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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만남 | ARTLECTURE

‘사람’과의 만남

-사람을 사람으로….-

/Art & History/
by 이지아
‘사람’과의 만남
-사람을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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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씨름>은 27*22.7cm의 아주 작은 화첩에 무려 22명의 인물이 들어있다. 제각각인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를 보면 성격, 신분, 미묘한 심리, 남자들로만 구성된 구경꾼들로 보아 당시 내외를 하던 풍습까지 읽을 수 있다....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

승객 탑승이 시작되고 탑승구에 서서 밀려들어 오는 승객들에게 연거푸 인사를 하고 있었다.
환영 인사와 동시에 탑승권의 좌석번호를 확인하여 양손으로는 이쪽 통로인지, 저쪽 통로인지를 가리켜야 하는 매우 바쁜 순간이었다.
승객 얼굴을 마주할 틈도 없이 ‘이쪽, 저쪽’을 가리키고 있는데 한 승객분께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것이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깜짝 놀라 탑승권을 떨어뜨렸다. 얼른 주어 건네며 얼굴을 보니 ‘목소리 좋기로 유명한’ 남자배우였다.

평소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배우도 아니었고, 나란 사람 자체가 본래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 여느 승객과 다를 바 없이 서비스했다.
영화상영이 시작되어 불을 껐는데, 그 배우분 자리만 불이 환하게 밝혀있는 것이다. ‘독서 등을 켜셨나?’ 자세히 가보니 아뿔싸…. 등이 고장이었다. 그런데 전혀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고 앉아 계시는 것이…. 더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보고를 받은 팀장님께서 직접 다가가 

“불편하게 해 죄송합니다. 미리 점검해야 했는데…. 저희 불찰이니 일등석으로 자리를 옮겨드리겠습니다.”

당시 이등석에 앉으신 배우분은

“아닙니다. 그냥 수면안대 하나 주세요.”

팀장님께서 몇 차례나 자리 이동을 권하셨는데도 괜찮다고 하시는 것이다.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불편하여 있는 불빛도 가리고 싶을 텐데 ‘참 겸손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30분쯤 지나니 이번에는 같은 자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다.
왜 꼭 실수는 같은 사람에게 반복되는지…….
하지만 이번에도 웃으며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담요를 두껍게 덮고 있죠. 뭐 ”

하며 웃으시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신문으로 물이 새는 부분을 막아드렸다.
적지 않은 셀럽들을 모셔봤지만, 이분처럼 편안하게 서비스를 할 수 있었던 분은 처음이었다.
진심으로 서비스인들의 고충, 아니, 사람을 이해하고 계셨던 분으로 여겨진다.
 
여배우 A양은 이등석에 탑승하자마자 만석인 것을 확인하고
‘저 일등석으로 자리 옮겨 주세요.’라며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셨고
일등석에 탑승하신 B 군은 ‘제가 촬영하느라 잠을 전혀 못 잤으니 부를 때까지 제 옆에 오지 마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C 군은 승객 요청으로 사인을 부탁하자 ‘싫어요.’라며 무안을 주기도 했다.
 
대부분 자신이 굉장히 특별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특별한 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무엇이 됐든 다른 승객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인 듯했다. 그분들의 생각이 전부 틀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는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특권의식이 전혀 없던 그 배우분이 오히려 더 특별해 보였다. 
목소리만큼이나 온화하고 따뜻한 그분은 배우 한석규 씨였다.

배우란 복잡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잘 표현해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석규 씨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줄 아는 ‘인간미’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사람으로.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더불어 재치와 유머까지 느껴지는 흐뭇한 작품이 있어 소개한다.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 김홍도. 18세기. 26.9*22.2cm.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 조선에서는 단오절이 되면 어느 고을 할 것 없이 씨름판이 벌어지곤 했다. 단오는 음력 55일로 이제 막 초여름이 시작될 즈음이다. 그래서인지 구경꾼 중 몇몇은 부채를 들고 한참 무르익은 씨름판을 즐기는 참이다. 두 주인공의 승패가 어떻게 판가름 날지도 관심이지만 씨름판을 빙 둘러앉은 구경꾼들의 모습이 참으로 익살스럽다.

 

오른편 상단 바닥에 내려놓은 뾰족한 말뚝 벙거지는 마부가 쓰던 모자이다. 아마 상투를 튼 두 사내 중 한 명이 마부인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한 사내는 아예 턱을 괴고 누웠다. 이는 씨름판이 벌어진 지 한참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옆으로 양손을 땅에 짚고 입을 벌리며 웃고 있는 사내가 보인다. 신이 난 표정이 아마도 씨름판이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기우는 모양이다.

 

이번엔 왼쪽 상단 무리를 살펴보자. 뒷자리에는 잘 정돈된 갓을 쓴 노인이 점잖게 앉았고 바로 앞자리의 젊은이는 다리가 저린 지 한쪽 다리만 슬그머니 앞으로 쭉 뻗었다. 그것이 쑥스러운지 부채로 얼굴을 슬쩍 가렸다.


나머지 네 사람은 자기편을 응원하느라 격양된 표정인데 잔뜩 긴장한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양손은 무릎을 감싸 안아 깍지를 끼고 있는 사내가 보인다. 갓과 신을 나란히 벗어놓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다음 선수인 듯싶다. 날카로운 눈매로 나름대로 두 선수를 분석하는 표정이다. 그와 맞붙을 수도 있는 상대는 바로 뒤에 앉았는데 역시 진지한 표정이다.


엿장수는 이런 두 사람의 속사정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엿판에 몇 닢 놓인 엽전이 즐거울 뿐이다.

 


오른쪽 아래로 가보자. 두 사내 모두 입을 쩌억 벌리고 몸을 뒤로 젖히며 각각 오른손과 왼손을 뒤로 짚었다. 휘둥그레진 눈이 어어 넘어간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오른손을 뒤로 짚은 사내의 왼손이 없다. 오른손만 두 번 그려 넣은 것이다. 얼마나 정신없이 씨름판에 몰두했으면 왼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른손을 그려 넣었을까? 단원만이 할 수 있는 여유와 해학이다.

 

그들 머리 위로는 신이 두 켤레가 보이는데 지금 막 씨름을 하는 주인공들의 신인 모양이다. 그런데 하나는 짚신이고 나머지 하나는 발막신이다.


누가 짚신과 발막신의 주인인지 씨름판의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등을 보이고 있는 사내가 오른 손목에 샅바를 걸고 이를 악문 채 있는 힘껏 들배지기를 시도한다. 두 다리에 체중이 적절히 분산돼 안정감 있어 보인다. 반면 상대편 선수의 왼 다리는 이미 허공에 들려 전혀 힘을 쓸 수 없고 오른손도 쭉 밀려있다. 표정을 보니 미간을 찡그리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상대편의 기술에 넘어가는 것을 직감한 듯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니 오른편 하단에 앉은 두 구경꾼이 먼저 알았을 것이다.


발막신은 코끝이 둥글넓적한 가죽신으로 상류층이 신던 신이었다. 들배지기를 하고 있는 사내의 다부진 체형과 짧은 소매로 보아 짚신의 주인이 아닐까?

 

단원 김홍도는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가로 앞서 살펴봤던 <씨름>, 아이가 훈장님께 혼이 나는 장면을 그린 <서당>, 삼현육각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무동>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그 중 <씨름>27*22.7cm의 아주 작은 화첩에 무려 22명의 인물이 들어있다. 제각각인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를 보면 성격, 신분, 미묘한 심리, 남자들로만 구성된 구경꾼들로 보아 당시 내외를 하던 풍습까지 읽을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김홍도는 그림뿐만 아니라 거문고, 가야금과 같은 악기 연주에도 능했고 시도 잘 지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시서화악의 폭넓은 교양을 갖춘 선비였다. 무엇보다 그의 호쾌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이 이 모든 것에 빛을 부여했다.


이러한 단원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따스한 시선과 사랑이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작품 속에 인물들의 시대와 성품까지 담을 수 있겠는가?

 

 

따뜻한 화가

얼마 전 미술품 수집가의 집을 둘러보며 몇백억은 족히 나가는 고가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으리으리한 집과 그에 어울릴 법한 작품들은 마치 내가 유명 박물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값이 나가는 작품이나 궁궐 같은 집이 아닌 그것을 알아볼 줄 아는 그분의 안목이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지금의 컬렉션을 갖추기까지의 실패경험담을 털어놓으셨다. 그야말로 긴 세월 간의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안목이었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의 따스한 시선과 세심함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듯, 그에게도 따스함 뒤에 감춰진 상처가 있지 않은지 감히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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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_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직하며 겪었던 일상과 예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로 살수 있는지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