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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화(沉默画)에 대하여…> | ARTLECTURE

<침묵화(沉默画)에 대하여…>


/Artist's Studio/
by 김성희
<침묵화(沉默画)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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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침묵은 소리가 없는 것인데 마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 된다. 침묵 앞에는 주로 무겁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침묵은 질량이 없는 것인데 어찌 모두가 무겁다 하는 것일까. 침묵의 질량 감은 충분한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침묵은 ‘깬다’라고들 한다. 질량과 함께 깨어질 수 있는 fragile한 속성이 있는 것이다. 마치 알이 깨어지듯이.

<침묵화(沉默画)에 대하여…

내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Tractatus, 1922) 中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가장 큰 것을 표현할 때는 가장 고요 해야 한다. (요한 요하임 빈켈만,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김지민 작가(b.1993)는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서구와 동양이라는 이분법적 표현과 문화의 혼종성에 대해 설치와 회화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 작가는 그녀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구권의 문화 속 동양인의 정체성과 언어, 그리고 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클래식 악기와 서구에서 전파된 종교와 종교음악 그리고 이 로 인한 문화에 대한 양가적이고 숭고적인 감정을 샹들리에(chandelier)를 이용한 설치작업과, 한국화 재료들을 통해서 표현 한다.서양의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클래식과, 성가대 그리고 샹들리에는 작가의 청소년기와 20대 전반을 보낸 영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향수를 보여줌과 동시에, 동양인이 받아들인 체화된 서구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고찰한다.


작가의 설치작업에서 샹들리에는 주연배우로 표현된다.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는 전시 공간을 하나의 무대로 상정한다. 그리 고 그곳에 숭고미를 드러내는 큰 그림과 같이 설치된 샹들리에는 오랜 시간 유럽/미국 중심주의로 흘러온 서구 중심주의 문화 와 언어습관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 일지도 모른다. 또한, 김지민 작가는 동양의 차(tea) 문화와 다양한 동양적 요소에 매료되어, 동양화 재료로 한국적인 언어를 캔버스 위에 표현해 낸다. 숭고라는 서양의 근대적 감각을 한국화의 요소로 풀어내며, 작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서구의 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 적인 감정을 추상적 언어로 전달한다.





설치작업인 <움직이는 샹들리에>(2017~2021)와<침묵화>(2020~2021) 시리즈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프로토타 입 템플(prototype Temple)을 형성하게 되는데, 작가 본인의 문화적 혼종성에서 비롯된 근현대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서 출발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문화와 국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 경계가 희미해졌지만, 작가는 동아시아에서 서양 문물을 처음 받아들이기 시작한 근현대 시대 그리고 더 나아가 동 서양이 서로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과거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각각의 문화가 결합되었을 때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표현해 나가고 있다.


현대예술은 과거부터 이어져 본 무거운 ‘숭고’와 이 개념을 파괴하는 시뮐 라크르의 가벼움이 교차한다. 김지민 작가의 침묵 시리즈는 현실을 묘사하기 위함이 아닌, 침묵과 함께 묘사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일상적 지식과, 능력 이상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이것을 설치작품과 연결하여 관객이 나의 인식 능력으로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어떠한 그것과 마주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작가의 경험에 의해 인지하는 무언의 감각들을 아이러니하게 서양을 향한 향수라는 감각으로 풀어낸다.


동시대에서는 여전히 경계 허물기와 융합을 위한 시도가 한창이다. 가상화폐를 통한 탈중앙은행을 시도하고, 끊임 없는 검열을 통해서 성차별을 바로잡기위해 노력한다. 동양인의 동양문화 서양인의 서양문화는 근대의 사고 방식에 힘을 실어줄 뿐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과거의 역사 속에 남아있는 가장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것과 가장 영국적이고 서양적인 것의 이야기를 개인의 경험을 통해 풀어내는 김지민 작가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보자. 김지민작가(Seoul, 1993)는 영국 런던예술대학교 소속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에서 파인아트 학사를 졸업한후,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Critical practice로 석사학위를 받은후, 현재 홍익대학교 회화과 박사과정중에 있다.


https://www.jeeminkim.org


<작가노트> 어쩌면… 회화는 음악보다 우월하다. 그 이유는 음악은 완전한 침묵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Vladimir Jurowski 1972~)가 시마노프스키(Koral Szymanowski 1882~1937) 스타바트 마테르의 합창에서 오히려 지휘봉을 내렸듯이[3], 숭고의 언어적 표현이란 불가능한 것, 오히려 침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회화는 침묵한다. 침묵 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소리이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 ~ 1911)는 천인의 성가[4]를 세 울 것이 아니라 침묵 했어야하지 않을까. 침묵의 표현이야말로 완전한 비트겐슈타인적 회화의 완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침묵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한자로는 “沉默”, 가라앉을 침(沉)과 묵묵할 묵(默)을 사용한다. 말 그대로 묵묵함이 가라앉는 것이다. 가라앉는 것에 대한 표현은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의 물감을 온전히 천에 스며들게 만드는 기법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최근 동양의 멋에 푹 빠져 있는 나는 먹을 물에 희석시켜 캔버스에 스며들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번지는 형태를 이용한다. 마치 헬렌 프랑켄탈러의 ‘적시고 물들이기(Soak stain)’ 처럼 스며든 얼룩과도 같은 모습이다. 먹의 사용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먹의 질감과 색상도 침묵을 표현하기에 충분히 적합하지만 가 장 큰 계기는 침묵의 발음에 있다. 침묵(沉默)은 중국어로 [chénmò]라고 발음되는데 먹물의 먹(墨) 또한 침묵의 ‘묵(默)’과 같은 성조 4성의 [mò]이다. 먹(墨)과 묵(默)을 바꿔치기 해도 발음은 똑같은 [chénmò]로 사람들은 차이점을 인지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뜻은 가라앉는(沉) 먹(墨)이 될 것이다. 따라서 코팅되지 않은 캔버스 천에 먹을 스미게 하는 방식으로 가라앉음을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회화의 첫 번째 요소가 되었고, 침묵을 상징하는 오브제로는 발화 이전, 태초 코스모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알(egg)의 형태를  차용하게 된다. 더해서 지금껏 본인의 대부분 작업에 등장했던 금(金)색 또한 가져오게 되는데 거기 에는 동서양을 막론한 침묵과 금에 대한 속담[5]이 이유가 될 것이다. 알은 등장하기도 하고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그려진 알, 텍스처 알, 알 몰드, 석고 알, 알 설치, 캔버스 짤 때 안에 들어간 알, 자국만 남은 알 등의 여러 형태로. 이 모든 요소들은 화폭 안에서 마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조합된다. 이는 나의 회화의 모태가 "움직이는 샹들리에 시리즈(2019)"에서 무대 배경으로서 사용되었던 회화 작업들에 있기 때문이다.


마치 만담(相声)과도 같은 재미있는 말장난이 몇 가지 있다. 침묵은 소리가 없는 것인데 마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 된다. 침묵 앞에는 주로 무겁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침묵은 질량이 없는 것인데 어찌 모두가 무겁다 하는 것일까. 침묵의 질량 감은 충분한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침묵은 ‘깬다’라고들 한다. 질량과 함께 깨어질 수 있는 fragile한 속성이 있는 것이다. 마치 알이 깨어지듯이.


침묵은 질량을 가진 것. 깨어지는 것. 그리고 금(金)의 것이다. 대칭적인, 그리고 반짝이는 것 또한 내가 작가로서 손에서 놓지 않는 요소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사석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부유 하는 생각들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였다. 이것이 내 회화, 그리고 설치가 가지고 있는 양가적인 성질이 아닐까….



[1] L. Wittgenstein, TLP 7

[2] L. Wittgenstein, TLP 7

[3] 05. 03. 2016에 방문했던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의 공연에서. Royal Festival Hall.

[4] 말러의 교향곡 제 8번이 천인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5] 동양 : 沉默是金。침묵은 금이다. 서양: 토마스 칼라일,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 김지민 26.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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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성희.수호갤러리 프로젝트 매니저로 기획일을 하며 소소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