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우리는 왜 가족일까 | ARTLECTURE

우리는 왜 가족일까

-배종헌, <가족보고서> 展, 2017.4.28.~7.9. 경기도미술관-

/Artist's Studio/
by youwallsang
Tag : #아버지, #어머니, #, #5월, #가족
우리는 왜 가족일까
-배종헌, <가족보고서> 展, 2017.4.28.~7.9. 경기도미술관-
VIEW 675

HIGHLIGHT


5월 한 달은 가족 봉사(!)로 시간이 빠듯한 달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답시고 길게 늘어진 연휴는 뒤로 갈수록 포탄 난무하는 전쟁터로 피곤의 주범이 되고, 가족과 함께하는 휴일의 발랄함은 깊은 한숨의 골을 패며 이마에 주름을 남기고 끝나기에 십상이다.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의 사람들(그렇기에 치명상 입기 쉽다), 사랑이니 희생이니 온갖 위대한 말들을 일상의 껌처럼 씹고 있는 사람들(아무리 위대한 말들이라도 일상 속에서 비벼질 때 평범해진다). 피 튀기는 왕좌도, 한 푼 아까운 재산싸움도 남이 아닌 가족의 일이다. 가족이 무엇이기에, 작가는 가족에서 무엇을 볼까.

낯선 남녀가 유별나게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해 함께 사는 것이 가족의 시작이다. 같이 끼니를 걱정하고 잠자리를 나누며 서로 다른 곳에 있더라도 저녁이면 한곳으로 모이는 것. 그러다 둘의 마음만으로는 뭔가 불안하고 미심쩍어 사람들을 불러모아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받고, 각자의 식구들까지 친족 관계로 끌어들이면, 그것이 결혼이다. 애정은 주관적인 취향일지 몰라도 결혼은 사회적인 승인제도다. 시작은 벅찬 애정과 약간의 책임이 전부였겠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애정과 책임은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 그리하여, 줄어든 애정과 늘어난 책임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새로운 가족의 등장이다. 


<미인>, 2016, 캔버스에 아크릴, 259.1X193.9



개체를 하나하나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은, 하이브리드hybrid 몸체의 괴상한 생명체가 입을 벌린 채 몸을 세우고 있다. 어두운 배경을 등지고 힘겹게 편 몸은 두꺼운 진흙 덩이처럼 뭉쳐있다. 백조의 마지막 울음 같은 긴 목의 울렁거림은 누구의 제지에도 멎지 않을 것만 같다. 그것은, 돌덩이를 잔뜩 넣고 꿰맨 늑대의 배를 닮은, 거북이 등처럼 살이 튼 상체를 한 손으로 간신히 올려 붙잡고 있다. 허벅지부터 발등까지 코끼리 다리 같은 하체는 무릎이 접힌 채 붙박인 나무처럼 구부정하다. 뒤로 젖혀진 머리를 따라 아몬드처럼 뾰족해진 가슴이 비늘 위로 솟아있다. 이건, 임신한 ‘아내’의 몸이다. 새로운 가족을 자신의 몸 안에 품고 있는, 이상하고 괴상한 몸, 지극히 동물적인 ‘엄마’의 몸으로 변신하고 있는 ‘아내’의 몸이다. 그녀의 몸은 임신중독으로 다리가 퉁퉁 부었고, 늘어난 뱃가죽의 살은 논바닥처럼 텄고, 비늘처럼 터진 살갗 위로는 찌를듯한 가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있다. 그녀는 자신의 ‘변신’을 힘겨워하며 다른 세상으로의 탈출을 위해 외짝 날개를 펄럭인다. 달라진 몸, 고통스러운 변화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상.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 ‘남편’의 무력감이 진흙 빛의 배경 뒤로 깊은 수렁을 만든다. 



<어떤 거인>, 2013~16. 실크에 혼합재료, 288X208X10



두 사람이 만든 세상 속에 새로운 등장인물이 생겨났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며. 눈물과 웃음의 원초적 근원이며, 너무도 확고한 독재자의 등장이다. 아이는 예쁘다. 세상의 모든 새끼는 다 예쁘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귀여움과 애교를 최고의 무기로 장착했고 우리는 그 앞에서 일찌감치 두 손 들고 항복 자세를 취한다. 오죽하면 평생 할 효도를 7살 이전에 다 한다고 했을까. 아이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민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몸집에 비해 커다란 머릿속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다른 세상이 들어있다. 아이 주변의 사진 꼴라쥬는 소인국의 걸리버가 놀다 버린 장난감처럼 두서없이 흩어져 있디.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어르기까지, 작품의 제작 기간 내내 ‘부부’는 아이라는 블랙홀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부모’가 되었다. 부모의 저 재바르고 아당스런 손길 끝에서 아이는 자유롭고 온전하게 자랄 것이다. <어떤 거인>은 동분서주 우왕좌왕 헐레벌떡 갈팡질팡하는 작은 ‘부모’의 분주함 속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어느 가족을 위한 엘리자베스 카라>, 2016, 혼합재료, 가변크기



벽에 걸린 5개의 카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화려한 레이스 카라를 본뜬 가족 구성원들의 것이다. 작가는 반려견 ‘산’이의 중성화 수술 후 상처에 입질을 못하게 두른 넥 카라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좌절된 본능, 거세된 욕망의 카라. 배종헌 작가는 가족의 욕망을 제 목에 두를 수 있는 카라로 제작했다. 레고 장난감을 좋아하는 아들의 카라는 <가장신화>, 꽃을 사랑하는 딸은 꽃으로 만든 <꽃밭예찬> 카라를, 거듭 어디론가 날아가고픈 아내의 카라는 깃털로 만들어진 <자유여신>이다. 아내를 붙잡기 위한 남편의 고육지책 카라는 고무장갑으로 만들어진 <싱크황제>이며, 중성화 수술로 본능을 거세당한 ‘산’이는 <권리장전>이라는 카라를 목에 둘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카라의 순서는 가족 내 권력의 방향이라고 한다. 어린 아들에서 반려견까지 다섯 식구의 서열은 자신만의 욕망을 과시하며 벽에 걸려 있다. 가부장적 체계는 와해 되고(작가 ‘남편’과 반려견 ‘산’이의 자리가 바뀐 것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서열이 낮을수록 욕망은 (함께 살기 위해) 조절되고 잘린다. 아직 욕망에 충실한 이들만이 권력의 윗부분을 차지하며 밝게 웃고 있다. 



<엘리자베스 카라를 한 가족사진>, 2016, 디지털 C 프린트, 디아섹, 150X225



가족사진은 가족의 화목함과 행복의 순간을 고정하기 위한 보여 주기 장치다. 그래서 가족사진 속의 구성원들은 시끄럽게 웃거나 조용하게 미소 짓는다. 각자의 욕망을 목에 두른 작가의 가족사진은 하얀 바탕 위에 비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위해 ‘엄마’로 변신했던 ‘아내’는 얼굴을 지운 채 제 깃털로 카라를 만들어 여전히 날아가지 못하고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아이들의 해맑음은 욕망과 현실을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 욕망을 욕망해도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가진 권력이다. 검은 고무장갑 속에 얼굴을 끼운 작가 ‘남편’은 반려견의 목줄을 잡고 가족으로부터 한 발 떨어진 곳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다. 가족의 변신이 여전히 진행 중인 어느 날의 한 장면이다. 




마더링의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어머니에게 허용한 유일한 과잉은 고통뿐이다.

- 캐서린 매코맥 <시선의 불평등>, 아트북스




평범한 여성이었을 그녀는 ‘아내’에서 ‘엄마’가 되려고 원치 않는 <미인>이 되어 타인의 시선을 견딘다. ‘엄마’에게 주어진 것은 단 두 가지. 눈물과 젖뿐이다. D형 몸매는 모성이라는 이미지 아래에서 미화되고 숭배를 받지만, 고통은 오로지 그녀만의 것이다. <어떤 거인>의 블랙홀 속으로 뼈를 갈아 넣는 소인국 사람은 누구인가. ‘백조 왕자’의 어린 누이는 오빠들의 날개옷을 짜고 있을 뿐 자신의 날개를 짜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입을 다문 채 쐐기풀에 손가락을 뜯기며 마지막까지 옷을 짓는 그녀는 날아갈 생각도 못 했다. ‘엄마’도 얼굴을 지운 채 날지도 못할 깃털을 뽑아 겨우 목에 둘렀다. 가족의 시작부터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마디마디에 자리 잡은 변신의 귀재는 누구인가. 객관적인 시선과 안타까운 마음을 건네는 남성 ‘남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그의 전부다. 변신을 추동하고, 블랙홀에서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서열에 밀려날지언정 여전히 꿋꿋한 ‘남편’은 고통스러운 변신 없이 자진해서 ‘아빠’로 이름만 바꿔 달았다. 권력의 서열에서 어쩌면 자발적으로 밀려나 한 걸음 떨어져 방패막이처럼 반려견을 앞세우고 있는 ‘그’는, 음쓰를 버려주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하루 1시간짜리 이름뿐인 <싱크황제>는 아닐까. 엄살을 떠는 황제가 돌아본 가족 속에는 누군가 계속 변신하고 있다. 동일한 토대 위에서 강요된 변신을 이어가는 누군가는 우리가 왜 가족인지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지워진 얼굴이 유난히 궁금한 5월이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쓴이 youwall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