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 순간 숨이 멎다.
Vessel, 구본창
머리 속이 시끄러울 때면 들여다 보던 사진이 있다. 살결처럼 뽀오얗던 작고 아담한 백자 사진. 한 순간 숨이 멎으며 고요한 진공상태가 된다. 그러면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던 머리 속이 서서히 맑아지곤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몇일 전 종료된 구본창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후, 그의 책을 통해 바로 그 진공상태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는 책 말머리에서 말굽 자석의 진동을 이야기 하며 그가 찍은사물과의 교감이 일종의 에너지처럼 필름 속에 스며든다고 믿는다는 이야기를 했다.[1]
스민다.
그의 사진은 대체로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 스며 들어 묘한 공명을 일으킨다.
I. 구본창의 항해 전(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3.12.14-2024.03.10)
2024년 도봉구에 서울사진미술관 개관을 앞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국현대사진계를 이끌어 온 구본창 작가의 회고전이있었다. ‘수집’ 과 ‘기록’ 에 일가견이 있다고 알려진 그의 작품 500여점과 자료 600여점. 꽤 방대한 규모였다. 전시는어린시절의 그가 바라보는 바다 저편이 찍힌 사진과 데미안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구본창의 항해 전시 중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1877-1962), 데미안 1919
그리고 그가 정체성을 찾아 온 과정을 크게 세 파트로 보여 준다. 항해의 시작으로 그의 키워드 중 하나인 ‘수집’품들을 보여주고, 다시 시작 할 익명자로의 새로운 항해의 열린 결말을 마지막으로총 5섹션(호기심의 방, 모험의여정, 하나의 세계, 영혼의 사원, 열린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 백자 사진을 기대하고 들어섰지만, 그의 강렬하고 수많은 초기작들을 보면서 피로함을 느낀다. 서둘러 올라간 2층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백자를 발견했지만 이미 피로해진 시지각에 한계가 느껴져 무언가를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난 골드시리즈. 사실. 첫 방문에서 이 골드시리즈가 나에겐 제일 강렬하게 다가왔었다. 침묵과 수수함으로 가던 사진들이 왜 갑자기 화려한 골드로 변했을까. 그것이 나는 내내 궁금했다. 다른 이유로 이후 두어차례 더 방문, 도록을 보고, 책을 보며 그제 서야 구본창 작가와 그의 삶, 그의 작품들, 그리고 전시에 대한 지도가 조금씩 다시 연결되기 시작한다.
초기작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화처럼 조각처럼 보면 볼 수록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았다. 정체성을 찾아 헤메며 작업하던 자화상과 나 중심적 관점과 사물들에서 생과 사를 고뇌했던 <굿바이 파라다이스>와 <숨>연작을 계기로 관심이 세상의 모든 존재로 확장 되는 작가로서의 성장의 과정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의미가있었다. [2]
그리고 무엇보다 왜 익명자로 전시가 끝나는지 그 이유를 헤아릴수 있었는데…
II.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그것을 굴절없이 살아내기 위해서는.
사진은 양가적이다.

JR, 브라카쥐,래드리 Braquage, Ladj Ly
예술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작업을 하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시도를 하는 작가가있다. JR(1983~)[3]이 대중에게처음 알려지게 된 건 레미제라블의 감독이기도 했던 친구이자 흑인 영화감독 ‘래드 리(Ladj Ly, 1978~)‘’를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부터였다.
그를 찍기 위해 렌즈 초점을 맞추는 동안 동네 아이들이 다가왔고, 이 순간이 우연히 담겼다고 한다. 유색인종이 들고 있는 카메라. 사람들의 첫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우리의 인식은 대체로 왜곡되기 쉬우며, 미디어는 그 편향을 강화하는데 한 몫을 한다.
그런데, 얼핏 무기처럼 보였지만 실은 카메라였던 것이 여실히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 한 일이다.
스냅샷 SnapShot
존 버거는 그의 책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 우리로 하여금 보도록 만드는 것에 대한 가장 직설적인 형용사는 ‘사람의 이목을 끄는’ 이라는 것이라 표현한다. 그는 고통의 순간을 찍는 사진에 대해 예를 들며, 이 사진들이 찍힌 시간은 일반적인 시간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의 순간들은 ‘있음직한’ 것이며, 시간에 대한 그 밖의 모든 경험과는 다르게 ‘시간’이 맨 앞에 자리 잡게 만들어 고통의 순간을 격리된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총이나 카메라에서는 ‘take a shot’ 발사하거나, 찍는다는 공통된 표현을 가진다.
최근 김인정 저널리스트는 기자의 관점에서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 대한 사유를 했다. 우리는 이미지들에서. 아니,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타인의 고통을 사유한 수잔 손택의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현대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고 소비하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가고 있다.
도로시아 랭, 이민자어머니Dorothea Lange, Migrant Mother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예술가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사진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극복하고, 행동을 촉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진가와 예술가들은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은 이민자 어머니의 사진이다. 이 사진이 전세계로 실리면서 미국의 대공황 시절 농촌으로 구호품들이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역시 하나의 폭력이라고 여겨지며 불쾌감이 올라 왔었다. 왜냐하면 이 어머니는 이 표정으로 역사 속에 영원히 박제 되었기 때문이다. 이 어머니가 과연 그러길 원했을까. 이후에 찾아본 결과 이 이민자의 어머니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않았다는 역설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사진가는 돈을 벌었고, 다큐멘터리 사진은 발전했으며, 샌프란시스코신문 전면에 이 어머니의 얼굴은 방방곡곡 전해져 사람들의 원치않는 동정을 사고, 이 어머니 본인에게가 아닌 다른 쪽으로의 후원은 분명 일어났지만 말이다. (이 어머니는 자신의 사진이 방방곡곡 실린 것에 대해 소송을 걸려고 했었다고 한다. 후에 심장병에까지 걸렸고 추후에 이 이야기를 알게 된 후에야 이 분의 삶에 병원비가 후원되었다.)
한 장의 사진은 그냥 소비될 수도, 행동을 촉구할 수도, 개인의 삶을 분투하게 할 수도, 절망하게 할 수도, 무력하게 할 수도 극복하게 할 수도 있다.
구본창의 사진
그러나 구본창의 사진은 삶의 모순을 극복 하려고도 저항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행동을 요구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그 모든 모순과 양가적인 삶의 양태들을 사진 안에서 순화시키고 순환시킨다. 가장 아름다울 사물의 시선을 은유로 잡아낸다. 그것이 자신을 그토록 주장하는 여타의 다른 사진작품들과 또 구본창작가의 초기 작품들과 다른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사물과 사람, 동물이 있지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순간과 주제를 은은하게 공명시킨다.
구본창은 어린시절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물에 대한 섬세한감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반면 이런 성향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결국 그 자신 스스로가 익명자가 될 수 있는 해외에 나가서야 한국사회에서 가진 온갖 라벨을 떼고 자기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역시 아이러니 하게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표면적으로는 반대했고, 그렇게 구본창의 인생에서는 일시적으로 장애가 되었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양모섬유회사일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해외의 물건들로 미적인 감각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 이런 모순들은 구본창의 작품에서 저항의 극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눈의 띄지 않는 사람들이 지나쳐 다니는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에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표정을 보고, 그들과 함께 논다. 고독은 누구에게나 외롭게 다가오는 일이지만 고독한 순간에 자기자신의 자화상을 찍으며 논다. 비누를 찍으며 논다. 서랍속에 이야기들을 저장하며 스크랩들을 정리하며 논다. 그러다보면하나 둘 이야기가 쌓여 섬세하고 예민하게 생과 소멸,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존재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양가적인 감정들이 내 안에서 녹아 순화된 공명의 순간들을 낚아채는 통찰의 힘을 자연스럽게 얻게되었던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 열었다던 새 시좌[4]전은 아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 그래서 익명자라는 열린 결말로 또 다른 관점을 발견하기 위한 새로운 항해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나를 모르는 곳으로 끊임없이 흘러가야 할 숙명적인 익명자로서의 삶.
감춰진 비밀을 찾아 내고야 말겠다는 사냥꾼의 시선도 방사형으로 의미는 생성된다. 어떤 순간을 낚아 채야만 하는 사냥의 행위는 동일하지만, 피사체가 동일하다 해도 그 안의 숨겨진 어떤 이야기를 찾아 내는가 하는 점. 고통을 구경하는 현대 사회의 시선에서 숨 쉴 아름다움을 찾는 시선. 이왕이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는 시선이 좀 더 많아진다면 좋지 않을까.
Soap, 구본창 홈페이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그것을 굴절없이 살아내기 위해서는.
내가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스며 들며 아름다움으로 드러나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익명의 공간으로 나를 끊임없이 흘려보내야 한다.
구본창, 익명자
“ 세월은 어느샌가 ‘구본창’이라는 이름 앞에 하나둘씩 수식어를 붙여 주었지만, 이름보다는 내가 살아온 과정이 나를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내가 살아온 시대는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한국이고, 그 과정을 바탕으로 누군가 또 새로운 문을 열고 흔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방법을 찾으며 새로운작품으로 세상과 호흡하고 싶다. “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301page
[1]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안그라픽스 008page
[3] JR(1983~) 프랑스 출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4] 1.사물을 보는 자세 / 2.개인이 자기의 입장에서 사회를 보는 시점을 이르는 말. 지식 사회학의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