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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만든 필름 - 한지 네거티브 | ARTLECTURE

한지로 만든 필름 - 한지 네거티브

-오석환 작가-

/Artist's Studio/
by 최다운
한지로 만든 필름 - 한지 네거티브
-오석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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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한지 네거티브가 보여주는 디테일은 일반적인 카메라 필름이 갖는 디테일에 필적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필름에 묘사된 디테일은 인화물(프린트)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묘사력을 보여준다. 농담의 표현 또한 보통 필름이 갖는 압축적인 농담이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에 평범한 인화물이 표현하는 그러데이션(gradation)을 압도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날로그 사진은 감광 유제를 입힌 필름을 빛에 노출해 상을 담고, 이를 인화지(일반적으로 종이)에 인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필름 사진이라 하면 보통 이러한 작업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독특한, 아니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아날로그 사진 작업을 소개한다. 지난 4, 대학로 혜화 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에서 사진가 오석환은 한지 네거티브"라고 직접 이름 붙인, 한지로 만든 필름을 이용해 촬영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그동안 알고 있던 일반적인 한지 작업은 촬영한 필름을 한지에 인화한 것인데, 오석환 작가가 개발한 한지 네거티브는 한지를 카메라에 넣어 그대로 촬영한 작품이다. 필자는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여 이번 전시와 작업 기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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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우다작품 - 한지 네거티브 작업 ©오석환

 


Q. 먼저 한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작가는 한지 인화도 해 보았고, 두 번째 개인전 Another Try: Hanji에서는 한지를 필터처럼 덧대어 만든 한지 마스킹 인화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발표한 한지 네거티브까지, 한지라는 소재를 꾸준히 활용해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처음 한지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지, 작가가 생각하는 한지의 매력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A. 한지를 처음 사진에 접목할 때는 첫 개인전(Lith Print Collection, 2018)을 마치고 일 년 뒤인 2019년쯤이다. 처음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서 한지를 구입하는 일부터 시작해 암실에서 한지를 다루고, 한지를 배접 1)하거나, 아교반수2) 하는 과정까지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면서 2020년에 두 번째 개인전 Another Try: Hanji를 할 때는 한지 마스킹 작업을 주로 선보였는데, 그때는 한지라는 매체(medium)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당시 한지 네거티브 작업은 아직 미완성이었는데, 지난 2년 넘는 시간 동안 또다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마무리하게 되었고, 비우다에서 작업을 선보이게 되었다.

 

한지를 자세히 관찰하면 다양한 종류의 질감(texture)이 자연스럽게 조합되어 하나의 종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질감은 한지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또 같은 종류의 한지 안에서도 무작위로 다른 질감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섬유질이 얽힌 미세한 구멍의 보풀 같은 흠결도 한지 안에서는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표면적인 특징이 내가 느끼는 한지의 매력이다.

 

한지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무척 억센 성질(robustness)이다. 아날로그 사진 작업 특성상 처리 과정에서 꽤 긴 시간 물(혹은 화학 용액)에 종이를 담가 놓아야(액침) 한다. 이번 작업도 약품으로 현상-정지-정착을 하는 과정에 최소 1시간, 마지막 수세 과정에서는 최소 1시간 반 정도 물속에 두면서 잔존 약품을 씻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 액체 속에 두어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종이 재질은 흔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날로그 사진 작업에 적합한 몇 안 되는 종이 재질의 재료이다.

 

또한 수묵화 등 보통 한지를 사용하는 예술 분야에서는 한지가 거시적인 소재라면, 한지 네거티브는 작은 필름 크기에 대상의 디테일을 담아내는 미시적인 작업이어서, 처음에 말했던 한지 특유의 오밀조밀한 질감이 증폭되는 효과도 있다. (제작 과정부터)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한지는 아날로그 감성의 소재이며, 비슷한 감성의 시각예술을 표현하는 매체(medium)로서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비우다작품 - 한지 네거티브 작업 ©오석환



Q. 한지 네거티브는 한지를 지지체로 이용하여 만든 필름이다. (일반적인 필름은 얇은 플라스틱 지지체 위에 빛에 반응하는 유제가 발라져 있다.) 작품을 직접 보면서 한지 위에 묘사된 대상의 디테일과 농담의 정도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한 것에 감탄했는데, 유제를 흡수한 한지의 표현력이 영향을 미친 걸까? 대형카메라 렌즈의 해상력 또한 영향을 주었을 듯도 한데, 한지 네거티브 결과물의 특징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A. 한지 네거티브가 보여주는 디테일은 일반적인 카메라 필름이 갖는 디테일에 필적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필름에 묘사된 디테일은 인화물(프린트)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묘사력을 보여준다. 농담의 표현 또한 보통 필름이 갖는 압축적인 농담이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에 평범한 인화물이 표현하는 그러데이션(gradation)을 압도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5x7인치의 한지에 오브제를 압축적으로 배치하고, 주위는 모두 여백으로 두는, 그야말로 비우다"를 체현한 이미지를 걸었다. 작은 크기를 통해 관객이 한 걸음 더 다가서도록 하고, 디테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이끌려 했다. 오브제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여백의 한지가 주는 질감도 중요한 요소다.

 

 

Q. 피사체로 식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을 보면서 한지 네거티브로 풍경을 찍으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봤는데, 앞으로 한지 네거티브 작업을 다른 대상으로 확장할 계획은 있을까?

 

A. 전시를 준비하던 초기에 두 가지 고민을 했다. 하나는 작품 크기(대형카메라 포맷)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최종 결과물이 네거티브인데 포지티브(인화물)와 같은 느낌이 가능할 것인가였다. 첫 번째 고민인 작품 크기는 4x5인치는 좀 작았고, 8x10인치는 다루기에 너무 컸기 때문에 자연스레 중간 포맷인 5x7인치로 결정하게 되었다. 작품이 조금 작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실제 8x10 인화지에 여백을 두고 인화하는 것과 비교하면 결코 작지 않다.

 

오브제로 식물을 선택한 이유는 전시 주제, 내가 구현하고 싶던 느낌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였다. 최종 결과물이 펜으로 그린 소묘나 붓으로 그린 회화적 느낌의 포지티브 이미지처럼 보이길 바랐는데, 이 부분이 피사체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 전시 주제인 비우다"에 맞춰 가능한 여백을 많이 두고 싶었던 것도 식물을 찍게 된 이유다. 꽃을 찍을 때는 흰색 또는 밝은 색 계열을 이용하여, 결과물인 네거티브에서는 검은 붓으로 그린 꽃과 같은 느낌이 나도록 하였다. 그 밖에 들풀 같은 소재를 찍을 때는 밝은 톤의 줄기가 가는 드로잉 펜으로 그린 소묘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한지에 입힌 유제의 감도가 굉장히 낮고(ISO 2~3 정도), 대형카메라 특유의 조리개 설정(f45~90) 때문에 장노출 촬영이 필수였다. 가장 짧은 노출이 10초 정도이고, 길게는 2분 정도까지 노출했다. 여기에 더해 접사 촬영이기도 해서 더욱더 피사체가 움직이지 않아야 했는데, 생화는 노출 도중 미세하게 흔들리거나 시들어 버려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촬영할 때는 꽃잎이 좀 더 단단한 것을 고르거나, 보존화(preserved flower)를 써야 했다. 꽃이 아닌 풀을 찍을 때는 오랜 시간 잘 말려서 촬영 중에 시들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미리 준비했다.

 

한지 네거티브는 앞서 설명한 대로 네거티브 프로세스이다. 그래서 야외에서 풍경을 찍는다면, 우리가 보통 현상된 필름을 볼 때와 같은 네거티브(반전) 이미지를 얻는다. 그러면 다소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되므로, 적절한 결과물을 얻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미니어처 같은 피사체를 찍어서 약간 풍경 같은 느낌이 나도록 시도해 보기도 했는데, 전시 주제인 비우다"와는 배치되어 배제했다.

 

 

조금 설명을 덧붙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카메라 필름을 현상했을 때는 상의 밝기가 반전된다. 예를 들면 밝은 곳은 어둡게, 어두운 곳은 밝게 표현되며(반전/네거티브), 이 필름을 가지고 인화를 하면 다시 정상적인 상(포지티브)으로 보인다. 그러니 작가의 설명처럼 네거티브이지만 포지티브처럼 보이기 위해, 흰색 꽃을 촬영하여 마치 검은 꽃 같은 느낌이 나도록 한 것이다.

 


비우다작품 - 한지 네거티브 작업 ©오석환

 


 

Q. 한지에 입히는 감광 유제가 온도에 상당히 민감하여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한지 네거티브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유제나 한지를 사용하는가? 작품의 보존성은 어떠할지, 한지에 정착한 유제가 어느 정도로 안정적인지도 궁금하다.

 

A. 현재 상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유제는 3~4종류 정도인데,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롤라이(Rollei) RBM3(Variable Contrast) 제품을 사용하였다. 유제는 실온에서 고체 상태로 암상자에 보관되어 있는데, 적정온도 이상에서는 액체가 되어 다양한 매체에 입힐(coating) 수 있다. 처음에는 유제를 다루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고, 코팅 방법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결국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붓칠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RBM340~45 정도의 온수에 중탕하여 사용했는데, 한지에 도포하는 순간에도 중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유제가 바로 굳어 버려서 쓸 수가 없었다. 이후 여러 번의 실패 끝에 5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며 유제를 바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암실에서 진행해야 하므로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한지는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를 테스트하였는데, 너무 얇으면 다루기 까다롭고 결과물의 디테일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반면 2 합지 이상으로 너무 두꺼우면 카메라 필름 홀더에 장착이 안 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두 가지 제약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의 한지는 별다른 제약 없이 유제의 지지체로 사용 가능하다. 보존성의 경우, 한지 네거티브는 내가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기존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지 자체의 보존성은 수많은 역사 유물을 볼 때 더 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유제의 경우, 정확한 수치 같은 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지금 우리가 쓰는 형식의 필름이 상업화된 이후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동안 큰 문제는 없었으니 어느 정도 안정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에 아교반수 처리를 해서 보존성을 높였다.

 


Lith Print Collection작품 - 리스 프린트 작업 ©오석환

 

 

Q. 첫 개인전 Lith Print Collection(2018)에서 선보인 리스 인화부터 두 번째 개인전 Another Try: Hanji(2020)의 한지 마스킹 인화, 그리고 이번 전시까지 계속해서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혹은 오석환이 최초로 시도하는 독특한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다. 꾸준한 창작과 전시의 원동력은 무엇이며, 작가에게 사진이란 어떤 의미일까?

 

A.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시한다(showing)는 것은 한없이 두려운 행위다. 어찌 보면 전시라는 이벤트는 마치 알몸으로 관객들 앞에 부끄럽게 서 있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일 수도 있다. 내가 2차원 평면의 사진을 통해 대단한 철학적 고찰이나, 강렬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러한 전제 조건에서 능력의 한계를 고민하였고, 그나마 덜 부끄럽게 대중 앞에 나설 수 있으려면 조금은 새로운(something new)’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스 인화(lith print) 작업은 접하기 어려운 과거의 기법이어서 관심을 받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전시를 준비할 때는 나조차도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사진을 생각했고, 그때 착안한 소재가 한지였다. 리스 인화의 매력은 샤프한 이미지와 더불어 엄청나게 거친 결과물이었는데, 한지 마스킹 기법을 통해 거친 질감의 표현을 이어가려 했다. 필름과 한지를 겹쳐 인화하면 한지 종류에 따라서 결과물이 무척 거칠게 나오는데, 단순히 필터를 사용한 인화물과 달리 한지의 질감에 따라 날카로우면서도 거친 입자감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거친 입자감을 추구하는 것은 현대 디지털 사진이 보여주는 극강의 선명도(sharpness)에 역행하는 의미도 있었다. 예술에는 본능적으로 시류를 거스르는 반항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지 네거티브 작업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과 더불어 디지털이 범접할 수 없는, 작은 크기에서의 디테일과 압축적인 계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디지털 센서와 포토샵이 대표하는 동시대(contemporary) 시각예술 세상에서 과연 새로움은 무엇이고, 예술적 반항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늘 고민한다.

 

이에 더해서, 사진이 예술이 되려 할 때 맞닥뜨리는 치명적 단점 - 복제성(duplicability)을 거세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리스 인화는 긴 현상 시간의 마지막 단계에서 급격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며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기법으로, 동일한 결과물을 두 장 이상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지 마스킹 인화는 기술적으로 여러 장을 만드는 것은 가능했지만, 딱 한 장의 에디션만 인화하여 복제 가능성을 나 스스로 제거했다. 비우다의 작품들 또한 결과물이 필름 원본이므로 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에디션(unique print)이다.

 

내 작업이 그저 과거의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시대에서 새롭다고(혹은 흔치 않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앞으로도 내가 갖고 있는 기술과 기법을 조합하며 무언가 새로운 나만의 사진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Another Try: Hanji작품 - 한지 마스킹 인화 작업 ©오석환

 


참조.

배접: 한지의 문양, 질감 등을 강화하기 위해 2장 이상을 덧붙이는 작업

아교반수: 한지에 물감이 번지거나,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교, 백반, 물을 섞은 액체를 입히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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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다운_아마추어 사진 애호가로 뉴욕의 사진 전문 갤러리에 대한 <뉴욕, 사진, 갤러리>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