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소박한 전시> (2017) 참여형 퍼포먼스와 설치 ⓒ김진아
이러한 접근들의 시작은 작가 본인이 살아오며 한국인, 여성, 장녀, 80년대생, 예술가, 커뮤니티 가드너, 유부녀 등 복합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쌓아온 학습들과 경험들에 있다. 이러한 학습과 경험들에 대한 접근방식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4회에 걸쳐 변주한 그녀의 퍼포먼스 <남이 해준 밥> 시리즈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남이 해준 밥 ver.1> (2017)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김진아 작가 ⓒ김진아
필자와 2017년 함께 한 전시 《친절한 무기력》에서 처음 선보인 <남이 해준 밥 ver. 1>은 작가가 ‘신혼부부-아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의무감과 불편함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아침밥을 요구한적 없는 남편을 두고, 괴로워하며 아침에 굳이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는 본인은 가정에서 ‘아내’이자 ‘어머니’인 사람이 아침에 가족의 밥을 차리는 모습을 경험하며 자라났다. 그녀의 표현을 빌어 학습을 통해 ‘세습된’ 역할과 의무를 마주하고, 또 ‘아내’ 혹은 ‘어머니’인 개인이 이를 수행하기 위해 겪는 고통과 무기력을 ‘간장버터밥’이라는 메뉴로 투사했다. 간편하게 끼니를 떼우는 메뉴인 ‘간장버터밥’은 어린 자녀를 굶길 수 없다는 의무노동과 개인의 피로 사이에 갈등을 보여주는 메뉴이자 자녀의 입장에서 맛있게 먹었던 추억의 메뉴이다. 작가는 ‘아내’가 아닌 ‘예술가’ 혹은 ‘남-타자’로서 이 메뉴를 관객들에게 제공하였고, 사람들은 따듯한 밥을 먹으며 작가가 던지는 화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남이 해준 밥 ver.3> (2018) 퍼포먼스 ⓒ김진아
2017년 후쿠오카의 “art space tetra”에서 진행한 두번째 버전 이후, 2018년 《서대문여관아트페어》에서 진행한 <남이 해준 밥 ver. 3>에서 작가는 ‘남-타자’라는 정체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비일상적인 속도의 움직임을 선보이며, 관객들 사이에서 “밥은 먹고 다니니?”, “저기 밥이 있어 가져다 먹어”와 같은 말을 건내며 ‘김진아’라는 개인을 지웠다. 이전 시리즈에서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신혼부부인, 딸인, 아내인 부차적인 이미지를 좀 더 거둬내고, 관객들이 일상적인 밥을 먹는 행위에 비일상적 요소를 더하여 그 행위에 집중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남이 해준 밥 ver.4> (2019) 퍼포먼스 ⓒ김진아
2019년 It’s A PIECE OF CAKE의 감윤경의 기획으로 진행한 <남이 해준 밥 ver.4>는 후암동 베이킹 스튜디오인 “케이키”에서 이벤트로서 진행되었다. 이곳에서는 그녀는 다시한번 ‘남-타자’이자 ‘식사를 준비하는 호스트’로서 관객들과 바에서 직접 마주한다. 그동안의 시리즈는 이미 완성된 밥을 그대로 제공했다면, 4번째 버전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노동의 모습을 드러내며 식사를 대접하고 작가와 관객은 서로의 먹고사는 일상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페미니즘의 코드로 읽혔던 프로젝트는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현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숨은 노동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하려 시도한다. 이는 비단 <남이 해준 밥> 시리즈뿐만 아니라 <오 이 소박한 전시>, <미식의 출처> 그리고 현대인이 먹고사는 과정에서 숨겨진 노동인 작물과 농사 이야기를 담은 <교환의 출처>, <방랑자의 농장>까지 다양한 프로젝트과 결과물에서 그 결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연출한 일련의 예술적인 사건들은 다양한 장소들에서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