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작품의 현대적인 조화
세계 3대 보석 브랜드 중 하나인 ‘불가리’는 컬러에 대한 조예가 깊다. 자연의 빛깔을 담은 컬러 젬스톤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지난 130년간 최상의 원료를 찾아다녔으며, 보석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철학적 탐구로 가치를 인정받는 브랜드이다.

보석이나 장신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는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불가리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하나의 제품을 작품의 수준까지 올린 기술력과 집요한 장인 정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시를 처음 봤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에 더 이목이 집중되었다면, 두 번째로 봤을 땐 불가리의 뛰어난 공예품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작품과 명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 공간 연출이 인상적이며, 미디어 아트와 배경 음악이 전시의 흥미를 높였다.


명품과 작품 그리고 미디어의 만남. 불가리 컬러 전시회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다채롭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전시회”라고 소개하고 싶다. 전시는 레드 룸, 블루 룸, 그린 룸, 멀티컬러로 구성되어 있는데, 불가리를 상징하는 젬스톤의 색깔로 나누어진 공간 구성이다.
전시의 시작인 레드 룸에서는 서예가 김종원의 「신화 1,2」와 로마 풍경이 담긴 이세현 작가의 신작 「골드 산수」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중아에는 콜로세움의 붉은 이미지를 상징하는 루비가 박힌 화려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레드 룸은 동양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현대미술 작품과 서양의 역사를 내포하는 공예품의 조화가 세련되면서도 강렬한 공간이다.
옆에 있는 블루 룸에 가게 되면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수경 작가의 신작 「구슬할망」과 대표작 「번역된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으며, 노상균 작가의 착시효과가 인상적인 회화 작품 「별자리」 시리즈를 푸른색 조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사파이어 기반의 우아한 장신구와 체험이 가능한 미디어 아트도 있어 차분하면서도 경쾌한 마음으로 작품과 명품을 관람하기가 좋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불가리의 색깔 그린 룸은 천연 재료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오순경 작가의 「오방신도」와 에메랄드가 정교하게 세공된 장신구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레드 룸과 블루 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이었지만 벽면에 거울을 붙여 초록 빛깔의 장신구들이 마치 하나의 숲처럼 보이게 만든 공간 연출이 인상적이다.
예술과 공예의 경계, 그리고 확장

멀티컬러는 앞서 언급한 레드·블루·그린 룸과는 조금 다른 결의 전시 공간이다. 공간 입구에 위치한 최정화 작가의 「코스모스」는 플라스틱 구로 만든 설치 작품으로 마치 샹들리에같이 화려하다. 불가리의 장신구들도 색 조합이 다양하고 아이스크림콘 모양의 브로치와 같이 새로운 시도가 흥미롭다. 보석으로 만든 명품과 공산품으로 만든 작품의 조합이 신선했는데,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브랜드와 현대미술의 시각 차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전시장 출구 쪽에는 광고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빠키 작가의 미디어 아트 「규칙과 불규칙의 순환」이 배치되어 있어서 전시가 더욱 풍부하게 느껴진다.

전시를 보면서 강하게 느낀 점은 예술과 공예의 경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말로 그 관계성을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지만, 정신적이 새로움을 추구하느냐 기술적인 완성도를 중시하냐의 기준으로 어느 정도 예술과 공예를 구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어느 장인의 공예품이 훗날 시대적 가치를 인정받아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또한 예술가의 작품이 시간이 흘러도 자가 복제만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공예 작품으로 바뀌기도 한다.
예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공예는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여 정교하고 세련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예술과 공예의 경계는 모호하고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성도 달라 보이지만, 좋은 작품과 제품은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이번 불가리 컬러 전시회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공예와 예술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 장르가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성은 그대로 유지했다는 지점이다. 예술과 공예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있는 기획자의 역량 덕분에 미술 작품을 보는 것을 선호하는 관객과 명품 장신구에 관심이 많던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통하여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확장한 시도, 불가리 컬러 전시회는 특별하면서도 온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