀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자연을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 스스로에게 놀라며,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음을 자각하며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한 초록 잎을 바라보며,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그 강인한 생명력을 바라보며, 함께 살고 있음을 되새겼습니다.



 작품 <퇴비언덕>에 전시 중 피어오른 새싹



퇴비언덕을 뒤로 하니, 어두운 전시장 벽이 보였습니다. 이 벽이 작품인건지, 그냥 공터인건지, 무엇을 감상해야할지 몰라 당황한 흔들리는 시선 앞에 동그란 무언가가 포착됐습니다. 움직임을 따라가니 동그란 물체가 하나 더 나타납니다. 해와 달. 지구의 입장이 되어 해와 달의 변화를 바라보며 이 움직임에 따라 기후가 변하고 땅과 공기가 변하고, 그렇게 15일 단위로 24절기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절기를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기후 변화 속에서 지구가 순항 중이던 시절의 절기는 선조들의 지혜로만 여겨졌고, 매일 아침 날씨와 미세먼지를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며 자연을 수치로 확인하는 하루살이 일상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지구는 움직이고, 태양의 주변을 365일 부지런히 돌며, 지구를 중심으로 달도 27.3일에 한 바퀴씩 부지런히 돌고 있습니다. 작품 속 해와 달의 움직임을 함께 따라가면서 지구도, 해와 달도 여전한 것 같은데, 자연의 주기를 느끼는 것을 왜 놓고 있었는지, 나의 리듬과 자연의 리듬이 관계가 소원해진 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고사리, <해와 달> 전시 전경 1


고사리, <해와 달> 전시 전경 2


고사리, <해와 달> 전시 전경 3


고사리, <땅의 별> 중 일부.



전시장의 출입구에 위치한 작품 <땅의 별>4단계로 만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작품 사이사이를 지나가게 되어 조심스럽게 마주하게 되었고,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때 그 친숙함에 미소를 짓게 되었고, 그림자와 어우러진 모습이 멋스러우면서 또다른 존재로 느껴져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으며, 자세히 들여다 본 모습에서는 생기를 잃은 마지막 얼굴을 보게 되어 마음 한켠이 묵직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채취한 자연의 일부를 매달아 그 생명을 조금 유예시켜 별처럼 매달아 놓은 작품으로 <땅의 별>이라는 제목이 매우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식물의 나고 자란 뒤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그 여정을 기억하자고, 그리고 땅으로 돌아가 다음 생명들이 돋아날 토대가 되어주는 그 모습이 얼마나 빛나는지 아느냐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땅이 얼고 녹기를 반복해

흙이 부드러워지길 기다리듯,

각자의 겨울을 지나

봄이 주는 온기와 희망을 세우는 시간이 깃들기를 바란다.”

 

-작가 노트에서



고사리, <땅의 별>




자연의 리듬 안으로 들어가 나의 리듬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봄의 얼굴을 알게 되는 건 아닐까요? 아직 진짜 봄을 만나지 못한 건 아닌지, 내가 아는 봄은 어떤 봄인지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이번 봄은 좀 더 다르게 느껴볼 수 있길, 언젠가는 24절기의 변화를 몸으로 온전히 알아차릴 수 있길, 나의 변화를 기대하는 봄입니다.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 Springtime Delight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의 특유의 색감은 틀림없이 봄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봄의 하늘과 들판, 언덕, 꽃을 담고 물들인 그녀의 사진은 분홍빛 봄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7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이 사진전은 그녀가 담은 여러 모습의 봄과 여행하며 포착한 여러 도시에 대한 그녀의 재치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섹션, 꽃 사이사이


 

‘꽃 사이사이’ 섹션의 전시 전경 / <사라의 행복>



작품의 이름을 보는 것이 전시의 묘미 중 하나였습니다. 봄의 여러 모습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집니다. 그녀의 사진은 포르투갈 한 지방의 꽃 밭 속으로, 도심 속 오아시스인 꽃 앞으로 인도하며 마치 여러 꽃향기를 맡아보라고 권유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섹션, 봄의 꿈

 


<즐거운 오후 II>  /  <환상적인 이야기>



이 섹션에서는 그녀가 르네 마그리트에게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초현실적인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뻔하고 현실적인 것을 찍은 다음 색을 이용해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작업 비밀이라고 섹션 설명에 쓰여 있었는데요. 그녀의 사진은 즐거운 상상으로 이끌어줍니다.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을 여인의 모자 너머 표정을 상상하게 되고, 들판에 누워 자신의 얼굴 위로 거울을 들고 있는 사진에선 그 거울에 비춰질 혹은 나타날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세 번째 섹션, 홈 그리고 컬러

 


Colour is the most important part of my work.


 

이 섹션에서는 테레사 프레이타스는 자신의 고향, 포르투갈의 봄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컬러는 자신의 작업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햇빛 샤워에 동참한 널려있는 빨래와 꽃나무의 모습에서, 천상의 노랑이라고 일컬은 사진 속 노랑에서 그녀의 머릿속 팔레트에는 어떤 천상의 색깔들이 있는지 더욱 더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을 믿게 됩니다.



<햇빛 샤워> / <천상의 노랑>




네 번째 섹션, 테레사의 작업실


 

그녀의 작업실을 둘러본 후, 한 쪽 벽면에 테레사 프레이타스에 대한 5가지 사실이 쓰여져 있었는데, 마치 추리 소설에서 단서를 주는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오래된 친구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 하듯이 쓰여 있어 작가에 대해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사실로 거장들의 회화 작품과 애니메이션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쓰여 있었는데, 혼자 추측해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전 데이비드 호크니와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다섯 번째 섹션, 도시의 봄

 

봄은 자신이 여행하기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말한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팜스프랑스, 상트페테르부르크, 몰타, 부다페스트, 베니스 등의 여러 도시의 봄을 그녀만의 색감으로 풀어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에 그녀가 칠한 봄은 존재할 것 같지만 실제로 만나볼 수 없는 동화 속 어딘가처럼 어릴 적 가장 좋아하는 색의 크레파스로만 칠하던 나의 인형의 집과 닮아있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상상이 현실이 된 것만 같은 사진 덕에 5살 시절의 로망을 이룬 것 같은 기분 좋음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아침 일과> / <차이나타운 II>


<망보기> / <인형의 집>




여섯 번째 섹션, 라 무라야 로하



<바다 한 조각> / <상승하는 미로 II>



 

라 무라야 로하는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인 리카르도 보필이 설계한 포스트 모던 스타일의 아파트라고 합니다. 건축물의 공간 곳곳에 그녀의 상상력을 더하자 공간의 틈은 바다를 담을 수 있게 되고, 미로같이 생긴 건축물이 위로 떠오르는 것만 같은 움직임을 느끼게 만듭니다.

 


 

 

일곱 번째 섹션, 물가에서

 

테레사가 담은 해변은 분홍빛 모래와 바다의 푸른빛이 대조를 이루며, 사진 앞에 계속 머물게 만듭니다. 핑크 샌드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이 사진들은 테레사의 색감을 알리기 시작한 초기작이라고 합니다. 색은 우리의 인지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녀의 색감은 알고 있던 모래의 촉감마저 다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자연의 색에 나만의 색감을 더한다면 어떤 색을 고르게 될까요? 나만의 색을 더한 해변을 상상해봅니다.



<파우더 위의 놀이터> /  <해변 no.2>



소위 말하는 핫플에서 진행하는 사진찍기를 위한 전시는 아닐까.’라는 잠깐의 염려가 그녀에게 너무 미안할 만큼 테레사의 사진전은 보는 내내 눈과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기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내내 느낄 수 있었던 테레사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그녀가 품은 순수한 상상력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테레사의 색으로 칠해진 봄, 여러 도시의 봄을 만나면서, 올해 만나게 될 봄의 색깔은 어떨지, 저는 어떤 색깔로 이 봄을 채워나가게 될지 기대합니다.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박수근 선생님의 전 생애의 작품과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 이 전시는, ‘국민 화가라는 타이틀을 잠시 잊고, 그의 자취를 따라가며 그림과 삶을 느껴볼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시 제목의 나목은 일제강점기에 이어 한국전쟁까지 참혹한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과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며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 선생님을 상징합니다.

불타는 지구 속에서 코로나19 펜데믹을 겪고 있는 지금, 봄을 기다리는 그 처지가 현재 우리들과도 닮아 이 전시에서 만났던 봄들이 떠올랐습니다. 1930-60년대의 봄, 그가 느꼈던 봄은 어떤 봄이었을까요.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던 그에게서 현재의 어려움을 견뎌낼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춘일(春日)>, 1950년대, 종이에 수채




그의 그림 속 봄날은 생명이 샘솟는 드라마틱함은 없습니다. 다만 묵묵히 시간이 흘러가고 묵묵히 봄은 움직입니다. 땅이 녹고, 마당에는 닭들이 움직입니다. 웅크리고 있던 기와들이 한결 따뜻한 빛을 마시며 혈색을 되찾고, 그렇게 봄이 언제나처럼 흘러갑니다.



<봄이 오다>, 1932,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  <봄>, 1937,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1932, 1937년의 봄은 과연 어떤 봄이었을까요.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마른 가지가 유난히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때가 되면 분명 추위가 물러간다는 것이 일말의 희망이 되었을까요.

 

 

미군과 전람회라는 두 번째 섹션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갔던 작가의 삶과 그림, 그리고 PX초상화부에 함께 일하며 그를 목격했던 박완서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의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소설의 한 대목은, 당시의 상황과 작가의 삶의 태도에 대해 유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의 봄에 대한 믿음, 그 의연함 . 우리도 이 겨울을 그와 같이 늠름하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 박완서, 나목, 1970

 


<꽃 피는 시절>, 1961, 캔버스에 유채



그림의 뒷면에 ‘Spring Season, 1961’이라는 메모가 없었다면, 봄 풍경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그림의 설명을 보고 앙상한 가지들을 눈으로 쫓아갑니다. 무성한 마른 가지를 쫓아 천천히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연두빛, 분홍빛, 섬세한 터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 봄이다!’ 그 발견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작가는 봄의 시작을 빨리 알아차렸던 걸까요?



<고목>, 1961, 종이에 수채



만개하진 않았지만 생동감이 넘칩니다. 두 그루의 고목이 아마도 겨울을 잘 보낸 것 같습니다. 이제 기지개를 켜며 흰 꽃을 나부끼겠지요. 봄을 노래해 줄 고목의 며칠 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춘일(春日)>, 1950년대 후반, 하드보드에 유채


<춘일(春日)>, 1950년대 후반, 하드보드에 유채



나는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도 채 오기 전에 봄 꿈을 꾸는 적이 종종 있습니다.

이만하면 얼마나 추위를 두려워하는가 짐작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계절의 추위도 큰 걱정이려니와

그보다도 진짜 추위는 나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 추위입니다.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사람도 늙어가는 것이려니 생각할 때

오늘까지 내가 이루어놓은 일이 무엇인가 더럭 겁도 납니다.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에는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박수근, 겨울을 뛰어넘어, 경향신문, 1961.1.19.

 

 

지긋지긋한 추위를, 더 매서워진 것 같은 겨울을 우리도 껑충 뛰어넘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동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마음 속에 작열하는 태양을 품고 봄을 기대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그래서, 이번 봄은

 

 

고사리 작가의 개인전에서 봄의 태동과 호흡을 더 넓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느껴보기도 하고,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사진전에서 생기 넘치는 색깔로 가득 채워진 봄을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통해 1930년대에서 1960년대, 그가 마주했던 봄, 추운 겨울을 담담하게 이겨낸 작가의 기백 또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3명의 작가들이 다른 시공간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 충실히 이야기 해준 봄의 모습들을 만나보며, 올해, 우리의 봄을 상상해봅니다.

 

아직은 패딩을 장롱 깊은 곳에 들여놓지 못하는 겨울입니다만, 슬슬 봄이 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니, 봄이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항상 당연하게 누리던 봄을 팬데믹으로 흘려보냈던 최근 2년을 돌아보며, 그래도 이번 봄은 좀 다르리라는 기대를 품습니다. 그래서 이번 봄은, 봄의 온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그 봄의 온기로 웅크리고 있던 모든 것들이 우뚝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글.김진주

 


전시 정보

 

고사리 개인전 드는 봄 | 2022.01.25. - 02.26. | CR Collective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 Springtime Delight | 2022.01.29. - 04.24. | 더현대 서울 ALT.1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 2021.11.11. - 2022.03.01.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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