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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상상을 걷어내고 빛을 맞이해요 | ARTLECTURE

시스터, 상상을 걷어내고 빛을 맞이해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2024)-

/Art & Preview/
by 제이문

시스터, 상상을 걷어내고 빛을 맞이해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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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2024년 작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인도의 대도시인 뭄바이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세 여자의 삶을 통해 21세기의 인도가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녹록치 않은 곳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라요. 뭄바이가 시간을 훔쳐요. 그렇게 살아요. 덧없음에 익숙해져야죠.”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2024년 작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인도의 대도시인 뭄바이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세 여자의 삶을 통해 21세기의 인도가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녹록치 않은 곳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나 여성들의 삶 자체를 결정짓는 변수가 여성 자신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남성주도의 오랜 관습과 다양한 종교의 공존으로 인한 상호배타적인 종교성에서 기인하는 인도라는 국가의 전근대성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넘어 놀라움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쩌면 인도를 비추는 감독의 이러한 접근법으로 인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까지 받은 이 영화가 정작 자국에서는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작으로도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영화는 뭄바이에 살고 있는 세 여자의 삶을 보여주지만 그 중에서도 프라바의 삶을 중심으로 하여 프라바의 삶과 연결된 나머지 두 여자의 삶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연령대가 다른 세 여자는 같은 병원에 근무하지만 서로 다른 어려움에 처해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프라바는 간호사이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규범에 순종하며 말이 없는 프라바는 시종일관 어둡고 외로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래 전 아버지의 말에 따라 생면부지의 남자와 결혼을 하였으나 남편은 결혼 직후 취업을 위해 그녀를 떠나 독일로 가버렸다. 이제는 연락도 거의 없는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물건은 그가 독일에서 보내온 고급 밥통과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뿐이다. 실체 없는 그의 존재는 프라바의 삶을 적막하고 외롭게 만든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그는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떠한 열망도 품을 수 없게 프라바의 삶을 실제적으로 구속한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누는 역시 간호사이고 프라바와 한 집에 살고 있다. 여느 인도여성들과는 달리 경쾌하게 자른 단발머리와 답답하고 더운 사리 대신 꽃무늬의 현대적 카미즈와 늘 차고 다니는 분홍색 시계에서 이미 아누라는 여성의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드러난다. 그러나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은 밝은 성격의 아누에게는 친언니 같은 프라바에게도 말 못할 커다란 고민이 있다. 힌두교도인 그녀가 시아즈라는 또래 무슬림과 열렬한 사랑에 빠져있는 것이다. 아누와 시아즈는 매일 밤 뭄바이 곳곳을 다니며 남몰래 데이트를 즐기지만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종교의 차이 때문에 시아즈와의 사랑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는 아누는 두려움에 빠져있다. 마지막 여자는 40대 후반 ~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파르바티이다. 그녀는 파르바와 아누가 일하는 병원에서 음식을 담당하고 있는 조리사이다. 아들은 결혼한 후 분가했고 남편은 죽고 없는 파르바티는 22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해있다. 애초에 그곳에 살 때부터 남편이 계약을 알아서 처리했기 때문에 남편이 죽고 나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서류 한 장 없던 그녀는 오랫동안 그곳에 엄연히 거주했음에도 자신의 거주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할 수 없어 아파트를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빛을 상상해야 하는 현실

 

주인공들의 생활 터전인 뭄바이는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인도의 경제문화의 중심지이자 볼리우드라고 불리는 인도영화 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인도의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취업과 출세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모여드는 도시이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뭄바이는 밤에도 잠들지 않고 훤한 조명으로 도시 곳곳을 분주하게 비추지만 도시의 조명도 주인공들의 삶을 밝혀줄 수는 없었다.

 



 

빛이 환한 낮에 우리는 빛을 상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빛이 있다는 사실에 무감한 채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밤이 되어 어둠이 우리를 둘러싸면 그제야 우리는 빛이 있었다는 사실, 빛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로 어둠은 따뜻한 이불처럼 여전한 온기로 우리를 덮어주기도 하지만, 어떤 어둠은 장막이 되어 우리를 차단하고 고립시켜 우리의 삶을 밀실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완전한 어둠에 갇히고 나서야 우리는 빛을 상상하게 되지만, 빛은 상상만으로 생겨날 수 없으니 오히려 우리의 상상은 어둠을 더 어두운 것으로 만들게 된다.

 

부모가 골라준 남자와 갑작스런 결혼을 해야 했던 프라바는 남편이 결혼 직후 떠나버리자 그를 그리워하며 그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상상에만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외롭고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프라바에게 남편을 그리며 살아가는 삶은 빛 한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둠 그 자체와도 같았다. 몹시 외롭던 어느 밤 남편이 보내준 밥통을 끌어안으며 남편의 존재를 상상에서 현실로 끌어오려 하지만 차가운 물건일 뿐인 밥통을 끌어안는 그녀의 행위는 역설적으로 프라바를 더 깊게 어둠속에 묻어놓는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그녀는 빛을 상상하게 되지만 그녀가 상상하는 빛이 남편이라면 그녀의 삶에 빛은 영원히 들어차지 않을 것이다. 상상으로만 가능한 빛, 프라바는 언제쯤에야 빛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우리라는 빛

 

파얄 카파디아 감독은 영화의 초반부에 뭄바이에 사는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이 중에는 기차의 여성 전용칸에서 담소를 나누는 여성들의 모습이 포함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직전 이 영화를 사랑하는 자매와 할머니에게 헌사한다는 글귀를 넣음으로써 관객에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어 누구나 타인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으며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맺은 타인과의 관계는 불행하게도 양가적 특성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관계는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어 절대적 고독 속으로 고립시키는가하면, 어떤 관계는 가장 힘들 때 우리가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후자의 관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지를 시적으로 펼쳐 보인다.

 

영화의 2/3 정도를 차지하는 뭄바이에서는 낮 장면보다는 밤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1/3 정도를 차지하는 프라비티의 고향마을에서의 장면에는 밤보다는 낮이 훨씬 길게 나온다. 그러나 두 장소에서의 밤은 그 의미가 매우 다르다. 뭄바이에서의 밤은 말 그대로 현실의 어려움이 어둠에 그대로 덮여 있는 시간, 빛이 사라져 빛을 상상해야 하는 시간인데 반해, 프라비티의 고향에서의 밤은 그 간의 문제를 어둠속에서 치워버리고 마침내 불빛이 발하는 해변의 식탁에서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또한 낮과 밤의 길이의 차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세 사람 모두 더 이상 낮에 보던 빛을 밤 시간에 보지 못한다고 해서 상상으로 빛을 그릴 필요가 없어진 달라진 상황일 것이다.

 

불행하거나 힘든 상황에 빠지면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내뿜는 빛의 반사체로만 살아가면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잊게 된다. 우리 안에는 언제든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싶은 빛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내게 마음써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면 내가 그들의 빛을 반사시켜 그들의 빛을 증폭시켜줄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 나의 빛을 끌어당겨 나의 반사체가 되어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서로 발광체이자 반사체가 되어 더불어 살아간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사실을 빛과 어둠, 상상을 이용하여 아름답게 빚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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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이문_작가, 영화 팟캐스터 라고 소개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