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흔적
나의 자아는 타인과 나를 구분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타인과 내가 완벽 했다고 믿었지만 타인으로 인해 내 완벽한 존재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존재는 허점투성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로 인해 내 안에서는 결핍이 생기고 타자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나의 자아는 분리됨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안의 욕망에 갇혀 정체성을 잃는다. "경계성인격장애"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의 작품들은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가진 나의 자아 내 EGO는 불안이라는 균열을 낳는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의 고통을 딛고 완전한 이상의 세계로 나아가려고 한다. 작품 속 불안은 타인과의 분리됨을 인식함으로서 독립적인 상황에 대한 불안, 불안정한 대인관계, 정체성의 혼란, 자신에게 손상을 주는 충동성, 자해, 공허감, 양극성(bipolar) 장애, 망상, 해리, 애정 결핍, 성적의존성으로의 안도 등 불안정의 흔적을 남긴다. 그 안에서의 나의 자아는 이상의 세계로 다가갈 수 없는 대신 흔적의 비극적 음침한 그림자에서 황홀한 도취를 찾는다. 무의식적으로 억압받고 있던 나의 에고는 흔적을 남김으로써 현실 속에서 관계화 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나는 나로서 완벽한 존재를 인식하기 위하여 경계선(Borderline)을 지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 흔적들은 나 자신의 에고 그리고 또 다른 나의 자아에게 위안을 그리는 자위 행위이다. 이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내 안의 에고를 용서하면서 절대 다가갈 수 없었던 타인과의 분리됨을 인식한다. 마음이 분리를 선택할 때 실제로 어떤 사고과정이 일어나는지 스스로 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이 자위 행위를 통해 내 자신이 존재의 근원임을 깨닫고 꿈에서 깨어나려고 한다. -곽나연-
해방의 굴레
언젠가 거울에 비춰보았는데 필름과 스크린, 공상으로 점철된 자위 속에 나는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갈구하고 끝없이 헤매인다. 그토록 원했던 리비도는 공격적이다. 누군가가 나와 한 몸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에게 증오를 품게 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쓴다. 내가 쓴 가면을 통해 형성된 감정을 배출하는 것으로 드라이 오르가즘을 느낀다. 나의 자아가 비록 그 감정을 경험하지 않았거나 혹은 느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을 단순히 가짜라고는 할 수 없다. 현실에서 자기 표출이 허락되지 않을 때 허구의 가면을 통해 드러나는 인격이 오히려 진실한 자기에 더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허구와 대입은 실제로 내가 경험하는 것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 또는 무엇들을 대타자화함으로써 상호 수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자위 행위가 나를 해방시킨다. 직접 종속되어 겪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들을 배제하고 오직 쾌락만을 쫓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느끼는 강한 쾌락은 마치 덧없는 죽음에 도달한 것과 같다. 흥분과 만족이 강해지면 커지다 못해 터져서 우주처럼 흩뿌려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욕망의 만족은 욕망의 죽음이며 이는 곧 순간적인 소멸, 0, 죽음을 의미한다. 타자와 가까워질수록 주체는 자신을 점차 상실하게 되고 그 자리는 텅 비게 된다. 성적 환상에 빠진 자위와 동시에 티베트의 마니차를 돌리며 진언을 외우는 행위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인식하고, 또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또 다른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 -김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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