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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섬: 가파도, 그리고 홀리 아일랜드 | ARTLECTURE

예술과 섬: 가파도, 그리고 홀리 아일랜드


/Site-specific / Art-Space/
by 아치
예술과 섬: 가파도, 그리고 홀리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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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현대카드와 제주시가 함께 진행한 '가파도 프로젝트'는 2018년에 종료된 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운영과 수익에 대한 지역 주민간의 갈등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영국 북부의 작은 섬인 홀리 아일랜드에서 예술을 통한 지역 재생 실험을 진행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프로젝트를 운영했으며, 지역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

필자는 섬을 좋아한다. 육지와는 사뭇 다른 변화무쌍한 기후, 눈만 돌리면 펼쳐지는 바다를 사랑하고, 들고 나는 것에 날씨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점을 특히 좋아한다. 오로지 그 날의 날씨에 따라 배에 몸을 실을 수 있을지 아닐지 전전긍긍 하노라면,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에 순응해야만 하는 섬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많은 시간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제주도에 딸린 작은 섬들 중, 서귀포 운진항에서 배를 타면 15분 남짓 걸리는 ‘가파도’라는 섬이 있다. 4월이면 온 섬이 청보리로 가득하고, 이리를 둘러보고 저리를 둘러봐도 바다와 평지뿐이라는 주민 수 200여명의 작은 섬이다.



가파도와 청보리밭



사실 제주도에 가면 가파도를 가보겠노라고 벼르던 이유는 현대카드의 ‘가파도 프로젝트’를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파도 프로젝트는 아름다운 자연을 복원하고,  경제 생태계를 재조성하며, 문화 예술 기반 조성을 통해 가파도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아티스트 레지던시, 빈집을 이용한 게스트하우스, 어업센터, 여객선터미널 건립 등을 현대카드가 제안하고, 제주시가 148억이란 상당한 자본을 투자하여 2013년부터 6년에 걸쳐 진행했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 한 후, 2018년에 이태원에서 열린 가파도 전시를 시작으로 여러 쟁쟁한 건축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 일처럼 기뻤다. 한국적 지역 재생 프로젝트의 좋은 표본을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 들려오는 소식들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가파도 마을협동조합과 비조합원 주민들의 운영 수익 배분에 대한 갈등, 게스트하우스 건물 영업 정지, 주민끼리의 고발, 고소같은 어두운 소식들이 먼 바다를 건너 심심치않게 들려왔다.



가파도 아티스트 레지던시, 코로나로 잠시 프로그램을 중지했었다.



가파도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사실 이런 프로젝트는 어렵다. 작가와 전시 관람객, 컬렉터를 기본으로 진행되는 보통의 전시에 비해, 원주민, 이주민, 예술가, 행정가 같이 성격이 다른 많은 집단들이 한 배를 타고 항해를 하게 되고, 비교적 큰 자본이 들어가며, 따라서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고, 보통 지역 원주민들은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외지의 먹물들이 순수 예술이랍시고 들이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경험상 예술을 이용한 지역재생 프로젝트는 생각하지 못했던 암초의 연속이며, 프로젝트의 결과만 가지고 펌하하기에는 여러 관계자와 일부 가파도 주민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너무나도 귀하다. 148억이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만한 자본을 가지고 거대한 청보리 조형물을 짓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가파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람들이 섬의 안녕을 진정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필자는 영국의 홀리섬 (Holy Island)을 떠올렸다. 홀리섬은 섬 한바퀴를 운전해서 돌아보는 데 단 10여분이면 충분하다는, 스코틀랜드에서 약 2시간 떨어진 인구 150여명의 작은 섬이다. 하루에 단 두 번, 썰물 때에만 섬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생기는 재미있는 제약이 있는 섬이기도 하다. 



Holy Island, Copyright_Capt. E.R. James, Colonel Cameron, via Wikimedia Commons



공교롭게도 같은 2013년, 제주도와 현대카드가 가파도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당시에 홀리섬에서도 작지만 유의미한 지역 재생 연구를 시작했었다. 줄리 크라우쇼 (Julie Crawshaw)라는 노섬브리아 대학의 연구자와, 홀리섬 지역 개발에 주민들이 배제되는 것을 우려한 지역단체*가 협력관계를 맺으며 1년간의 연구가 시작되었고,  총 25명의 아티스트가 이 섬에 머물며 지역 주민, 도시계획 공무원들과 함께 섬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주민들이 예술을 통해 지역개발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목적을 가지고 여러 워크샵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를 전시로 만들었다. 섬 사진 찍기, 바닷가에서 춤 배우기, 섬의 소리 채집하기 같은 재미있는 워크샵을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예술가와 지역사회 공무원들,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났다. 그리고 주민들의 눈으로 섬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2013년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끝날때 즈음, 홀리 아일랜드는 약 30억원의 외부 지원*을 받아내는데 성공하며 주민과 자연친화적인 개발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항구 접근성 강화, 자원봉사자 운영프로그램, 야생화 복원 같은 15개의 놀랄만큼 알차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2018년에 종료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종료된 현재에도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운영중이며, 각각의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Peregrini Lindisfarne Landscape Partnership 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The Holy Island of Lindisfarne, Northumberland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약 5년간 이어진 홀리아일랜드의 여정은, 가파도와 닮아있으면서도 다르다. 둘 다 인구 수 150-200여명의 작은 섬이며, 외지 사람의 관광이 잦은 섬이다. 예술을 통한 지역 개발 사업을 거의 같은 시기에 시도했으며, 사업에 들인 총 기간 또한 각각 5년과 6년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가파도는 145억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바탕으로 섬의 건축적, 물리적 인프라를 갖추는 데 비중을 두었다면, 홀리 아일랜드는 주로 섬의 자연환경을 주제로 한 소규모 워크샵과 커뮤니티 활동을,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예산을 가지고 진행하였다. 추측컨대 섬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만약 가파도 프로젝트에서 좀 더 소프트웨어적인 컨텐츠들을 개발했다면 어땠을까. 굵직한 사업만 부각이 되어서 드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마는, 만약 섬 주민들간의 생태를 이해하고, 주민들과 가파도 자연환경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프로그램 개발에 긴 시간을 들였다면, 태왁 만들기, 지역 주민과의 산책, 돌담 쌓기 같은 소소하지만 섬 주민들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문객들과 온전히 같이 화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좀 더 있었다면, 만약에 그랬다면 큰 문제가 되었던 지역 주민간의 갈등이 조금은 줄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맘때의 가파도는 사람들이 만든 이런 저런 문제를 무색하게 할 만큼 매우 아름답다. 섬과,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매년 섬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있는 한 섬 지역 재생 프로젝트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그러니 제주도에 갈 일이 생기면 꼭 방문하여 가파도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어보기를 권한다. 서귀포 운진항에서 8시 40분부터 약 30분에 한 대씩 여객선을 운영중이며, 본 섬에서 가파도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단, 날씨가 궂은 날은 배가 뜨지 않으니 예약 전 날씨 확인은 필수다. 자전거로 해안을 따라 달리면 20여분 남짓 걸리는 작은 섬이지만, 제대로 보기 위해서 적어도 한나절은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족적을 찾아내고, 나름의 평가를 내려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각주
*홀리아일랜드 파트너쉽 (HIP)
 
참고 문헌 

월간디자인/ 가파도 프로젝트: 월간 디자인 :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 | 매거진 | DESIGN (designhouse.co.kr) 

제주 MBC/ 가파도 프로젝트.. 깊어진 주민 갈등: ②가파도 프로젝트…깊어진 주민 갈등 ::::: 기사 (jejumbc.com)

홀리섬의 오두막 (2013): https://nrl.northumbria.ac.uk/id/eprint/14463/1/VisualStudiesYH.pdf

아일랜드 메이킹 (2013): https://nrl.northumbria.ac.uk/id/eprint/30759/1/Island%20making.pdf

 

가파도 가는 법

마라도 가파도 정기여객선 (wonderfulis.co.kr)

가파도 (visitjeju.net)

 

홀리 아일랜드 관련 정보 (영문)

Peregrini Lindisfarne Landscape Partnership

The Holy Island of Lindisfarne | Visit Northumb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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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치_전시 기획도 하고, 작업도 하고, 밭도 갑니다. 공간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