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카엘 하네케 감독과 관련된 키워드를 물어본다면 대개 ‘리얼리즘’과 ‘폭력’일 테다. 물론 단순히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사회에서 목격할 수 있는 폭력성과 목격하게 되는 선정적인 사건을 작품 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 본인은 직접적 폭력을 당한 적이 없지만 초기작에 해당하는 <히든>(2005)이 묘사하는 알제리 전쟁에 관한 유럽인의 부채감처럼,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사회적 맥락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폭력을 과연 묵과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감독이다. 이와 같은 고민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와 거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뇌로 이어진다. <아무르>(2012) 이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연출한 다음 장편인 <해피엔드>(2017)는 페이스북 메신저, 스냅챗, 유튜브 스트리밍 등을 숏의 일부로서 활용한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이 작품을 ‘도전적’ 혹은 ‘거장의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해피엔드>은 지금까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영화를 매개로 고민하고 탐구하고자 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갈수록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SNS를 소재로 현대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하는 폭력적 측면과 소통 및 관계의 붕괴를 이야기한다.

<해피엔드>는 에브(팡틴 아흐뒤엥)가 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일상과 엄마의 우울증 치료제를 먹은 햄스터의 모습을 스냅챗으로 생중계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오프닝은 가정에서 고립된 아이들이 이 상황을 대처하지 못했을 경우 어떤 미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는 <하얀 리본>(2009)을 떠오르게 하면서도, 시작부터 감독 본인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에브처럼 사랑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불안한 심리가 어떤 가학적인 행위로 표출될 시 과연 우리가 쉽게 비난할 수 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그다음에 나오는 붕괴 이미지는 로랑 가의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를 담아낸 CCTV 화면으로, 만약 소통이 무너지고 누군가 소외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면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뒤이어 나오는 또 다른 붕괴 이미지는 앞서 보여준 공사 현장의 붕괴 사고 소식을 전달하는 TV 뉴스 화면으로, 타인의 고통을 무심히 전달하는 디지털 매체와 이를 무관심으로 지나치는 현대인의 태도를 조준한다. 결국 연속적인 붕괴 이미지들을 통해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그로 인한 결과를 함축해서 전한다.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 이후 에브가 칼레에 있는 로랑 집안의 부르주아 저택에 들어오면서 그 집안의 민낯이 공교롭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저택에는 조지(장-루이 트린티냥), 앤(이자벨 위페르)과 그녀의 아들 피에르(프란츠 로고브스키), 그리고 토마스(마티유 카소비츠)와 그의 딸 에브와 갓난아이 폴이 함께 지내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 모두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나, 서로에게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평화가 위협받을까 봐 항상 불안 속에 살아간다. 이에 대해 보다 더 깊게 파고들자면, 앤은 가족에게 다정한 듯해 보이지만, 기실 그녀는 권력과 경영 세습을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 쓴다. 특히 앤이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보이는 걱정은 애정을 빙자한 무관심일 뿐이다. 반면 토마스는 권위 있는 의사로 각광받지만, 페이스북 메신저 채팅창을 비추는 인서트 컷은 그가 가정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욕구에 사로잡혀 있음을 명확히 나타낸다. 여기에 두 사람은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과 난민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본인들의 권력과 인맥을 적극 이용해 사고를 뒷수습하고 은폐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치매에 걸린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조지는 잠깐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직접 이뤄낸 성공과 명성이 무너지는 과정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끊고자 한다. 무엇보다 가족 내 붕괴이자 부르주아의 파멸은 자식들에게도 전염되는데, 허울뿐인 가족이라는 벽에 갇힌 피에르는 당연히 애정을 바랄 수 없으며 자율성까지 박탈당하면서 경영 세습의 도구로 전락한다. 결국 이성을 점차 잃어버린 피에르는 돌발적 행동을 반복하며 소외되기를 자처한다. 로랑가(家)에 들어간 에브는 새로운 가정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다시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무엇보다 아빠가 두 번째 아내 아나이스(로라 베를린덴)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직감한 에브는 삶에 대한 증오와 좌절감에 자살 시도를 하는데, 본인이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른 이유를 전혀 깨닫지 못한 아빠의 모습에 더는 가족에게 이해 받기를 포기한다.

후반부에 도달하면 영화 제목과 다르게 행복한 결말과 거리가 대단히 멀다. 어쩌면 영화 제목에 어떤 문장 부호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음에도 대면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로랑가(家)의 장면은 무관심과 거짓된 태도에 내재된 폭력성이 이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심적으로 파괴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피엔드>에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포착하고자 한 폭력의 정점은 조지와 에브 사이에서 발생한다. 식사 장면이 나오기 이전에 조지와 에브는 서재에서 단둘이 있게 된 순간이 있었다. 그 장면에서 조지는 에브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던 속내를 털어놓고, 이에 에브는 지금까지 어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조지 앞에서 꺼낸다. 이렇게까지 놓고 보면 일련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해피엔드>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을 더 이상 밀고 가지 않는다. 대신에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초의 싹을 곧바로 제거하고 그 자리에는 조지가 에브에게 먼저 접촉한 진짜 이유, 즉 본인의 삶을 끊고자 에브를 이용하고자 한 게 드러난다. 결국 조지가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을 방관하고 SNS로 생중계하는 에브의 장면은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는 삶의 방식,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모든 존재를 도구로 삼는 이기적 태도 등 현대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목격하는 사회적 병폐에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회적 폭력이 어떻게 우리에게 돌아올지 경종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