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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디지털은 다 어디로 갔는가? | ARTLECTURE

그 많던 디지털은 다 어디로 갔는가?


/Insight/
by 유빈
그 많던 디지털은 다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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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팬데믹 시대, 문화예술계를 휩쓸었던 디지털 열풍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일회성 비상 대책에 그친 디지털화가 아닌, 관람객의 진정한 경험을 중심에 둔 지속 가능한 디지털 전환을 위한 성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전시관'이 아니라 '기술을 잘 쓰는 공간'이다.

팬데믹의 한복판이었던 2020, 우리는 스마트폰 너머로 박물관을 거닐고, 거실에 앉아 VR로 그림을 감상했다. 미술관의 영상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하루 수천, 수만의 조회수를 돌파했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디지털 전환을 선언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디지털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덕수궁 중화전 내 VR 체험 모습 SK텔레콤



코로나19가 강제로 불러온 디지털화는 분명 혁신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내놓은 '디지털 전략 2025', 부산시립미술관의 3D 소장품 아카이빙처럼, 많은 기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온라인 인프라를 구축했다. 일부 기관에서는 이후에도 꾸준히 디지털 콘텐츠를 확장 및 운영하며 안정적인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온라인 콘텐츠의 급격한 양적 팽창은, 팬데믹의 종식과 함께 예고 없이 꺼져버린 불꽃처럼 일회성에 그쳤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디지털 기술별 예산 비중
2023 문화 디지털혁신 시행계획



특히, 마치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할 기술로 주목받았던 메타버스의 하향세가 가장 두드러진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7월 발표한 ‘2023년 문화 디지털혁신 시행계획에 따르면, 당시 디지털 문화정책의 예산 배분에서 데이터(18.7%), 메타버스(10.7%), 인공지능(6.8%)이 주요 항목을 차지하는 등 메타버스는 여러 주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한 분야였다. 그러나 이후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실제 활용 간의 괴리가 점차 드러났고, 많은 기관에서 추진된 메타버스 사업들은 지속적인 콘텐츠 운영과 사용자 참여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실상 중단되거나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시작만 창대했던 메타버스 잔혹사

비즈한국, 2024.09.11

 

지자체 메타버스 광풍, 만들고 보니 애물단지

경향신문, 2024.02.20

 

“2억 원 들여 만든 메타버스 하루 7명 방문...예산 낭비

KNN 뉴스, 2024.09.13



MetKids The Metropolitan Mueum of Art


디지털화에 성공한 해외 기관들의 사례는 어떨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디지털 전환에 집중해 왔다. 그들에게 팬데믹은 기존 인프라를 '확장'하는 계기였을 뿐, 우리처럼 '창조'의 순간은 아니었다. 디지털 미술관이라 불리는 '팀랩(teamLab)'의 체험형 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경험을 연결하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기술 도입에만 시급했던 국내의 기관에서는 디지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했다.

 

디지털 콘텐츠의 생명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술로 '관람 경험'을 얼마나 풍성하게 했을까? 메타버스 전시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실재 전시장의 복제물, 이른바 '디지털 트윈'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창작보다는 재현, 감각보다는 정보가 앞섰고, 결과적으로 관람객은 디지털 전시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전시장을 직접 찾을 수 있게 되자, 다시금 '실물'의 힘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안내 로봇 큐아이 국립중앙박물관

 


또한, 디지털 전환에 있어 '기술 쫓기'의 함정도 간과할 수 없다. NFT 아트, 메타버스, 확장 현실(XR)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문화예술 기관의 디지털화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그 '목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단순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도구들은 그 형식에 내포된 본질적 가치들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디지털화의 핵심은 오프라인 전시 공간과 단순히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특히 디지털은 실물 전시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이상적인 관람 경험은 전시 이전에는 디지털을 통해 사전 정보를 접하고, 전시장에서는 실물을 감상하며, 이후에는 다시 디지털로 심화된 이해를 이어가는 순환형 경험으로 구성될 수 있겠다. 이는 단발적인 기술 도입이 아니라, 관람객의 전체 여정을 고려한 정교한 설계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 이응노미술관 대전고암미술재단


그렇다고 여태까지 만들어진 디지털을 폐기 처분해야 할까? 아니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뮤지엄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했는가이다. 디지털 전환은 단지 영상 몇 개 더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큐레이션, 관람객 맞춤형 서비스, 장애인이나 시니어 접근성을 고려한 인터페이스 설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콘텐츠의 맥락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를 활용한 '개인화' 서비스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관람객의 관심사, 이전 방문 기록, 체류 시간 등을 분석해 맞춤형 전시 경로를 제안하거나, 비슷한 취향을 가진 다른 관람객들의 후기를 연결해 주는 식이다.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은 이미 이런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관람객들의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



메타버스 국립조세박물관 국립조세박물관

 


결국 핵심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경험을 위한 기술'로의 전환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기술 그 자체만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술은 관람객의 예술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보완적 역할을 하는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 국내 문화기관들이 디지털 전환에서 재고해야 할 것은 눈부신 '속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향성'이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디지털로의 급격한 전환을 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 디지털화를 하는지, 그 목적에 대한 성찰을 놓쳤다. 이제는 숨을 고르고 디지털 전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볼 때다.



국립광주박물관 가상현실 체험관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기술은 결국 '도구'일 뿐이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우리의 상상력과 사유에 달려 있다.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접근성 확대,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포용성 강화, 그리고 콘텐츠의 깊이 있는 해석을 돕는 디지털 큐레이션,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 기관의 디지털화가 그저 화려한 기술을 쫓는 '디지털 허영심'에서 벗어나, 관람객의 진정한 경험을 중심에 두는 '디지털 공감'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비로소 팬데믹 시대의 혼란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묻는다. 그 많던 디지털은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예전처럼 떠들썩하지 않을 뿐이다. 이젠 그 기술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관람 경험을 바꾸도록 만드는 일이 남았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이제 '기술 전시관'이 아니라, '기술을 잘 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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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유빈_뮤지엄텔러, 박물관과 미술관의 '매개'를 주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