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고, 누구나 발화하며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세계. ‘자유’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이 감각은 무한한 가능성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며, 선택하고 말하고 연결된다는 감각은 이제 필수 불가결한 전제가 되었다. 우리는 그 전제 속에서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특정 구조 안에서만 허용되어 왔고, 그 구조는 자신을 지우는 방식을 통해 더욱 치밀해졌다. 자유는 선택의 권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선택하도록 강제되는 조건이 되었고, 자율성은 형식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닌 규율된 수행으로 치환된다. 그렇게 자율은 계산 가능한 변수로, 개성은 알고리즘이 선별한 취향으로 정렬된다. 최적화된 개인은 보이지 않는 체제에 반복적으로 응답하며, 다중적 위기에 대한 반성조차 정형화된 틀 안에서 소비된다. 이러한 굴레 속 다양한 존재와 영역의 공존은 설 자리를 잃고, ‘종’은 자본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분류로 재편되고 있다. 감시와 표준화의 풍경 속에서 정복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택을 유도하고 행동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일상에 스며든다. 《종의 사파리 – 나는 정복당했다》는 이러한 정복을 과거형으로 호출하지 않으며, 다가올 정복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하나의 예행연습으로 기능한다. 박소라, 장우주, 정서희는 옴니버스 방식의 작업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가로지르는 기술 담론과 정복 이후의 감각을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이처럼 정복의 구조를 인지하고 직시하는 일은 단지 현실을 마주하는 것을 넘어, 억눌린 전복의 가능성이 질문의 형태로 드러나는 순간이며, 그 질문은 여전히 작동 중인 질서 속에서 오래된 이상을 다시 호명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참여 작가: 박소라, 장우주, 정서희
서문: 류희연
설치: 홍앤장예술사무소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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