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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 곰과 서커스에서 겹쳤을까? | ARTLECTURE

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 곰과 서커스에서 겹쳤을까?

-박미나 개인전 리뷰-

/Preview/
by 나효주
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 곰과 서커스에서 겹쳤을까?
-박미나 개인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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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시청각 랩, 2020. 04. 24 - 2020. 06. 07
현대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이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떤 이미지는 사라지고 새로운 이미지가 시대를 주도한다. 그러나 박미나의 이미지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 증식한다. 작가는 자신이 본 이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 체계화하고 작업에 사용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박미나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물을 단순화한 색칠 공부 도안을 이용한 드로잉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색칠 공부는 유아와 어린이의 색채 감각과 표현력을 길러 주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학습 자료 중 하나이다. 이것은 현대에 와서 컬러링 북coloring book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아이의 전유물이 아닌 성인들도 즐기는 취미 생활로 자리잡았다. 색칠하기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고 비교적 비용이 저렴하다. 또 짧은 시간에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컬러링이 심신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2010년대 초중반에 불어닥친 컬러링 북 열풍 훨씬 이전에 작가는 색칠하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자신의 작업의 한 부분으로 발전시켰다.



<12색 드로잉> 색칠 공부 위에 색연필, 33.5×25.5cm



아동의 그림은 원, 사각형, 삼각형, 하트, 별을 거쳐 꽃, 나무, 고양이, 물고기 등과 같은 좀 더 복잡한 형태로 발전한다. 지구상의 모든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이 있듯 이러한 형상은 인간의 의식적인 그리기의 출발점이자 미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박미나는 인간의 성장 단계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조형 능력의 발달 양상을 포착해서 작품 속에 담아낸다.



12색 드로잉 9_노랑색_2019 // 12색 드로잉 10_파랑색_2020



색칠 공부 도안은 대다수가 친숙한 이미지들이다. 별, 하트, 동그라미, 네모, 세모, 자동차, 배, 비행기, 기차, 곰 인형, 공룡, 고양이, 물고기, 크리스마스트리, 선물 상자, 과일, 야채, 케이크 등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보아 온 것들이다. 이 도안에는 일본 순정 만화에 등장할 법한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성들과 지구를 구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변신 소녀물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이에 더하여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 캐릭터 피카츄를 비롯한 근육맨, 도라에몽, 호빵맨 등 일본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헬로키티를 위시한 일본 산리오사의 캐릭터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 영화 겨울왕국, 라푼젤, 백설공주, 인어공주, 심슨 가족, 스펀지밥 등 미국 대중문화 산업의 총아와 더불어 현재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의 캐릭터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Rainbow bus> 2020, 색칠 공부 위에 색연필, 39×54cm




색칠 공부 도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접했던 대중문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1970~80년대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소녀들은 불법으로 번역되어 유통되던 조악한 품질의 일본 만화책과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일본 순정 만화풍의 종이 인형과 문구용품에 열광했다. 그 당시에는 휴대 전화도 없었고 영화표는 비쌌으며 유아와 청소년을 위한 영화는 더더욱 없었다. 지금이야 영화관이나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영화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컴퓨터 게임, 피시방, 노래방, 키즈 카페, 대형 복합 쇼핑몰 등 온갖 오락물과 위락 시설이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때는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었고 있더라도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놀잇감은 더 특별하게 여겨졌고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드로잉> 2019-2020, 별도로 밝히지 않은 경우 크기는 33.5×25.5cm



박미나는 기성품으로 출시된 색칠 공부 도안에 추가로 그림을 그려 넣거나 스티커를 붙이거나 색을 칠해서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형상을 만들어 낸다. 색칠 공부 드로잉 중 하나인 <Pink Rabbit>은 그림의 중앙에 커다란 동심원이 위치해 있고 그 안에 돼지가 그려져 있다. 동심원의 한가운데는 빨간색 하트가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점점 커지는 원의 윤곽선을 따라 분홍색, 빨강색, 주황색, 연주황색이 꼼꼼하게 칠해져 있다. 굵은 검은색 테두리가 그려진 동심원의 바깥쪽에는 작은 분홍색 토끼 스티커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그런데 왜 작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동심원이 아닌 분홍색 토끼가 제목일까? 또 작품에 존재하는 돼지는 과연 무엇일까? <Pink Rabbit>에 등장하는 돼지는 사실상 작품에서 어떤 역할도 맡지 못했다. 작가는 돼지를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그 존재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돼지는 마치 영화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맥거핀macguffin과 같은 존재이다.

 

<Pink Rabbit>에 등장하는 하트가 있는 동심원은 다른 작업에서도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이 모양은 그림의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 <Scream>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퍼져 나가는 비명 소리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scream은 누구 또는 무엇의 비명일까? 답은 알 수 없다. 작가는 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둔다. 어쩌면 귀여운 캐릭터들과 동떨어진 제목으로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혼란을 야기하는 게 목적일지도 모른다. 또 일본 만화 영화에 자주 나오는 주인공을 평범한 소녀에서 강인한 전사로 변신시켜 주는 마법봉에서 발사되는 무적의 광선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광선은 가족과 친구, 연인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의 힘으로 작동된다. 사랑의 광선을 발사하는 마법봉을 이용해 주인공은 악당을 무찌르고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 


일본 변신 소녀물은 씩씩하고 용감한 여성상을 보여 주고 있는 한편 성차별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주인공과 그의 동성 친구들은 빨간색이나 분홍색 리본, 프릴, 레이스로 장식된 치마를 입고 있다. 심지어 마법 소녀로 변신한 후에도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적과 싸운다. 바지를 입은 마법 소녀는 거의 없다. 바지는 남자의 몫이다. 주인공의 남자 친구는 대개 파란색, 짙은 남색, 갈색, 채도가 낮은 초록색, 검은색으로 치장되어 있고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주인공은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적을 없애고 지구를 지키지만 사회에 존재하는 전근대적인 성 권력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영웅은 머리를 곱게 기르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상냥하게 웃는 여자가 될 것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를 받아들인다. 아직 분별력이 없는 어린 소녀들은 대중 매체를 통해 이러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마음에 내재화한다. 이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성 역할에 대한 고착 관념을 강화했다. 그런데 작가는 익살스러운 모양과 현란한 색의 하트, 스티커, 테이프, 도장과 같은 기호를 덧붙여 변신 소녀의 여성성을 깡그리 지워 버리고 기존 이미지가 가진 의미를 희석시킨다. 색칠 공부 드로잉에서 변신 소녀들의 매력적인 모습은 대부분 지워져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박미나는 이 작업을 통해 일본에서 건너와 우리 문화에 편입된 피상적이고 도식화된 여성상을 파괴한다. 또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색칠 공부 도안들도 문자, 숫자, 표지 등을 덧붙이고 기존 이미지를 제거하여 원본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Scream 1> 2019, 잉크젯 인쇄, 스티커, 색연필  <Scream 2> 2019, 잉크젯 인쇄, 색연필



색칠 공부 드로잉 연작은 이미지와 더불어 그림 속의 문장, 단어, 숫자와 같은 기호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 기호는 제목과 더불어 작품을 해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은 이미지만으로 완성이 되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이미지는 주변부 또는 배경의 부차적인 상징, 장식용 스티커, 도장, 테이프, 색 등과 결합하여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박미나는 본래의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상황이나 장면이 아닌 지엽적인 단어나 숫자, 사물을 작품의 전면에 배치한다. 또 그림 속 문장에 스티커를 붙여 단어를 부분적으로 지워 없애기도 한다. 남겨진 단어는 기존의 이미지에 덧그려져 만들어진 이미지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Overlapped>, <Town1>, <Town2>, <Five Hearts>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를 겹치는 방법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중첩은 이미지의 본질을 흐리고 무질서 상태로 만드는 반면 어떤 사물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 시각을 활성화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이 방식은 <30406090>, <Air Balloon>, <Americano>, <Tempus Omnia Sanat> 등 다수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색칠 공부 드로잉 중 <Make Sure>에는 미국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만화 영화의 주인공 라푼젤이 등장한다. 라푼젤은 입에 재갈이 물려 있고 손이 뒤로 묶여 있는 채 무릎을 꿇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림의 윗부분에는 어떤 문장이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은 헬로키티 스티커에 군데군데 단어가 가려져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앙증맞은 헬로키티 스티커와 하트 스티커는 라푼젤이 처한 위급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관람객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이에 더하여 라푼젤의 얼굴 바로 아래 뜬금없이 위치해 있는 검은색 원 스티커는 감상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 스티커는 <Pink Rabbit>의 돼지와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라푼젤이 그려진 도안과 스티커들은 한 화면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화면에서는 옛 이미지와 새 이미지가 겹쳐지고 도안과 문자, 기호가 결합되어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다.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단어 중 make sure는 조합된 이미지와 상관없이 작품의 제목이 된다. 또 다른 작품 <Pattern>에는 일본 순정 만화의 등장인물처럼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장미꽃이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있고 프릴이 달린 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겸연쩍은 얼굴로 여자의 옆에 서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제는 두 사람이 아니다. 검은색 선으로 그려진 두 사람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다양한 색의 스티커에 인쇄된 패턴이 바로 주제이고 제목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이미지가 그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 그것이 주제라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에 개의치 않고 보는 사람의 기대를 배반한다. 

 

여러 가지 색깔의 숫자 스티커를 빼곡히 붙여 놓은 작품 <1234567890>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1234567890>은 0부터 9까지의 숫자 폼 스티커를 그림에 가득 붙여 놓았다. 그림 속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물, 사람, 태양, 별, 전구와 같은 이미지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처럼 색칠 공부 드로잉에서 이미지나 문자로 표현된 내용은 때로 기호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난다. 한편 <Stegosaurus>, <Forsythia>, <Together at Last>, <Two Fish> 등 그림과 제목이 일치하는 작업도 상당수 있다. 작업을 할 때 박미나는 자신이 만든 규칙을 따르면서도 어떤 특정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작품을 제작하지 않는다. 작가는 질서를 중요시하고 법칙을 정립하는 데 힘을 쏟는 한편 스스로 그 규칙을 깨뜨린다. 박미나는 자신이 만든 질서의 파괴를 기꺼워하고 관객이 이미지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걸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유희성, 즉흥성, 우연성, 예측 불가능성에서 시작한 작업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웃음을 유발하는 불규칙적이고 무작위적인 기호가 존재한다. 전시 제목인 《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 곰과 서커스에서 겹쳤을까?Why rain drop overlapped blue faces golden bear at the circus?》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색칠 공부 드로잉 연작 중 7개의 작업 제목을 조합해 만들었다.



<Every Home> 2020, 스티커  <Make Sure> 2020, 스티커



색칠 공부 드로잉 외에 색연필을 재료로 한 작품으로 열두 가지 색연필을 사용해 색칠 공부 도안을 칠한 <12색 드로잉> 연작이 있다. 박미나는 시중에 판매하는 어린이용 12색 색연필을 각 제조사별로 구입해 한 색깔당 도안 한 장을 칠했다. 그렇게 해서 색깔별로 총 열두 장의 그림이 하나의 작품이 된다. 제조 회사에 따라 색깔의 배치는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바른손 꼬마또래 색연필은 빨간색이 가장 왼쪽에 위치해 있지만 서흥 토요 샤프식 색연필에는 그 자리에 연주황색이 있다. 제조 회사가 배치한 색의 순서에 따라 작가는 자신이 선별한 도안을 성실하게 색칠했다. 이 도안은 기차, 자동차, 비행기, 모자, 유명 상표 운동화,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 일본 만화 영화 캐릭터 등 색칠 공부 드로잉과 같은 맥락의 양식화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12색 드로잉>에서 박미나는 각 도안 속에 존재하는 별 모양만 남겨 두고 화면 전체를 각각 한 가지 색연필로 칠했다. 별은 유아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그리는 기본적인 형상 중 하나이다. 온갖 사물과 장소에서 볼 수 있기에 별은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몰개성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별이 그만큼 인기 있고 널리 사용되는 형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별은 대중적 표상이자 문화의 한 전형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생활 방식, 사고방식, 언어, 사회상 등을 보여 주는 도안에서 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박미나는 <12색 드로잉> 연작을 통해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서 별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탐구한다. 작가는 그 밖에도 해, 달, 나비, 물고기 등 전형적이고 도식화된 이미지를 조사하고 수집하여 대중문화의 양상을 구명하고 있다.



<Ouch!> 2019, 인쇄된 종이 테이프



박미나는 색칠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인 색연필에 대한 탐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재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작가는 제조사별로 가장 기본적인 12색 색연필을 사서 작품을 제작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채색 재료 중 왜 하필 색연필을 택했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색연필은 크레파스와 더불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가 가장 처음으로 접하는 재료이다. 크레파스는 굵고 뭉툭해서 세세한 표현을 하기 힘들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찌꺼기가 나와서 손이 더러워진다. 반면 색연필은 간편하고 깔끔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가장 처음 사용한 재료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에 색연필은 그리기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전문가용이나 한정판이 아닌 대량으로 유통되는 기성품, 쉽게 구할 수 있고 널리 이용되는 색연필로 회화의 본질을 연구하고 있다.

 

현대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이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떤 이미지는 사라지고 새로운 이미지가 시대를 주도한다. 그러나 박미나의 이미지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 증식한다. 작가는 자신이 본 이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 체계화하고 작업에 사용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박미나는 우직하고 묵묵하게 자신만의 목록과 분류 체계를 만드는 한편 스스로가 선별한 주제와 재료를 탐구하고 미시적으로 분석한다. 이렇게 축적된 이미지들은 한 시대의 거시적 표상이 된다.

 

작가는 회화를 미술 활동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릴 때 기본 재료 중 하나인 색연필을 써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단계의 회화 작업을 한다. 최근작 <Rainbow Bus>에서는 기본색이 아닌 형광 색연필이 새롭게 사용되었다. 작품 제목처럼 브라운, 코니, 팡요, 초코, 샐리, 제임스, 제시카, 문은 무지갯빛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현실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이미지들과 함께 작가 또한 이미지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단계의 작업에 발을 내딛었다. 지극히 단순하고 파편화된 그 세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과 함께하는 박미나의 또 다른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글은 저작권법에 따라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필자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영리적 ㆍ 비영리적 목적이든 간에 글의 인용이나 게재를 금합니다.


-참고-

<드로잉> 2019-2020, 별도로 밝히지 않은 경우 크기는 33.5×25.5cm

<Every Home> 2020, 스티커

<1234567890> 2020, 폼 스티커

<Make Sure> 2020, 스티커

<Pattern> 2020, 스티커

<Pink Rabbit> 2020, 잉크젯 인쇄, 스티커, 색연필

<Scream 1> 2019, 잉크젯 인쇄, 스티커, 색연필

<Scream 2> 2019, 잉크젯 인쇄, 색연필

<30406090> 2020, 인쇄된 비닐 테이프

<RBG> 2019, 수채

<Ouch!> 2019, 인쇄된 종이 테이프

<Overlapped> 2019, 잉크젯 인쇄
<EEYVU> 2020, 폼 스티커

<Rainbow bus> 2020, 색칠 공부 위에 색연필, 39×54cm

 

<12색 드로잉> 색칠 공부 위에 색연필, 33.5×25.5cm

<12색 드로잉 9> 중 노랑색, 2019, 바른손 꼬마또래

<12색 드로잉 9> 중 연두색, 2019, 바른손 꼬마또래

<12색 드로잉 10> 중 녹색, 2020, 한들 스누피 찰리 브라운

<12색 드로잉 10> 중 파랑색, 2020, 한들 스누피 찰리 브라운

<12색 드로잉 10> 중 검정색, 2020, 한들 스누피 찰리 브라운

<12색 드로잉 11> 중 노란색, 2020, 미니소 컬러 크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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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