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롱프뢰유 특별전 포스터 ⓒ Musée Marmottan Monet
지난 2024년 프랑스 파리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개관 90주년을 기념하며 《트롱프뢰유, 1520년부터 현재까지》 특별전을 개최했다. 2025년 3월 2일까지 열린 특별전은 루브르 박물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등 다양한 국가의 공공 및 민간기관과 협력하여 16세기부터 21세까지의 작품 약 80점을 전시하였다. 특별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속임수 그림’이라는 트롱프뢰유 회화로, 미술 기법의 시초부터 오늘날의 변용 양상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친절한 흐름 속에서 구성되어 있었다.
Henri Cadiou. The Tear © ADAGP, Paris 2024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속임, 착각을 일으킴’이란 뜻으로 ‘눈속임 그림’이라 번역할 수 있는 트롱프뢰유는 2차원 공간에 3차원 공간과 사물을 매우 사실적인 착시를 통해 옮기는 미술 기법을 의미한다. 주로 회화 작품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표현된 공간이나 사물을 사실로 착각하게끔 하는 기법으로, 건축 및 사진 영화 산업에서는 비슷한 기법으로 ‘인위적 원근법(Forced perspective)’이 있다. (위키피디아, 트롱프뢰유, Trompe-l'œil)
트롱프뢰유는 고대부터 사용된 회화 기법으로, 1800년대 화가 루이스-레오폴드 보일리의 작품명을 통해 용어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금오공과대학교 박성용 교수는 트롱프뢰유 회화가 실재하는 혹은 그렇게 믿어지는 세상을 완벽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트롱프뢰유를 통해 재현된 작품은 원본과 모방 사이의 고정 관계에 놓여 있다고 했다. 즉, 현실과 그 이면의 새로운 가상에 대한 해석을 끌어내는 것이 트롱프뢰유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기획전을 개최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트롱프뢰유를 ‘관객의 시선을 가지고 놀면서 우리 자신의 인식이 만든 함정에 윙크를 날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트롱프뢰유가 관람객의 시각에 도전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시각이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게 하고,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아리송하게 하는 기법이 바로 트롱프뢰유라는 것이다. 트롱프뢰유 작품은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관람객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또 그 이면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Cristoforo Munari © Studio Christian Baraja SLB, 필자 촬영
《트롱프뢰유, 1520년부터 현재까지》는 이 같은 트롱프뢰유의 특성이 아주 적극적으로 접목된 하나의 ‘눈속임 전시’라고 평할 수 있다.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트롱프뢰유가 활용된 예술로, 관람객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끊임없이 헷갈리게 한다. 여기서 재밌는 지점이 등장하는데, 바로 특별전 작품 사이사이 벽면에 그려진 ‘숨겨진 작품’들이 그 주인공이다.

트롱프뢰유 특별전 내부 전경 ⓒ 필자 촬영
위 사진을 얼핏 본다면, 특별전에서 트롱프뢰유 작품을 찍은 사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의 깊게 봐야 할 지점은 바로 우측 상단부의 반원형 액자 속 모래시계와 수건으로 추정되는 오브제로, 전시장 벽면의 색깔과 비슷한 톤으로 그려진 것이 관람객의 시선에서 숨으려는 듯,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발견해 주길 바라는 듯, 마치 ‘숨겨진 작품’처럼 전시장 곳곳에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 ‘숨겨진 작품’들은 전시된 작품의 연장선인 예술인지 아니면 고도의 전시장 디자인인지 관람객을 헷갈리게 하는데, 전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어디에 숨겨진 작품이 없나 벽면을 유심히 살펴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영화에서 이스터에그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트롱프뢰유 특별전 내부 전경 ⓒ 필자 촬영
특별전 속에 숨겨진 작품들, 이스터에그는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한 구역에서는 창문의 형태를 한 이스터에그를 연달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시장 벽에 그려놓은 창문 형태의 그림은 그 자리에 정말 창문이 있는 것처럼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켰고, 밖에 날씨가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씨가 좋았나?”와 같은 착각 상태에 빠지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태는 숨겨진 작품들을 고심하며 바라보는 또 다른 관람객들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다.

트롱프뢰유 특별전 내부 전경 ⓒ 필자 촬영
전시 후반부, 두 작품 사이에 선반 위 책이 쌓인 모양의 새로운 이스터에그가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작품을 감상하며 그 옆에 있는 숨겨진 작품을 발견하는 정도였다면, 이 부분에 진입해서는 전시장 벽의 그림이 메인 작품이 되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내 어떤 관람객들은 액자 속 걸려있는 작품이 아닌, 전시장 벽의 이스터에그를 감상하며 논의하게 되었는데, 이 모습은 또 다른 관람객에게 무엇이 전시장의 작품이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헷갈리게 하는 새로운 눈속임 장치가 되었다.
즉, 작품의 흐름을 따라 트롱프뢰유를 좇아가던 전시가, 전시장 속 이스터에그로 인해 어느새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는 보물찾기 현장이 되어버렸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작품 속에 담긴 눈속임이라는 순간을, 전시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스스로 목격하고 발견한다는 현실적인 감각으로 경험하게 하였다.

트롱프뢰유 특별전 내부 전경 ⓒ Studio Christian Baraja SLB
파리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눈속임’이라는 주제의 특별전 속에 새로운 형태의 ‘눈속임’ 경험을 녹여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람객은 개별 작품에서만이 아닌,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그리고 또 다른 관람객을 통해 무엇이 실제이고, 가짜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즉, 미술관의 숨겨진 이스터에그가 오히려 전시에 더욱 몰입하는 효과를 유도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요소를 찾아가고, 숨겨진 작품을 만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전시의 일부가 되고, 새로운 문법으로 관람객의 경험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는 마치 ‘이스터에그’를 찾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
이스터에그는 ‘영화, 책, CD, DVD 등에서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을 뜻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스터에그를 찾는다’라는 표현은 미디어 매체를 통한 특정 콘텐츠에서만 왕왕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 미술관 속에서의 이스터에그는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전시 속에 미처 발견하지 못해 흘려보냈거나, 찾았음에도 주의 깊게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미술관에서 마주한 작품 속,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숨어있는 이스터에그는 단순히 숨겨진 예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시각과 감각을 자극하는 작은 발견이다. 그리고 이는 미술관을 관람의 공간에서 탐험의 장소로 변모하게 한다. 그렇다면 미술관 속 이스터에그란 무엇일까? 우리가 보지 못한 구석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 속에서, 이 원고를 읽는 모두가 자신만의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는 그런 전시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박성용, 2022, 입체주의 회화에서 트롱프뢰유 요소의 시뮬라크르 특성: 브라크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학예술학연구, 한국미학예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