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원고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번 글에서는 아시아, 유럽, 미국, 신흥자본국의 뮤지엄 클러스터를 전체적으로 훑어보고자 한다. 국내에서도 특정 지자체 또는 기관 주도로 클러스터의 형태를 표방하고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관람객이 이를 ‘문화지구’로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국외의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본 원고의 목적이다.
조사 대상의 수가 많기에 사례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개괄적인 내용과 특징적인 지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아시아 권역의 뮤지엄 클러스터 사례를 살펴보자.
싱가포르 - 길만 바락스

길만 바락스는 싱가포르 중앙정부에 의해 조성된 동남아시아 지역 최초의 현대미술 문화지구로, 국가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는 문화 산업을 증진하는 공간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을 국가 경제 발전 전략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다양한 문화 발전 정책과 사업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중 길만 바락스는 ‘르네상스 시티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종합 발전 전략이다.

길만 바락스의 특징은 타 예술 클러스터와 달리, 도심이나 중심지에서 떨어진 외곽에 입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길만 바락스가 입지한 공간은 영국 식민지 시절 해군기지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전쟁 이후에는 도시 외곽의 상업 지구로서 시민들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과거 역사가 담긴 ‘길만 바락스’가 자국의 현대미술을 진흥하고,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시도하였고, 이것이 ‘길만 바락스 프로젝트’로 연결되었다. 길만 바락스에서는 현대미술 창작, 전시, 구매가 이루어지고 학술적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한 학위 관련 시설을 계획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길만 바락스의 현실적인 운영은 그리 녹록지가 않은데,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 공간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길만 바락스는 도시 중심부가 아닌 외곽에 위치하여서 예술 향유와 함께 방문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편의시설이 충분히 구비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대에만 운영하는 식당을 제외하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거의 부재하다. 이와 같은 요인 등으로 길만 바락스에 대한 시민사회의 호응도는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현재 길만 바락스의 갤러리는 기존의 13곳 중 6개만이 남아있다.
홍콩 - 서구룡 문화지구

이러한 길만 바락스와 달리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복합 편의시설로 홍콩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부흥하고 있는 공간이 있는데, 바로 서구룡 문화지구이다. 홍콩은 구룡의 해안가를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쇼핑몰 K11 뮤제아, 홍콩아트뮤지엄 등의 시설을 집적시키며 새로운 예술 클러스터를 형성하였다. 현재는 홍콩 고궁박물관, 엠플러스 뮤지엄, 아트 파크, 프리스페이스, 시취 센터 등이 설립되어 전시, 음악, 공연 등을 아우르는 홍콩의 대표적인 관광시설로 자리 잡았다.

서구룡 문화지구의 특장점은 클러스터 내 조성된 넓은 휴식 공간과 편의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트 파크(Art Park)로 불리는 해당 공간은 문화지구의 서쪽에 위치하여 방문객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자유롭게 피크닉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려동물과 아동에게 친화적인 공간임과 동시에 다양한 야외 문화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푸드트럭, 버스킹, 식당과 카페, 퍼스널 모빌리티 등 문화 향유 외 관광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포착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 서구룡 문화지구 사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클러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기관의 집적성과 함께 방문객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쉼’의 공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독일 - 베를린 박물관 섬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아시아 권역의 클러스터와 달리 오랜 기간 유기적으로 조성된 유럽 지역의 클러스터 사례를 살펴보자. 우선 독일의 베를린 박물관 섬이다. 베를린 박물관 섬은 1828년부터 1930년에 걸쳐 건립되었으며,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문화예술 특구다. 베를린 박물관 섬은 구박물관(Altes Museum), 구국립 미술관(Alte Nationalgalerie), 신박물관(Neues Museum),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 보데 박물관(Bode-Museum)의 5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를린 박물관 섬의 특장점은 5개의 뮤지엄을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해 각 건축물이 갖는 건축학적 독자성을 보존하면서도, 하나의 내용적 요소로 결합했다는 것이다. 또한 200여 년 이상의 건축물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도심 개발과의 조화와 균형을 맞추거나, 고고학 산책로와 같이 클러스터와 주변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즉, 베를린 박물관 섬은 문화유산과 현대적 도시가 상생하는 공간으로, 도심에서 문화와 예술을 교류하는 플랫폼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은 홍콩의 서구룡 문화지구와 유사하게 방문객의 휴식 공간 및 편의시설의 측면에서 특장점을 가지고 있는 문화지구이다.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은 중앙의 거대한 잔디 광장과 그 주위를 둘러싸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라익스 뮤지엄(Rijksmuseum Amsterdam),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 콘세르트허바우(Concertgebouw) 4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된 예술 클러스터이다.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은 뮤지엄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행사뿐만 아니라 중앙의 거대한 광장을 활용해 시민을 위한 복합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여름철은 거대한 호수, 겨울철에는 스케이트장과 같이 문화예술 공간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방문할 수 있게끔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은 뮤지엄 클러스터를 효과적으로 활성화하는 방안을 유효하게 설정했다는 것과 동시에 박물관, 미술관 자체의 진입장벽을 낮추게 했다는 지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미국 – 워싱턴 내셔널 몰

워싱턴 내셔널 몰은 워싱턴DC의 중심부에 있는 문화 집적 지구로, 서쪽의 링컨 기념관과 동쪽의 국회의사당 사이로 2km 이상 연결된 거대한 문화공간이다. 워싱턴 내셔널 몰은 민주적 가치와 역사가 깃든 미국의 선조들을 기리는 국립공원이자 워싱턴의 미술관 특구로, 메모리얼 파크(Memorial Parks)와 내셔널 몰(National Mall)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는 워싱턴 국립미술관, 국립 흑인 역사박물관,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박물관,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 등 박물관과 미술관이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추모비, 참전 용사 기념비 등 국가적 영웅을 기리는 공간으로 각 구역의 테마가 정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셔널 몰의 중심에는 박물관, 연구소, 동물원을 포함한 총 23개의 기관으로 구성된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이 자리 잡고 있다. 루스벨트 정부에 의해 내셔널 몰의 형성을 함께 이끈 스미스소니언 인스튜티튜션은 미국 수도 국립공원에 걸맞은 뮤지엄 지구로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브랜드 파워는 내셔널 몰이 전통적인 역사적 공간이자 새로운 방식의 문화 놀이터로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넓은 부지를 기반으로 한 퍼스널 모빌리티 투어, 테마 도슨트 투어 등과 같이 민간이 운영하는 연계 프로그램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내셔널 몰은 국가를 중심으로 역사 문화적 토대를 형성함과 동시에 민간 주도의 새로운 연쇄적 문화 경험을 창조하였다는 점에서 특장점을 지닌다.
미국 –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는 필라델피아의 거대한 대로를 중심으로 한 스트리트형 박물관 클러스터로, 세계 1차 대전부터 이어져오는 약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약 1.6km의 도로는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시작해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에서 끝나며 파크웨이는 로댕 박물관, 반스 재단 박물관, 무어 미술 대학 등과 같이 뮤지엄 및 예술 대학 등이 집적되어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는 문화지구 내 다양한 야외 공공미술품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총 30개의 공공미술 컬렉션으로 구성된 야외 조각품은 시청에서 시작해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페어 마운트 공원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헨리 무어, 로버트 인디애나 등 저명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20세기 초부터 미술관, 교육기관, 공공미술 작품의 문화적 메카로 발전하고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는 독특한 클러스터의 형태에 알맞게 ‘벽 없는 박물관 오디오 투어’ 등의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신흥자본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신흥자본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거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문화지구를 선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알울라 사막에서 2020년부터 해외 예술가들과의 미래지향적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와디 알판’이라고 불리는 전시 공간과 알울라 작가 레지던시 등과 같은 시설을 집적시켜 사막이라는 독특한 지역의 특징과 이를 활용한 색다른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 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예술계와의 교류를 촉진해 알울라가 새로운 문화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연의 고유한 지형을 강조했다면, 아랍에미리트는 세게적인 뮤지엄을 공격적으로 유치하여 새로운 문화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아부다비의 도시 활성화를 위해 사디야트섬을 거대한 뮤지엄 클러스터로 조성하여 새로운 도시의 이미지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루브르 아부다비와 구겐하임 아부다비와 같이 적극적인 해외 뮤지엄 유치하였고, 문화과 교육을 중심으로 한 문화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각 권역별 사례를 통해 국외 문화 클러스터의 개괄적인 내용과 각 공간마다의 고유한 특징을 살펴보았다. 어떤 곳은 뮤지엄 콘텐츠와 정체성을 강화하며, 또 어떤 곳은 뮤지엄과 주변 시설 간의 연계를 통해서 시민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해외의 사례를 깊이 있게 알아갈수록 한국에 적합한 ‘한국형 클러스터’에 대한 고찰이 더욱 풍부해지는 듯싶다. 국내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맞춰, 한국인의 공감과 문화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우리만의 클러스터는 어떤 형태가 될 수 있을까?
참고자료
윤정실, 2015, 정부 주도형 현대미술 클러스터 연구: 싱가포르 길만 바락스 사례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