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소위 말해 가장 ‘힙’한 곳은 아무래도 마레(Marais)지구였다. 작은 골목들 사이로 유명한 편집샵과 책과 커피, 패션이 한곳에 모여 있는 그런 곳이 마레지구다. 마레지구에 편집샵 ‘메르시<Merci>’가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특히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고 주변에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많아 다양한 파리지엥과 여행객들이 사랑하는 동네다. 이 마레지구와 레알(Les Halles)지구 사이 보부르(Beaubourg) 지역에는 현대적이고 복합적인 예술 문화 센터 ‘조르주 퐁피두 센터’가 위치하는데, 이곳이야말로 파리 그 자체를 보여주는 곳이다.

퐁피두 센터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조르주 퐁피두의 이름에서 따왔다. 지금은 모던아트와 현대예술의 소장 규모가 유럽에서 가장 클 정도로 성장한 곳이지만 퐁피두 센터가 위치한 보부르 지역은 원래 농수산물 시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때문에 악취가 가득했고 술집이 많은 지역이었다. 미술, 음악, 영화 등 현대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퐁피두 대통령은 이 보부르 지역의 재개발을 위한 계획의 일부로 농수산물 시장을 프랑스 남부로 옮기고 그곳을 현대예술의 중심지로 재탄생 시켰다. 프랑스 정부는 1971년 국제적 건축 콩쿠르를 개최했고 이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탈리아의 ‘렌조 피아노(Renzo Piano’와 영국의 리차드 로저(Richard Rogers)의 작품이 지금의 퐁피두 센터를 이루고 있는데 처음 퐁피두 센터를 마주한다면 밖으로 빠져나와있는 파이프들과 배관, 유리로 된 투명한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아직 공사 중인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부 구조물을 바깥으로 노출시킨 퐁피두 센터를 처음 봤을 때는 미술관이 공장처럼 생겼다는 느낌에 산업 혁명을 비꼬는 의미를 담았다고도 생각했다.

퐁피두 센터에는 시네마, 소강당, 대강당, 도서관, 키즈 갤러리까지 현대 예술의 종합 센터임과 동시에 4-5층에 위치한 국립 근대 미술관은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을 담고 있다. 전시 작품은 프랑스 미술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명작들을 많이 갖추고 있어서 모두 꼼꼼히 관람하길 원한다면 3시간 이상은 잡고 가야 한다. 전시 내용은 연대별로 크게 2개의 층으로 나뉘는데 5층은 ‘근대 컬렉션(1905~1960)’ 약 900점이 벽에 걸려있다. 퐁피두 미술관 입구에서 표를 사거나 유럽 거주비자를 가지고 있고 만 26세 미만이라면 유럽 신분증을 보여주면 바로 입장 가능한데, 들어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부터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900점에 달하는 작품들이 입구에서부터 건물의 반대편 끝까지 작가별로, 년도별로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잡고 꼭 방문해야 한다.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 자코메티, 마크 로스코 등 유명 미술가의 대작이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쓱 훑고 갈 생각으로 온다면 이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뒤의 스케줄을 모두 취소해야 할지도 모른다.
Im Grau, Vassily Kandinsky, 1919 / Guillaume Tell, Salvador Dali, 1903
untitled, Mark Rothko, 1964
너무나도 다양하고 매력적인 작품들도 많고 전시관 벽과 벽 사이에도 빼곡히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이곳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반갑고 좋았던 작품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었다.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주리 등 파리에서 유명하다고 손꼽히는 미술관에는 당연히 없을 추상 색면화가의 작품이 심지어 오래된 건축물이 즐비한 파리의 중심부에, 가장 현대적인 센터에 존재하니 너무나도 조화로운 작품이었다. 꼭 5층에서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가기를 바란다.
4층에 위치한 ‘현대 컬렉션’에서는 앤디 워홀, 세자르, 바자렐리, 조셉 보이스 등 컨템포러리 아트 대가들의 작품이 모여있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그들의 자유로운 발상을 마음껏 둘러보면 이들의 작품에 담긴 그들의 고민과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Arrival of Spring in Woldgate, East Yorkshire in 2011, David Hockney
4층 입구 쪽에는 현존하는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Arrival of Spring in Woldgate, East Yorkshire in 2011 작품이 32개의 캔버스에 담겨 벽에 걸려있다. 작품 앞에는 의자들이 놓여있어 그의 그림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데 숲속 길을 담은 그의 작품은 휴식의 경계에서 관람자들에게 쉼을 선사한다. 5층을 둘러보고 난 뒤 잠시 이 작품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 템포 쉼을 가진 후 가장 최근의, 요즘 관람객들에게 사랑받는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퐁피두 센터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출신의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의 조각품도 4층에 걸려 있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남부 도시 니스의 ‘니스 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에서 그녀의 입체 작품을 만났던 적이 있는데 니스에서 봤던 느낌과는 또 다르게 각자의 미술관의 느낌을 담은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잠깐 니키 드 생팔의 이야기를 하자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는 경향을 띄는 여성 조각가다. 작가는 여성의 몸에서 영감을 얻은 ‘나나(NaNa)’ 시리즈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풍만한 여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낙천적이고 맵시 없게 과장되게 부푼 모습은 밝고 화려한 색채를 띠어 활기차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약점이나 두려움. 불확실성 등에 대해서 역설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나 이 작가가 주목받을 무렵의 1963년에는 신부, 임산부, 매춘부, 마녀들을 묘사한 작품들을 만들기도 하면서 평범한 여성으로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 대한 욕구와 사회의 모순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고대부터 18세기까지, 오르세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의 미술 역사를 담고 있다면 퐁피두는 20세기 이후 현대미술 상을 보여준다. 시간 순서대로 유럽과 서부 미술의 역사를 느껴보고 싶다면 루브르-오르세-퐁피두 센터 순으로 관람해도 좋을 거 같다. 퐁피두 센터의 최상층 6층에는 전망대도 있어서 에펠탑, 몽마르트,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노트르담 등 파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어디보다 파리의 전경을 보기에 좋은 곳으로 해가 질 때 즈음에 이곳에서 노을을 보면서 파리의 야경을 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현대 미술을 관람하고 이곳에서 파리의 전경까지 보게 된다면 파리에 온 이유를 너무나도 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것보다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높은 곳에서 풍경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현대 예술이 주는 행복감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꼭 파리에 오게 된다면 퐁피두를 방문 해 보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루브르 박물관 보다 알찼고 기분 좋았던 미술관이었다. 우리가 꿈꾸던 파리의 예술적인 모습이 가득 담긴 곳이기에 분명 이 곳에서 여러분들도 파리의 행복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