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나는 산다»
첫 번째 언급할 전시는 성북예술창작터에서 진행한 문인사 기획전 6 김훈 «여기에서 나는 산다»이다. «여기에서 나는 산다»는 문인사 기획전 여섯번째로 성북문화재단에서 성북을 기반으로 활동한 문인 중 현 사회에 부합하는 인물을 선정해 전시로 풀어낸 기획전이다. 올해는 김훈작가가 선정되어 전시에는 김원진, 박광수, 정현, 최용한작가가 참여했다.
여기에서 나는 산다 전시 전경 ⓒ정소영
전시명 «여기에서 나는 산다»는 김훈의 책 『흑산』에 작성한 작가의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김훈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 소망에 대한 글을 쓰면서 책을 통한 이상이나 환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현재의 삶을 직면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 제목은 현재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이자 염원을 담아 작가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번 전시에 작품으로 함께하는 4명의 작가는 이런 김훈의 염원과 색을 같이 한다. 그중 김원진의 작품 Melting strata 는 문학과 미술의 만남이 낼 수 있는 시너지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김훈의 문장에서 발췌한 글귀를 밀랍으로 표현한 김원진의 작품은 빛에 의한 고열로 밀랍의 글귀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불완전성이자 다양한 질감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글의 다양함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김원진 melting strata, 2020
미술과 문학의 상호 보완적인 존재로서의 발전이 이러한 점이 아니었을 까. 언어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고, 미술은 해석의 한계가 존재한다. 그 때문에 둘은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할 때 예술의 깊이를 끌어낼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대한 실제적인 예는 다음 소개할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참여 작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진행되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시대에 성장한 문인과 화가가 어떻게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와 함께 그 당시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이다.
https://artlecture.com/project/6141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거쳤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상, 백석, 서정주와 같은 문인들과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천경자와 같은 화가들을 한 데 묶을 수 있었던 것은 혼돈의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들의 간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술과 문학, 그 어느것 하나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발전될 수 있기를 바랬던 염원은 미술과 문학간의 공존을 통한 영향력이 작은 불씨가 되어 대중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서정주와 김환기의 학의 노래ⓒ정소영
조선중앙일보 이상(하융)의 삽화 ⓒ정소영
그 중 몇 가지를 살펴 보면 1934년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처음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을 때 당시 필명 하융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이상의 삽화는 그 자체로 초현실주의적.[1]이라 평가받는다. 또한 1936년 동아일보에 기재된 서정주의 ‘학의 노래’ 시와 함께 게재된 김환기의 ‘학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김환기 작가의 대표작품으로 손에 꼽힌다.
천년을 보던 눈이
천년을 파다거리던 날개가
또 한 번 천애에 맞부딪노나
- 서정주 ‘학의 노래’ 중-
어떠한 미술비평보다 더 울림이 깊은 시와 미술의 만남은 당시 삽화의 역할을 넘어서 그 자체로 미술 발전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로 억압된 상황에서 서구 100년의 예술 역사를 몇 십년안에 따라 잡으며 격변을 겪어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미술과 문학이라는 이분법적 발전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룰 수 있는 예술의 발전이 모두의 염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전시를 통해 비교매체론 입장이 아닌 미술과 문학의 교류를 통한 시너지를 보며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각 예술의 융합이 어쩌면 필연적이지 않았을 까 생각한다.
[1] 전시내용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