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바벨탑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 세상에는 하나의 언어만 있었고, 단어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이후 바벨탑을 쌓은 인간에 대한 형벌로 신은 세상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었고, 낯선 언어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인간은 더 이상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보편성을 잃은 인간의 언어는 여러 갈래로 분화하기 시작했고, 현재 지구상에는 약 7,000여 종의 언어가 존재한다. 비단 언어에서뿐 아니라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Diversity)을 외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다양성의 가치는 인종, 젠더, 디지털윤리, ESG, 환경 등 사회 여러 분야 문제에 대한 해결법으로 자주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세상은 다시 ‘하나의 언어’로 통합되어가는 형국이다. 세계화/대도시화 현상을 동반하며 빠르게 확산되는 표준화된 가치와 글로벌 언어, 그 뒤켠으로 소외되는 소수 화자들의 토착 언어… 주지할 점은 이전의 언어 단일화가 효율성의 가치와 경제적 논리와 같은 우리 내부의 요소에 의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면, 최근 기후위기가 그 주요 원인으로 급격히 부상하며 다른 국면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해수면 상승은 적도 아프리카와 태평양, 인도양 저지대 거주민들에게 실존적인 위협을 가하며 ‘기후난민’ 문제를 만들어내는데, 이들의 강제 이주와 함께 토착 언어 역시 사멸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 환경단체는 현재 600여 종에 달하는 사멸 위기 소수어를 지도로 도해했는데, 흥미롭게도 그 대부분이 지리적으로 대륙의 중심이 아닌 섬, 해안과 같은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인간이 살기 힘든 지역에 오히려 더 많은 언어가 번성하는 것이다. 가장자리 언어의 소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벨탑 이전과 같이 다시 하나의 언어를 구사하게 된 우리는 과연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까?
«언어의 둘레»는 소수어의 지리적 위치를 단서로 삼아 언어와 생명이 함께 죽고 살게 되는 생태적 연결고리에 주목한다. 농업과 가축산업에서 강행되는 유전자 단일화, 공장식 대량생산에서 목격되듯 우리가 생명을 다루는 방식 역시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 언어적 다양성의 소멸은 우리가 자본주의와 세계화 흐름 아래 자행해온 생명 다양성 가치의 소실과 어떤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바누아투(Vanuatu)는 언어와 생물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지구상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곳은 동시에 뛰어난 언어다양성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한 나라 안에서만 자그마치 11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될 뿐 아니라 개인당 구사하는 언어의 수 역시 굉장히 많은데, 이러한 연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섬 역시 현재 기후변화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언어는 가장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지식이다. 역사를 암호화하고, 민족을 정의하며, 토착지의 장소성과 시간성을 비교적 작은 오역으로 담는다. 토착어, 방언, 기록되지 못한 소수자의 말, 비인간의 비언어적 소통체계―이 모두가 서식하는 언어의 둘레. 가장자리의 언어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대안적인 통찰을 제시할 수 있다. 세계를 보고 구분짓는 관점이 각기 다르므로 우리의 지도를 보다 다각도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행성은 때로 민첩하지 않고 시끄러우며, 효율도 낮지만, 위기에 닥쳤을 때 더 많은 대안이 된다. 그런 점에서 다양성 소실은 다만 하나의 종이나 서식지의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는 언어와 생물의 태생적 성질인 다양성으로 동시대 생태문제를 타개할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그 파급력만큼 강한 통섭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와 생물종이 함께 죽는다면, 분명 함께 살릴 수도 있다. 가장자리 존재들의 보존은 우리를 어려움에서 구하고, 오래 살게 하는 열쇠가 된다. 지구상에서 육지의 가장자리는 다만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서식지, 바다와 맞닿아 밀물과 썰물로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중간지대. 지도 둘레의 언어들은 우리의 발치를 안전한 서식지 중심에서 벗어나 소란스런 바깥에 두도록 권한다. 돌이켜보면 언어를 혼잡하게 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 신의 형벌은 오히려 축복이 아니었을까? 진정 끔찍한 종말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으스스한 장면이 아닐까?
참여작가: 김지연, 이수진, 조은지, 홍이현숙
기획, 글: 이소임
그래픽디자인: 마카다미아 오
미디어설치: 올미디어
사운드: 김상현
사진기록: 아인아 아카이브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본 전시는 2024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에 선정 및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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