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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현대의 몸(The Body of Contemporary Era) | ARTLECTURE

No.31 현대의 몸(The Body of Contemporary Era)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Artlecture/
by Celest
No.31 현대의 몸(The Body of Contemporary Era)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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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베이컨의 회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을 무엇보다 ‘몸’을 통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는 정신이나 영혼보다 피부와 근육, 살(flesh)과 같은 육체의 물질성을 강조하였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해체된 몸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화가로,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인간 몸의 해체를 가장 강렬하게 시각화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엄격한 군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 극심하게 갈등하며 유년을 보냈다. 그 갈등에는 베이컨의 성 정체성이 얽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래 집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등 그의 성장기는 순탄치 못했다. 1926, 그는 열여섯 살의 나이로 집을 떠났고, 이후 런던을 거쳐 친척과 함께 베를린과 파리를 여행하며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베이컨은 오랜 시간 무명화가로 지냈으나, 1944년 제작한 <십자가 책형 하단부의 형상들을 위한 세 습작(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그림 1).


그림 1. 프란시스 베이컨, <십자가 책형 하단부의 형상들을 위한 세 습작>, 1944

출처: https://www.tate.org.uk/art/artworks/bacon-three-studies-for-figures-at-the-base-of-a-crucifixion-n06171



<십자가 책형 하단부의 형상들을 위한 세 습작>은 현대미술의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회자된다. 베이컨은 전통미술에서 아름답게만 표현되던 몸을 마치 고깃덩어리와 같은 해체된 야수의 형상으로 그려냈다.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454월 런던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시기의 분위기와 맞물려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 개의 패널에 선홍색 배경과 함께 등장하는 분절된 형상들은 전쟁 이후 인간의 폭력성과 공포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이 작품을 발판으로 베이컨은 영국 현대미술의 주요한 작가로 부상하였다.

 

<십자가 책형 하단부의 형상들을 위한 세 습작>이라는 제목은 이 그림을 십자가 책형이 아니라 그 하단부(base)’라고 지시한다. 전통적인 십자가 책형 도상에서 십자가 아래는 그리스도의 주검을 둘러싼 애도자들, 즉 성모, 사도 요한, 막달라 마리아의 자리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화면에는 정작 십자가에 달린 몸이 없다. 중심에 있어야 할 신체는 부재하고, 그 곁을 지키던 자리만 남아 세 형상이 들어서 있다. 세 개의 패널을 차례로 보면, 형상들은 하나같이 목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나 있고, 얼굴이 있어야 할 곳은 벌어진 입만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 형상은 머리를 어깨에 파묻은 채 흘러내리고, 가운데 형상은 흰 천으로 눈이 가려진 채 이빨을 드러내며, 오른쪽 형상은 길게 뻗은 목 끝에서 짐승의 주둥이처럼 입을 벌린다. 이들은 인간이 해체되고 남은 잔해이자, 동시에 문명 이전의 분노가 육화된 형상이다. 특히 벌어진 입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얼굴이 입 하나만으로 제시된다는 점은 여기서의 몸이 더 이상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하는 신체가 아님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눈도 코도 이목구비의 질서도 사라지고, 남는 것은 비명을 내지르는 입뿐이다. 이 삼면화에서 몸의 해체는 얼굴 전체가 하나의 비명으로 변형되는 순간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베이컨의 회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을 무엇보다 을 통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는 정신이나 영혼보다 피부와 근육, (flesh)과 같은 육체의 물질성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베이컨에게 몸은 이상화된 형상이 아니라 상처 입고 변형되며 고통받는 존재였다. 베이컨 회화에서의 몸을 고깃덩어리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정육점과 도살장의 이미지에 오래 사로잡혀 있었고, 도살된 짐승의 벌어진 살에서 자신의 회화의 원형을 발견했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베이컨을 논하며 이 지점을 고기(viande)’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1)  들뢰즈에게 고기는 살과 뼈가 맞닿는 자리이며, 인간과 동물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지대를 의미한다. 우리가 고통받는 몸을 바라볼 때 그 안에서 결국 하나의 동물, 하나의 고깃덩어리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베이컨의 해체된 형상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함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의 회화는 인간의 몸 역시 다른 동물의 살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 다시 말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육체의 물질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가 몸을 세계와 서로 얽혀 있는 (chair)’로 이해했다면, 베이컨은 그 살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기(viande)로 드러나는 순간을 그려냈다.


그림 2. 프란시스 베이컨, <자화상>, 1969

출처: https://www.francis-bacon.com/node/7465


앞서 보았던 삼면화가 타자의 혹은 이름 없는 존재의 해체였다면, 베이컨은 같은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기도 했다. 그가 1969년에 남긴 <자화상(Self-Portrait)>을 보자(그림 2). 어두운 배경 위로 얼굴이 정면으로 떠오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얼굴 한가운데를 세로로 가르며 휘도는 밝은 붓질이다. 흰색과 분홍, 보랏빛이 이마에서 코를 지나 뺨으로 소용돌이치며, 하나의 얼굴을 두 영역으로 쪼갠다. 한쪽 뺨은 비교적 온전한 살빛으로 남아 있는 반면, 다른 쪽은 그 회오리에 문질려 형체를 잃는다. 두 눈은 남아 있으나 높이와 방향이 어긋나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코는 뭉개진 채 한쪽으로 밀려 있다. 얼굴은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도중에 붙들려 있다. 온전한 절반과 지워진 절반이 한 얼굴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완전한 추상은 아니어서,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한 사람의 얼굴임을 알아볼 수 있다.

 

베이컨의 회화에서 인간의 얼굴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존재의 흔들림을 드러낸다. 그의 회화에서 몸은 안정된 실체가 아니고, 불안과 죽음이 새겨지는 장소이다. 무너지는 도중에 붙들려 있는 이 얼굴은 몸이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손댈 수 있는 열린 살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몸의 해체는 현대인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를 예고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형수술, 문신, 유전자 기술을 통해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재구성한다. 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베이컨이 이러한 신체 변형을 직접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회화는 인간의 몸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끊임없이 변형될 수 있는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현대적 몸의 관념을 선취하였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현대의 몸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출처

1)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하태환 옮김, 서울: 민음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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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Celest_시각예술가로 활동하며 예술철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