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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꾸고 있는 정원, 인류세의 풍경에 대하여 | ARTLECTURE

우리가 가꾸고 있는 정원, 인류세의 풍경에 대하여

-「플라가드닝」展-

/Artist's Studio/
by 이현희
우리가 가꾸고 있는 정원, 인류세의 풍경에 대하여
-「플라가드닝」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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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초등학생 시절, 때가 되면 자연보호에 관한 포스터, 글짓기 등이 숙제로 나왔는데, 꽃을 꺾지 말자. 나무를 심자.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자 등이 주제가 되곤 했다. 이때 내게 자연= 나무였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울창한 숲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환경이라는 문제의 단어와 함께 인간은 군림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구성원으로 생태계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당연한 이야기는 평소에는 와닿지 않지만, 미세먼지나 이상기후처럼 아주 가까이에서 감지될 때 우리에게 불안감을 넘어 공포를 느끼게까지 한다.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 역시 인류에게 충분한 무력감을 주었고, 코로나 19로 인해 인간의 활동이 줄자 자연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인간 존재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현대사회 인류는 자연환경에 지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으나 반대로 그 영향권 안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첸(Paul Jozef Crutzen)은 자연적 변화에 의해 정의되었던 이전의 지질시대와 달리 인간 활동이 지구환경이나 지구 역사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제안하며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확한 시작점을 언제로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학계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빠른 산업화와 함께 인간이 유례없는 환경적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연구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안산시 어반커뮤니티에서 진행 중인 아티스트그룹 이래(곽요한, 성왕현, 이현희)의 전시 「플라가드닝」은 이런 인류세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환경을 인류가 만들어가는 일종의 정원으로 상정하고 플라스틱처럼 일회적이고 가볍게 소비되는 시간 속에 쌓여나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도시개발, 플라스틱 소비, 식량 문제에 주목하며 자연을 효과적으로 통제한 인류의 성과가 야기한 불편한 지점들을 보여준다.  



곽요한, Leaves, 가변설치, 혼합재료, 2021 / 3곽요한, <Leaves>부분 (상단)

곽요한, Phragmites, 가변설치, 혼합재료, 2021 / 곽요한, Phragmites 세부 (하단)



곽요한은 도시개발의 과정에서 시스템에 의해 조형되고 관리되는 자연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Leaves]는 잎사귀가 그려진 4개의 캔버스, 흰색 칠이 되어 벽에 고정된 4장의 잎사귀 조화,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고정된 4장의 생 잎사귀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형된 잎사귀들은 전시가 시작될 때에는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의 잎사귀만이 시들어 형체가 변해버린다. 작품에 존재하는 세 가지 종류의 잎사귀 중 결국 자연을 모방해 만들어진 조화와 그림만 남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리고 가장 자연적이라 생각한 것 역시 인간이 도시를 가꾸기 위해 도로변에 세워둔 가로수에서 따온 것임을 알게 됐을 때에는 이들 간의 경계에 대해 혼란이 오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연출을 통해 인간이 규정한 시스템의 부조리와 그로 인한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안산시 인근은 간척을 통해 많은 것들이 바뀐 지역이다. 새로 그려진 해안선을 따라 염전과 어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이 땅들은 대규모의 공업, 산업지대와 계획도시로 변했고, 거주민들의 삶도 크게 바뀌었다. 도시화와 개발은 도시민의 생활 수준을 높여주었으나 시화호 오염과 같은 환경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곽요한의 [Phragmites]는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조성된 갈대 습지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색색의 화장용 스펀지로 제작된 인조 갈대들은 자연이 용도에 따라 관리되고,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현장을 담아낸다.




성왕현, PLASTONE, 가변설치, 혼합재료, 2021 / 성왕현,PLASTONE (상단)

성왕현, Pla-Gardening, 가변설치, 혼합재료, 2021. (하단)



성왕현은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변패하는 본질에 주목한다. <PLASTONE>은 플라스틱 폐기물들이 퇴적되어 재화의 가치를 지닌 광물로 변한다는 모큐멘터리 방식의 서사를 통해 ‘플라스틱 사회 000년 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플라스틱은 현대 생활상의 다양한 변화를 이끌었다. 가볍고 단단한 플라스틱은 조형의 용이성에 더불어 생산 비용까지 저렴했기에 우리 일상생활 모든 부분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불과 1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플라스틱은 우리가 입고, 먹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의 재료가 되었다. 하지만 이 편리한 재료는 분해되는데 수백 년이 필요하고, 모든 곳에서 사용되는 만큼 지구 전역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PLASTONE>은 우리가 지층에서 이전 지질 시대 생태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듯 플라스틱이 현 인류의 증거이자 반짝이는 유물로 남을 것이라는 냉소적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품에서처럼 지층에 각인된 플라스틱이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으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나갈지 모를 일이다. 

[Pla-Gardening]은 작은 텃밭 위에 건설되고 있는 마천루를 보여준다. 아크릴 모듈은 아직은 낮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단순한 구조는 끝없이 쌓여 올라갈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바탕의 이미지는 아크릴 모듈을 투과하며 분절되어 녹색의 형태만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현희, Towards a newer corn 더 새로운 옥수수를 향하여, 단채널 비디오, 가변설치, 2021


이현희, Towards a newer corn, steel cut 12 (좌) / 이현희, Abstract in Schale, 프로젝터, 샬레, 테이블 외, 가변설치, 2021 (우)



이현희는 자연식품 생산 이면의 구조적 문제에 주목한다. <Towards a newer corn-더 새로운 옥수수를 향하여>는 가정의 4인용 식탁의 상판을 미디어 월로 제작해 식탁을 둘러싼 논쟁의 장을 구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식량문제를 둘러싼 경제적 욕망과 이를 포장하는 수사학적 표현들에 주목하고 내레이션과 식탁 위 이미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을 보여준다.

식탁에 오르는 유전자 조작 식물에 대한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라고 불리는 이 식물들은 유전자 조작 식물, 유전자 편집 식물 등으로 불리는데, 생명공학의 산실이라는 옹호의 입장과 생태계를 교란하는 돌연변이라는 비판적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900년대 들어서면서 자급자족 형태의 농사에서 화학약품과 기계를 사용하는 농업으로 바뀌었다. 초국적 농업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해 농작물을 대량으로 신속하게 생산했다. 효율적 생산을 위해 제초제, 살충제와 같은 강력한 약품을 만들어 잡초를 골라냈고, 농업 기업은 본인들의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작물을 개발했다. 그리고 농부에게는 생산의 편의성을 준 만큼 특허권이라는 제약을 통해 산업을 통제하고 있다. 농업은 자연에서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일차 산업이라 분류하지만, 현대의 농업은 거대 자 본과 경제적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GMO의 대표 작물인 옥수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물이라 불리며 우리가 먹고 사용하는 것 곳곳에 사용되고 있다. 자연식품을 둘러싼 절대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환경적, 경제적 논쟁의 장이 되어버린 식탁을 가시화함으로써 식탁은 앉을 수 없는 불편한 장소가 되어버린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더 이상 내가 먹는 것의 본질을 알 수 없기도 하다. <Abstract in Schale>는 현미경의 이미지를 추상화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과 더 내밀한 구조적 문제를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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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그룹 이래는 곽요한, 성왕현, 이현희 세 명의 작가가 같은 주제에 대해 사고를 확장하는 형태로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인류세의 풍경은 익숙하지만 낯선 지점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대략 알고는 있지만, 그 편리함에 눈을 가리고 있던 문제들 말이다. 이래의 플라가드닝전은 다양한 매체와 형식으로 흥미로운 정원을 보여주고 있지만, 시각적 즐거움 저변에서는 어떻게 정원을 일구어야 할지 각자의 가치 지점에 대한 묵직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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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희. 시각예술작가이자 독립기획자. 아하하아트컴퍼니에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