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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함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것들 | ARTLECTURE

모호함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것들

-Anthony Cudahy의 그림과 함께-

/People & Artist/
by 이한나
모호함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것들
-Anthony Cudahy의 그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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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Anthony Cudahy(앤서니 쿠다히)(b.1989)는 브루클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 주로 자신과 가까운 인물,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모호한 그림을 바라보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봄을 통해 배울 것이 있다. 완전한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그림과 같이, 우리의 삶에도 모호한 지점이 너무도 많다. 확실한 답안이 제공되어 있지 않는 지점들 말이다. 하지만 모호함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정신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

배경과 구분되지 않는 인물. 꽤나 친밀한 사이인듯 가까운 거리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은 어떤 사이이며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인 것일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짙은 청색 배경에 노란 빛의 인물이 두 명 있다. 두 명에게 채워진 색은 동일함에 가깝다. 한 인물이 각자의 고유한 피부색과 옷의 색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얼굴, , 손 끝까지 모두 같은 톤의 색을 지니고 있다. 다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모습이 거울에 반사된 것인가 하는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들의 외형을 구분짓는 외곽선은 짙은 청색으로, 그림의 배경 색과 동일하다. 짙은 청색 마저 인물의 주된 색상인 노란 계열 색과 섞여, 초록색 빛을 띈다. 배경과 뚜렷히 구분되지 않는 인물. 다른 이와 뚜렷히 구분되지 않는 개개인. 이러한 '모호한'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까.


 

<gift>, oil on canvas, 22” x 30”, 2019.


 

위의 그림을 그린 이인 Anthony Cudahy(앤서니 쿠다히)(b.1989)는 브루클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 주로 자신과 가까운 인물,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주로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의 배경과 인물을 왜곡시키고 변형하여 그림을 그린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함에 있어서 꽤나 솔직하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자신의 작업 방식이 '반복'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단지 그 지점이 아니다. 그는 그의 작업이 반복인 동시에 '해석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 해석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 그의 작품은 해석과 생각을 담아낸 '멈춰있지 않은' 결과물인 셈이다.



<seance>, oil on canvas, 36" x 48", 2018. <seance i>, gouache on paper, 19.5" x 26", 2018.

 



작가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고 여러개의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은 사진을 보아도,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에 집중하게 되는 지점이 어디인가에 따라 그려지는 작품은 달라진다. 관객은 하나의 모체 이미지에서 나온 각각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부여한다. 좌측의 이미지에 부여한 의미를 A, 우측에 이미지에 부여한 의미를 B라고 해보자. 생각 A와 생각 B는 그림을 바라보는 이의 머리 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그는 단지 이미지의 반복적 재현이 아닌, 그림 간의 관계를 형성해낸다. 관객에 의해 완벽히 해석되어지고 고정된 의미를 갖게 되는 그림이 아닌, 언제든다양한 내용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과 같은 주체성을 지닌 그림을 그려낸다.




split, oil on canvas, 22” x 30”, 2019.


 

'멈춰있지 않은', '언제든 다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의 그림의 특징은 무엇일까? 글의 서두에 형용사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작업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모호함' 이다. 그는 배경과 등장 인물 간의, 인물과 인물 간의 색을 확실하게 구분짓지 않는다. 이것은 '모호함'을 나타내는데, 작품이 스스로를 완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림 속 배경은 그곳이 어디인지, 배경 속 인물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읽어내기가 어렵다. 작가는 실제로, 자신의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모호함'이라고 말한다.

 


<biding>, acrylic and oil on canvas, 24” x 28”, 2019.



그렇다면, 앤서니 쿠다히는 정말 우리가 '모호함'만을 발견하길 원하는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요' 이다. 모호한 이미지를 바라보는 우리는 그 그림을 읽어내기 위해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끌어오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 멈추는 지점은, 우리가 생성해낸 스토리가 그림과 일치할 때 일 것이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 화가였던 '존버거'는 그의 저서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가슴> 에서'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때는 그림이 이미 있는 어떤 사물에 꼭 들어맞을 때'라고 말한다. 화가의 입장에서'그리 되어야한다고 느끼고 의도한대로 그림이 보이는, 예측했던 이상적 순간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존버거의 말을 화가에게만이 아닌 관객에게 까지 확장시켜 생각해본다면, 관객이 어떠한 그림을 이해하게 되는 지점은 '자신의 생각과 감상이 그 그림에 꼭 들어맞는다고 느낄 때'일 것이다.

 


<at the table>, oil on canvas, 26" x 34", 2018.

 


그림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감정'을 최대한 끌어오게 된다. 그렇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할 때, 우리 스스로의 삶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대상이 놓여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할 때, 나를 둘러싼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물의 감정은 어떨까?' 생각할 때 그림속 인물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에 대해 느끼게 된다. 관람객의 감상은, 정지된 이미지로 표현된 그림이 각자의 마음 안에서 생동감을 갖고 움직이도록 만든다.



<vision>, gouache on paper, 19.5" x 26", 2018.


 

모호한 그림을 바라보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봄을 통해 배울 것이 있다. 완전한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그림과 같이, 우리의 삶에도 모호한 지점이 너무도 많다. 확실한 답안이 제공되어 있지 않는 지점들 말이다. 하지만 모호함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정신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 여러 사건들이 외형을 가진 가시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는 형태에 더욱 적합한 이야기를 심어줄 수도 있다. 또한,하나의 모호함에 부여하는 사람들의 의미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각기 만들어낸 다름을 통해 소통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다 애매하고 모호한, 불완전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것은 슬퍼하거나 답답해야할 사실이 아니다. 그 사실은 우리가 만났던, 또는 앞으로 만날 사람 혹은 상황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제한 없는 색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 모든 이미지 출처: 작가 홈페이지 www.anthonycudah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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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