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위국일기><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러브 라이즈 블리딩> | ARTLECTURE

<위국일기><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러브 라이즈 블리딩>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Part2.-

/Art & Preview/
<위국일기><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러브 라이즈 블리딩>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Part2.-
VIEW 646



<위국일기> (違国日記, 2024)

서른이 넘은 소설가 마키오(아라가키 유이)는 유년 시절 언니 미노리(나카무라 유코)의 모진 말에 잊지 못할 상처를 입고 절연한 채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한 마키오는 장례식장에서 엄마를 잃은 열다섯 살 조카 아사(하야세 이코이)를 면전에 두고 속닥거리는 친인척들에게 욱한 나머지, 원체 낯가림이 심한 천성을 깜빡 잊고 오갈 데 없는 아사를 자기 집에 데려가겠다고 선언한다. 인생에서 결혼과 출산을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마키오는 ‘아사’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정신이 벙벙하다. 반면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사는 다행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무사히 일상을 보내고, 특유의 엉뚱함과 친화력으로 이모 마키오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본인이 느끼고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할뿐더러 언제든 돌아갈 정서적 공간을 잃은 아사는 종종 심리적 방황을 겪는다. 분명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었으나 갑자기 덩그러니 홀로 존재하는 환시를 경험하는 장면, 친구의 사과 메시지에 답장하려고 하지만 어떤 이모티콘을 써야 할지 모르는 장면 등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원제 ‘違国日記(위국일기)’에서 ‘違国(위국)’은 ‘어긋난 세계’를 의미하며, 갑작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같은 공간에서 다른 형태의 고독과 방황을 경험하는 등 본질적으로 다른 마키오와 아사의 마음을 은유한다. 다만 <위국일기>에서 세타 나츠키 감독은 비극적인 사건을 현재로 소환하고 뒤쫓는 방식과 최대한 거리를 둔다. 대신에 ‘日記(일기)’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세타 나츠키 감독은 마키오와 아사 사이에서 점차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을 담백하게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마키오는 힘든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기대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아니며, 더 나아가 언니이지만 아사의 엄마이기도 한 미노리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키오는 아사의 생각을 항상 존중하며 자존의 가치를 자각하도록 묵묵히 곁을 지킨다. 그런 배려 덕분에 아사는 누군가의 부재를 다른 존재로 대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과거의 일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을 점차 터득한다. 이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카오와 아사는 ‘이모-조카’, ‘보호하는 자-보호를 받는 자’와 같은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한 가지 형태로만 정의할 수 없는 사랑과 우정의 가치를 함께 만들며 공존해 간다. 그런 시간과 순간들을 세심하게 지켜보는 <위국일기>만의 시선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을 감동과 여운을 안긴다. 한편 <위국일기>(2024)는 야마시타 토모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으며, <파크>(2017)와 <지오라마 보이 파노라마 걸>(2020)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세타 나츠키 감독의 신작이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메리 고 라운드]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 (青春並不溫柔, 2023)

1994년 타이베이의 한 미술대학에 입학한 치웨이(리링웨이)은 부당함에 대해 직설을 할 줄 알며 전향적이지 않은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치웨이는 학과장으로부터 일방적인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치웨이는 학교 관계자에게 쫓기다가 전단을 흘린 다른 학과 선배 칭(엽화비)과 우연히 마주친다. 널브러진 전단지를 함께 줍던 치웨이는 칭이 학교에서 부당하게 퇴학을 당한 학생의 학과 더불어, 학과장의 퇴진을 위해 투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불의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와 자유를 꿈꾸는 칭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치웨이는 학생 시위단에 참가하고, 그곳에서 치웨이는 칭과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회장 광(장락제)을 만난다. 이렇게 세 인물의 관계는 얽히고설키기 시작하고, 이와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보고 투쟁하던 학생들의 사이에 균열이 일어난다. 1990년대 대만의 민주화 운동 시기에 일어난 실제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2023)은 국가적 배경은 다르지만, [화양연화 – 삶이 꽃이 되는 순간](2020), [오월의 청춘](2021) 등과 같은 ‘운동권 로맨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에서 그려지는 관계들은 시대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투쟁의 시작과 끝을 냉철하게 탐구하는 역할로서 기능한다. 유명한 정치인 가문의 딸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전시되기를 격렬히 거부하는 칭과, 정치권의 손을 잡더라도 온건한 방식으로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광은 연인으로서 한마음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투쟁에서 소외되는 칭의 모습을 통해 명백해진 두 사람의 비대칭적 관계성은 학생 시위단의 분열을 암시한다. 여기에 비슷한 감정을 나누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여러 차례 갈등을 겪는 치웨이와 창의 모습은 시위에 뛰어든 학생들의 흔들리는 시간과 맞물려 있다. 결정적으로 치웨이와 창 사이에 광이 끼어들며 발전된 삼각관계는 갈등 끝에 이상적인 결말과 멀어진 학생 시위단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그렇지만 34일간의 투쟁이 마무리된 이후, 본인들의 솔직한 감정을 깨닫고 목소리를 내는 치웨이와 칭을 끝까지 세밀하게 응시하는 카메라는 격랑의 시기를 통과해 평온을 찾은 이들의 곁을 지켜주는 인상을 주며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한편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은 <반교: 디텐션>(2019)의 결말 30년 뒤인 1999년을 배경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반교: 디텐션](2020)을 연출했던 소혁선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메리 고 라운드]




<러브 라이즈 블리딩> (Love Lies Bleeding, 2023)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막을 올린 <러브 라이즈 블리딩>(2023)은 <세인트 모드>(2019)로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해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감독상(부천 초이스: 장편)을 수상했던 로즈 글래스 감독의 신작으로,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든 루(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잭키(케이티 오브라이언)가 예기치 못한 살인을 저지르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 로맨스다. 잭은 자신의 과거에 오점을 남긴 아버지 랭스턴(에드 해리스)을 증오해 마을을 떠나려고 하지만, 남편 JJ(데이브 프랭코)의 일상적인 폭력에 가스라이팅을 당한 언니를 보살피고자 체육관 매니저로 일하며 무료한 일상을 견디고 있다. 그런 루 앞에 보디빌더 대회 우승을 꿈꾸는 잭키가 나타난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단숨에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바로 동거를 시작한다. 허나 이들의 평화를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자신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준 JJ가 루의 언니가 사경을 헤맬 만큼 폭행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잭키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아파하는 연인을 대신해 살인을 저지른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귀가하던 루는 잭키의 살인을 알게 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든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사랑과 살인에 휘말린 두 사람은 왜곡된 욕망과 거세지는 폭력으로 점철된 마초 사회에 맞불질하며, 마을 끝자락에 있는 골짜기에 오래도록 숨겨진 비밀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로즈 글래스 감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인트 모드>에 이어 다시 한번 초월적인 현상과 이미지를 활용한다. 오컬트 영화의 맥락에서 초월적인 현상이 묘사되었던 <세인트 모드>와 달리,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당혹감을 초래한다. 그렇지만 로즈 글래스 감독은 수차례 잭키의 근육을 과도할 만큼 클로즈업해 연출하는 등 비논리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며,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현실성을 따지는 영화가 아님을 명명백백하게 밝혔다. 그렇기에 무모하게 질주하는 루와 잭키의 사랑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되레 폭발적인 감정과 함께 해방감을 선사한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개막작]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