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 에세이를 읽다 보니 여행을 가고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발이 묶인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여행이다. 그냥 단순한 여행이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조금은 익숙한 이 공간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고 싶은 것이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여행은 현재를 살게 해준다고.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계획하고 걱정하느라 하루를 다 써버리는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 그게 오늘,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그래서 미래보다 현재에 안주하기 위해 작년 여름, 내가 사랑했던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로 다시 떠나본다.
프라이부르크의 저녁노을(좌) / Freiburg_Vauban 태양에너지 (우)
지난여름, 나는 우연한 기회로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 달간 살게 되었다. 프라이부르크는 자연과 인간, 환경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 도시로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많은 도시, 원자력 발전소에 반대하고 태양에너지 발전에 힘쓴 도시이다. 에너지자립형 스타디움인 바데노바 축구경기장, 솔라하우스들이 가득한 보봉(Vauban)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이 도시는 특정 구역에만 태양광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시청, 학교, 개인 건물 등 프라이부르크 전체에 태양광 패널이 분포되어 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이 도시는 자동차가 도심 내에 진입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서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나 트램, 도보가 가장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주 이동수단이다. 이 동네 사람들의 가정집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없어도 자전거는 사람 수마다 주차되어있는 아기자기한 동네이다.
이 동네에서 독일을 처음 만났고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인간의 모습 또한 처음 알게 되었다. 비 오는 날에도 도심의 자동차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건물마다 설치되어있는 태양광 패널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 동네는 무엇보다 자연에 집중하게 해준다.
이런 녹색 도시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가장 간절히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한국말로 해석하자면 ‘검은 숲’이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의 배경이라고 추측되는 이 숲은 프라이부르크 전체 면적의 40%를 차지한다. ‘검은’을 뜻하는 슈바르츠(Schwarz)와 ‘숲’을 뜻하는 발트(Wald)가 합쳐진 단어로 ‘검은 숲’이란 뜻을 가진 이 숲은 하늘을 가득 메우는 나무 때문에 하늘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19~20세기 독일 화가들에게 슈바르츠발트는 호기심을 일으키는 장소였다.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당시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에는 낭만적인 풍경이 가득하고 햇빛이 노랗게 빛나는 따뜻한 색채들이 만연하게 분포되어있다.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미술관 ‘아우구스티너미술관(Augustiner Museum)’은 슈바르츠발트의 풍경, 삶과 사람들, 겨울 등 3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특별전을 열었고 독일 풍경화의 대가라고 알려진 한스 토마를 비롯하여 22명의 작가가 20세기 전후의 슈바르츠발트를 그 당시에 그대로 담아두었다.
Hans Thoma, Landscape on the Baar, 1911(좌) / Hans Thoma, Summer Morning in the Bernau Valley, 1863 (우)
한스 토마는 슈바르츠발트에서 태어났고 슈바르츠발트에서 여러 작품도 그렸다. 그는 평생 자연에 애착하여 기법도 당시의 사조를 따라 사실주의를 취하면서도 일종의 소박한 낭만적 심정을 추구했기에 풍경화는 때로 동화적인 세계를 표현하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 넓은 황금빛 광야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빛나는 듯해 관객에게 평온함을 가득 전해준다.
Julius Heffner, Bernau-Oberlehen, 1928(좌) /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우)
율리우스 헤프너의 <베르나우의 오버레엔 마을>은 저 멀리 보이는 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숲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었다. 작품은 햇빛을 가득 담은 채 여유로운 모습들로 있는 그대로의 숲을 보여준다. 오른쪽의 사진은 작년에 찍은 사진인데 1900년대 초반의 슈바르츠발트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일 정도로 잘 보존되어있다. 푸르른 나무들이 심어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멀리에는 산들의 모습도 보인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 또한 굽이굽이 있고 전체적인 색감 역시 비슷하다.
Karl Julius, Wilhelm Heilmann View of the Herzogenhorn, 1924(좌) / 눈이 쌓인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우)
슈바르츠발트는 겨울이 되면 사진처럼 눈이 많이 쌓여 19세기부터 스키 등의 겨울 스포츠가 발달한 지역이라고 한다. 더불어 칼 율리우스의 작품에서처럼 겨울의 추운 눈에도 강한 침엽수림이 슈바르츠발트의 특징이다. 눈이 쌓인 침엽수림의 모습에서처럼 이런 낭만적이면서도 정말 독일다운 모습들이 1900년대 초에도 그대로 보여진다. <Wilhelm Heilmann View of the Herzogenhorn> 작품은 눈이 쌓인 슈바르츠발트에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따스한 빛이 가득 담겨 있다.
슈바르츠발트라는 거대한 숲을 보호하고 지켜낸 100년 이상의 시간은 현재의 생태도시인 프라이부르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1900년대의 작품과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왜 지키려고 했고, 왜 원자력발전소를 반대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들은 ‘현재’의 슈바르츠발트를 그림으로 기록하면서 자식들에게, 후세들에게 그곳의 황홀한 기억을 보여주고 전해주고 싶었을 거다.
1900년대에 그들은 그림으로 슈바르츠발트를 기록하며 조금은 미화하기도, 각색해내기도 하면서 그 공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라고 기억했을 거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던 슈바르츠발트를 지키기 위해서 원자력 발전소를 반대하고 다양한 노력으로 지금의 슈바르츠발트를 지켜내며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잃지 않으려고 했을 거다.
[다음회 연재로 이어집니다.]
출처 사진1 : https://visit.freiburg.de/ 작품1,2,3,4 : https://onlinesammlung.freiburg.de/ 참고 https://korealand.tistory.com/1835 https://namu.wiki/w/ http://www.100ssd.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8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