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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남자 셀프 급매 | ARTLECTURE

55세 남자 셀프 급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 칼 라르손-

/Picture Essay/
by 안노라
Tag : #그림, #행복, #위안, #위로
55세 남자 셀프 급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 칼 라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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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칼 라르손은 185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어. 그에게는 폭력적이고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 매춘굴 옆에서 세탁부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가 있었어. 가난하고 배고픈 시간이었지. 그의 말대로 비참하고 절망적이었어. 그는 아버지의 냉정하고 잔인한 말에 몹시 주눅 들고 때로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겼어. 하지만 어머니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그림에 대한 아들의 재능을 발견했고 어떻게든 아들의 능력을 키워주고 싶어 했어. 헌신적이고 용기 있었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일을 하면서 그를 학교에 보내주었어.

잔디 위를 뛰어오는 꼬마에게 물었어.

"너,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줌마가 너무 많이 사서 두 개가 남았는데."

아이는 머뭇머뭇 뒤로 물러서더니 마스크 위로 두 손을 가리고선 "엄마"하고는 달려가 버리는 거야. 아이스크림 봉지를 든 손이 무안하더라고. 마치 유괴범이나 된 느낌이 들더라니까. 어릴 때부터 "누가 주는 거 아무거나 덥석 받으면 안 돼."하고 가르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는데 엄만 아직도 "네, 고맙습니다."하고 두 손을 벌렸던 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에 당황했어. 그건 그렇고 이걸 어쩌지? 먹을 사람은 없는데 버리기는 아까워서 말이야. 어쩌자고 잘 먹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네 개나 샀을까. 씁쓸... 손이 커서 문제다. 할 수 없지, 뭐. 그냥 버려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어디서 목소리가 들렸어.

  "괜찮으시면 제 아이들 줄까요?"

  서른 후반쯤 되었을까? 앳된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젊은 아저씨가 서 있었어. 아이는 아버지 다리에 몸을 바짝 기대고는 조심 반, 호기심 반이 섞인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데 어찌나 똘망한 지...

  "제가 고맙죠. 그만 돌아가야 하는데 버리긴 아까와서... 어제 입구 편의점에서 사 냉동실에 보관했어요."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좋아해서요. 근데 오늘 돌아가시나 봐요. 이 글램핑장 주위에 나지막한 산도 있고, 밤나무도 있어 밤 주우며 며칠 쉬기에 좋던데."

  "그러잖아도 명절 쇠고 바로 올라가려다 좋다기에 어제 하루 묵었어요. 이곳에 오니 아이들이 좋아하지요?"

  "네. 저희도 부모님 잠깐 찾아뵙고 왔어요. 움직이지 않으려 해도 아이들이 집 안에만 있어 힘들어하네요. 어 제 왔는데 얼마나 사방팔방 뛰는지 진정시키느라 기운이 다 빠졌어요."

엄마는 그 선선하고 담박한 말투에 기분이 좋아져 얼른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어. 아저씨는 아이스크림을 똘망한 꼬마 손에 들려주고는 번쩍 안아 올려 무등을 태우는 거야. 갑자기 숲이 찬란해지더라. 이 그림처럼 말이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칼 라르손  <딸 브리타와 나, 1895>



이 그림은 칼 라르손(Carl Larsson, 1853~1919)의 <딸 브리타와 나, 1895>라는 작품이야. 무등을 태우고선 헤벌쭉 웃는 아빠가 칼 라르손이고 빨간 리본을 하고 아빠의 어깨 위에서 웃고 있는 아이가 다섯째 딸 브리타야. 풍덩한 소매를 보니 언니 리즈베스의 옷을 물려 입었나 봐. 그림 속 칼 라르손 손에 든 연필만 아이스크림으로 바꾼다면 조금 전 젊은 아저씨와 똑같은 포즈야. 저렇게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선 성큼성큼 사라졌어. 어깨 위에 올라탄 아이가 공기방울처럼 가볍게 느껴졌고 뒷모습에선 내 딸에게 맑은 하늘만 보여주고 싶다는 소리가 들렸어. 그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는 이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굳세게 건너가겠다는 거인 아빠의 걸음이었지.


느루야, 시몬느 보봐르는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지. 사회가 여자다움의 기준을 정해 놓고 역할을 강요한다는 것일 거야. 공감하는 말이야. 엄만 '모성애'도 일정 부분 그렇다고 생각해. 엄마가 너희를 낳았을 때 낳자마자 모성애가 느껴지거나 하지 않더라. 낯설고 당황스럽고 무서웠어. 엄마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지.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싶더라구. 그런데 내 얼굴을 만지는 꼬물거리는 손가락, 젖을 빨 때 실룩거리는 볼, 한없이 날 바라보는 눈과 마주치면, 나처럼 부족한 사람한테 이리 아름다운 생명이 왔구나 싶었어. 천천히 조금씩 어설프게 엄마가 됐지.


아빠도 그럴까? '아버지'가 된다는 게 두려울까? 아버지라는 이름도 그리 천천히, 조금씩, 어설프게 되는 것일까? 우리 세대의 아버지란 웃거나 울지 않았고, 아프거나 힘든 표정을 짓지도 않았어. 왜냐하면 사회가 항상 의젓하고 침착하고 힘센 아버지를 바랐거든. 이런 말도 있었지. "아버지의 눈에선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위 그림과 같은 해에 그린 <브리타와 함께 한 자화상, 1895>에도 다정히 브리타를 안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칼의 모습이 보여. 브리타는 자고 일어났는지 발그레한 볼과 제멋대로 뻗친 머리칼을 하고 아빠 무릎에 앉아 아빠가 그리는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어. 칼은 아이의 무게를 받치느라 왼쪽 발에 힘을 줘 살짝 들고 있네. 든든한 아빠지?



칼 라르손 <브리타와 함께 한 자화상, 1895>



느루야, 너도 알지. 연금술은 성공하지 못했어. 중세의 뛰어난 지성들이 연금술이라는 도구로 무수히 많은 물질들을 어루만지고 다듬었지만 그것들은 결코 금이 되지 못했어. 실패했지. 하지만 칼 라르손은 달랐어. 보잘것없는 재료로 빛나는 금을 건져 냈단다. 삶의 연금술사라고 해야 할까? 그는 삶이 자신에게 준 재료로 할 수 있는 한 가장 빛나고 가장 아름다운 꿈을 빚었어. 그리고 꿈을 살뜰히 돌보며 끈기 있게 가꿀 줄 알았지. 가끔은 고통스러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소심하고 나약해지기도 했지만 끝내 금보다 값어치 있는, 행복한 가정과 뛰어난 작품을 창작했단다.


칼 라르손은 185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어. 그에게는 폭력적이고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 매춘굴 옆에서 세탁부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가 있었어. 가난하고 배고픈 시간이었지. 그의 말대로 비참하고 절망적이었어. 그는 아버지의 냉정하고 잔인한 말에 몹시 주눅 들고 때로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겼어. 하지만 어머니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그림에 대한 아들의 재능을 발견했고 어떻게든 아들의 능력을 키워주고 싶어 했어. 헌신적이고 용기 있었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일을 하면서 그를 학교에 보내주었어.


1866년 칼 라르손이 열세 살이 되던 해, 드디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스웨덴 왕립 예술아카데미(Royal Swedish Academy of Arts)에 입학하게 돼. 그는 이곳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괴롭히던 열등감에서 서서히 벗어나. 잔인한 가난을 이길 용기도 갖게 돼지. 누드 드로잉으로 메달을 수상해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책이나 잡지 등의 출판물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게 돼. 적은 수입으로나마 가족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지. 스스로 얼마나 위안이 되었겠니.


하지만 예술가란 내면에 화산을 품고 있잖아.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열망이 솟구치자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접고 파리로 이주했어. 19세기 파리는 전통에 반기를 든 아르누보적인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었거든. 매일 새로운 별들이 떴고 새로운 은하계가 생성되는 예술의 창세기였단다. 그는 바르비종에서 로코코, 일본 판화, 고전주의, 인상주의 등의 화법을 접했지만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지 못했어. 다시금 스스로 능력 없고 무가치하다는 자기 회의에 빠지게 되었지.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1882년 스칸디나비아 출신 예술가들이 모여 있던 파리 근교의 그레(Grez-sur-Loing)에 머물러. 그런데 그곳에서 모든 것이 변했구나.



(좌) 칼 마르손 <카린과 케르스티, 1898> / (우상) <게으름뱅이 구석, 1897> / (우하) <책 읽는 카린, 1904>



그는 그레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인을 만났어.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현재의 가난과 불투명한 미래와 심각한 우울증을 모두 안아주었던 그녀의 이름은 카린 베르게(Karin Bergoo, 1859~1928)야. 성공한 사업가의 딸이자 재능 있는 화가 지망생이었고 다정한 성품을 지닌 여인이었지. 그녀는 염전의 소금처럼 짜고 졸아붙은 그의 삶을 맑은 물로 씻어 보드라운 햇빛에 말려주었어. 모래처럼 부서지기 쉬웠던 내면을 가진 그는 대리석처럼 단단해졌지. 신이 가끔 졸기는 하지만 아주 잠드시지는 않는가 봐.


이제 그림을 보자. 왼쪽 그림 속 일곱 번째 아이, 케르스티의 손을 붙잡고 있는 여인이 카린이야. 우아하고 단정하고 사랑 넘치는 모습이지. 오른쪽 아래 그림에서는 책에 깊이 빠져 있는 카린을 볼 수 있지. 그녀는 현명하고 깊이 있고 온화한 여인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한 남자의 알맹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만큼 자신감 있는 여인이기도 했고.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결혼 후 화가의 꿈을 접었지만 자신의 예술적 심미안과 재능을 살려 집안 구석구석을 매만졌어. 흔히 북구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현대 스웨덴의 디자인과 라이프 스타일은 그녀가 직접 그리고 수놓은 벽지, 침대보, 식탁 등에 고스란히 남아 전해졌지. 19세기의 생활 디자이너였다고 해야 할까?


오른쪽 위 그림 보이지. 카린의 솜씨로 꾸민 실내야. 창 턱 화분에서 자란 넝쿨식물이 하트 모양을 하고 있구나. 소파와 의자는 같은 줄무늬 천으로 덮개를 씌웠고, 띠 몰딩으로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게 벽을 구성했어. 100여 년 전 인테리어인데도 현대 디자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 이 그림 화제가 <게으름뱅이 구석>이니 이 곳은 피곤하거나 쉴 곳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공간일 거야. 오늘 주인공은 기르던 개 '카포'구나.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네. 개든 사람이든 무장해제할 공간이 필요해.



칼 라르손 <엄마와 어린 딸들의 방, 1897>




어린 시절 읽었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건초더미로 만든 침대와 눈을 뜬 해님이 제일 먼저 창문을 두드리는 다락방을 갖고 있었어. 칼 라르손이 가꾼 집엔 초록색 덧문이 달린 노란 창문이 보이는구나. 초록 침대와 침대 사이를 구분해 놓은 커튼도 특색 있는걸. 옷이 앉아있는 의자엔 카린이 만들었을 줄무늬 덮개가 씌워져 있어. 넓은 바닥에 나무 막대가 어질러진 걸로 봐서는 모두 잠든 어젯밤, 액자 속 길고양이가 벽을 타고 내려와 블록 쌓기를 한 것이겠지. 이제 막 일어났는지 잠옷을 벗고 그림 그리는 아빠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브리타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여. 이건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


느루야, 칼은 몹시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어. 요즘으로 말하자면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폭력적이었다고.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그런 어두운 그림자를 전혀 느낄 수 없어. 초록색 덧문에 있는 하트를 봐. 아마 이 방엔 햇빛도 하트 문양으로 뿅뿅 쏟아질 거야. 이런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사랑을 칼은 어디서 배운 걸까? 엄만 사랑도 본능보다는 배움에서 얻어진다고 믿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이 있지만 그걸 표현하는 건 알맞은 표현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칼의 어머니가 그에게 그림을 배울 수 있게 했던 것처럼, 카린이 그에게 "당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해준 것처럼.


그는 카린과 아이들이 주는 심리적 안정을 바탕으로 행복한 가정의 하루하루를 그림에 담았어. 검박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아기자기 하지만 유치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는 그만의 소박하고 부드러운 수채화 작품을 1909년 책 <햇빛 속의 집>으로 엮었어. 1차 대전의 참혹한 전쟁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동화와 같은 환상이 펼쳐지는 그의 책은 스웨덴 병사들에게 구약성경 다음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해.

 


칼 라르손 <숙제하는 에스뵈온, 1912>



어릴 적, 우리들의 모습 아니니? 이 그림은 <숙제하는 예스뵈온, 1912>이야. 예스뵈온은 막내아들이야. 지금 열두 살이지.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눈은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구나. 숙제하기 싫은 거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발로 벽을 디뎌 의자 앞부리가 살짝 들렸어. 의자도 까딱까딱, 마음도 까딱까딱. 숙제는 너무 지루해. 나가 놀고 싶은데 그러기엔 엄마, 아빠, 선생님이 무서워. 몸은 책상 앞에 있지만 마음은 들판을 달리는 막내아들을 보며 칼은 다 이해한다는 얼굴이야. 어떻게 아냐고? 거울을 봐. 그가 아들을 그리면서 전혀 화난 표정이 아니잖아. 그림의 제목이 '숙제하는 예스뵈온'이지만, 아무래도 숙제가 아닌 나머지 공부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건 나뿐만 아니지?


또 딴 소리, 헤헤, 까딱거리는 에스뵈온 옆, 나무 선반 위 도구는 아빠랑 뭔가를 만들고 조립하는데 썼던 물건 같아. 행복한 가정을 위해 항상 '닦고 조이고 기름칠' 했던 칼의 작업장도 보여줄게.



칼 라르손 <목공소, 1905>



1905년 작품 <목공소>야. 나무 둥치 위에 도끼가 있고 바닥엔 톱밥이 가득해. 나무를 가로질러 놓고선 대패질이 한창이구나. 반듯하고 매끄럽게 다듬은 저 나무는 어디에 쓰려는 걸까? 칼은 아이들의 장난감부터 전등, 선반, 천장 등 무수한 것들을 직접 만들었다고 해. 하지만 저 길쭉한 나무는 장난감 용도는 아닌 것 같으니 아무래도 집을 고치는데 쓰려는 것 같아. 그가 평생 애정을 가지고 쓰다듬고 어루만졌던 집은 카린의 아버지, 즉 장인 아돌프 베르게가 사위에게 선물한 달라르나 지방의 목조건물이야. 1891년, 칼은 가족을 데리고 이 집에 오게 돼. 그리고 문 위에 이렇게 썼지.


  "Aelsken hvarandra barn. ty kaerleken aer allt. 서로 사랑하라. 아이들아. 사랑은 모든 것이야."


  느루야, 엄만 집을 사는 자격시험이 생기면 좋겠어.

  "당신은 이 집에서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실 건가요?"

  "네. 가족들에게 제 생각을 말한 뒤, 행여 아내(남편)나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하면 때려서라도 바르게 가르치겠습니다."

  "네,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 당신의 생각만 옳다면 당신은 거리에서 주무십시오." 하는 거야.

  

내가 시험 감독관 할 거야. 집은 건물이 아니야. 정신의 요람이고, 영혼의 단백질이지. 먹을 것만큼 재능과 필요를 나누고 사랑을 배양하는 곳이야. 집에선 모두 평등하고, 누구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고, 재능을 키울 수 있고, 응석을 부릴 수 있고 교양과 예술을 배울 수 있어야 해. 그런데 때로 뉴스에서 나오는 가학적이고 몹쓸 일들을 접하면 정말 때려서 내쫓고 싶다. 집의 가격만 신경 쓰다간 아파트 한 동 전체에 정신적인 부랑인, 노숙인만 살게 될지도 몰라.

  

사랑이 모든 것이라고 말했던 칼 라르손은 진짜 아버지였어.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의 고통을 이겨내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 했지. 천천히, 조금씩, 어설프게라도 말이야. 그는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단다. 그리고 누구나 보면 3도쯤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따뜻한 가족의 일상을 물기 많은 수채화로 그려냈어. 그의 그림은 불행을 견디고, 전쟁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힘은 미사일에 있지 않고 사랑에 있다고 말했지. 평범해 보이는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는 이유야.


우리들 마음이 꿈꾸는 '가족'은 이 그림이 아닐까? 커다란 나무 아래, 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어. 개도 한 자리 차지했지. 호화로운 밥상이 아니어도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즐기며 느긋한 아침을 먹는 것. 그래서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하겠지.



칼 라르손 <큰 나무 아래 아침식사, 1896>



그나저나 느루야, 전화 통화돼?

  

"도대체 아빤 어디 간 거니? 이럴 줄 알았으면 너네와 함께 올 걸 괜히 아빠랑만 왔나 보다. 옆 동 아저씨들은 아이들도 곧잘 돌보고, 삼겹살 냄새 솔솔 풍기며 음식도 만들고, 족구 게임도 하는데 아침부터 당최 보이질 않네. 어젯밤 술이 과하더라니... 자연을 보자고 하더니만 두꺼비만 보고 올라가게 생겼다구. 어, 이게 무슨 소리야? 시동 거는 소리잖아. 에그머니! 아이스크림 들고 사방을 돌아다니는 사이, 아빠가 짐을 다 실었구나. 투덜댔던 건 비밀이야. 올라가서 만나자."


 그런데 차 뒤 유리창에 "초보운전"이라고 쓴 거야? 그럴 리가. 운전경력 30년인데. 이게 뭐지?

 <55세 남자. 셀프 급매>


  "나, 남편, 아버지, 사표 낼래. 당신이 느루랑 통화하는 거 다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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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노라_역사를 그림으로 푸는 안노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