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예술 | ARTLECTURE

감정,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예술

-오희개 작가-


/People & Artist/

by 박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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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예술
-오희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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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았고 얼른 그려내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다. 어린아이가 된 듯 감정에 솔직해지고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몰입하는 내 자신이 좋았다. 그림은 내 자신이 온전히 담겨있다. 내 그림은 내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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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것은 기이하게도 어떠한 마력을 지닌 듯 우리에게 오고 가고를 반복한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가벼운 사랑 같기도 하고, 매력적인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하여 끊어내기가 어려워 보이지만, 실상 그것을 자세히 관조해보았을 때, 감정이라는 건 피고 지는 꽃잎같이 우리의 삶을 통과해간다.


<silence/ acrylic painting on kent paper/ 780 x 540mm>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초월하는 힘은 바로 예술에 내포되어 있다. 무엇인가에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추진력 있게 행동한 적이 있는가? 어떠한 목적성 없이, 본래의 존재의 안에 있는 기쁨만을 위하여 어떠한 행동을 취한 적이 있는가?    

   

그림이 우리의 삶에 이롭고 우리를 더욱 스스로 존재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어떠한 목적성이나 사업성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수도 있지만, 어떠한 정확한 목적의식 없이 그저 ‘좋기 때문에’ 무엇에 홀린 듯 그림을 그리곤 한다. 가끔 우리의 사회에서는 이런 ‘그냥’을 등한시하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양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희개작가는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잠이 오지 않았고 얼른 그려내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다. 어린아이가 된 듯 감정에 솔직해지고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몰입하는 내 자신이 좋았다. 그림은 내 자신이 온전히 담겨있다. 내 그림은 내 자체이다.”    

   

그녀의 작업에는 아름다운 색감과 어딘지 모를 슬픔이 담겨 있다.     


<thixket/ water color and oil pantel on wood/ 300 x 400mm>

 

산스크리트어에서 ‘집중’은 ‘사마디’라고 불린다. 이에 대하여 매사추세츠 대학 의과대학의 의학부 명예교수인 ‘존 카밧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마디, 즉 깊은 집중의 체험은 아주 즐겁고 유쾌하다. 호흡에만 의식을 집중하여 전념하면, 호흡 이외의 모든 것, 즉 생각, 느낌, 바깥세상의 일을 포함한 모든 것이 사라진다. 집중의 특징은 마음이 고요함과 평온 속에 몰입하여 방해받지 않는 평화 안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 고요함의 맛은 매혹적일 수 있고, 심지어는 도취적인 면이 있기까지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몰입과 지복을 특징으로 하는 단순해진 상태와 이 평화라는 것을 자연히 발견하게 된다.”    


오희개 작가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스스로 치유한다. 그림을 그리는 집중이라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를 온전하게 현재에 몰두하도록 허용하는 일이며, 그것 자체가 어떠한 의도적인 치유형태로 변형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림은 우리 안에서 스스로 존재하기를 허용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등한시 하곤 했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라는 존재를 허용하는 일이자, 가장 깊고 가장 커다란 힘과 소통하는 방식인 것이다.     



<untitled/ axrylic painting on wood/ 300 x 400mm>


   

감정은 어떠한 힘을 통해서라도 우리 스스로의 본질을 갉아먹으려 노력하지만, 실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감정을 통하여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 받을 수 있지만,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내제되어 있는 참된 자아, 즉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우리 자신은 상처받을 수가 없다. 그것은 현재 이 순간에서만 존재하며, 유유하게 흐르는 물과 같이 유동적이고 모든 것을 다 흡수하며, 또한 모든 것들을 다 포용한다. 우리는 그 힘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그 힘을 가지지 않은 존재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도 없다.  

   

류시화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상처받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상처받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 존재는 더 큰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들은 영혼을 ’가슴 안의 가슴‘이라고 표현한다. 


<take the place of agony/ oil pastel and acrylic on wood/ 300 x 400mm>

  

작가는 얼룩진 감정을 그린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따뜻한 자신을 발견한다. 비록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슬픈 감정들로 인하여 괴롭고 힘든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 속 안에서 그녀가 표현하는 것들의 아름다운 본질은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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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하리.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