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는 화가가 살아요!” 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은 우렁차게 헛소리를 한다. 아이들은 작품이 가득 찬 미술관을 화가나 예술가가 밤낮없이 작업하며 먹고 마시고 떠들며 자는 곳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화가는 자기 집에 산다.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곳, 투박스럽고 거친 과정은 뒤로 숨기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완성품을 앞세우는 곳, 이곳은 완성된 것들의 진열장이며 작품이 기원을 지운 채 내보여지는 침묵의 공간이다. 작품이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철저하게 홀로 서는 자리, 관람객은 이해와 감동을 위해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미술관이 보여주는 ‘지금-이곳’은 어떤 곳일까.
바느질을 해 본 사람은 매듭짓는 실의 길이가 지난하고 고단한 단순노동의 반복이라는 것을 안다. 한 번에 끝내기 위해 속절없이 늘인 실은 바느질 내내 불편함을 더하고, 짧게 자른 실은 잦은 매듭의 반복으로 손을 번거롭게 한다. 그래서 끊김 없이 이어진 실을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매듭 없는 매끈함은 상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이며, 수제手製가 수제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기에 더욱 그렇다. ‘연경Tying’은 직조를 위해 실들을 끊김 없이 매끄럽게 연결하는 방직 기술을 말한다.
잘 빗어넘긴 머리카락처럼 가지런한 실이 반듯하게 공간을 가른다. 한 줄 한 줄의 팽팽함이 긴장감을 만들고 화려한 색상이 악기의 현처럼 리듬을 탄다. 기계 소음과 목소리, 함께하는 영상 속에서 태국의 방직산업현장과 70~80년대 우리나라의 방직산업현장이 교차한다. 젊은 노동자의 얼굴은 태국 여성이었다가 우리나라 여성이었다가, 국적을 구별할 수 없는 얼굴이 되어 이야기를 이어간다. 권용주 작가의 <연경Tying>은 태국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해 제작된 작품이다. 작가는 방직 공장 노동자로 젊은 시절을 보낸 어머니의 회고와 태국 방직 공장의 젊은 여성 노동자의 인터뷰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김 없이 노동을 이어가며 생계를 위해 실을 잇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지역과 상관없이 닮았고, 30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변함없었다. 그녀들은 방직 작업의 한 과정처럼 매끈하게 이어지는 한 가닥 실과 다르지 않았다.
끊김 없이 이어지는 실처럼 세상의 모든 노동이 하나의 직물로 직조된다. 생계를 잇기 위한 노동의 리듬은 개별 자의 특성과 상관없이 사회적 구조와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생활력이 강’할수록, 직물의 매끈함을 위해 끝없이 빨려 들어간 노동이 매듭 없이 흐른다.
2020 트레블링 코리안 아츠-캐나다
<리듬풍경> 협력전 권용주 작가 인터뷰)
<만능벽 Ed.1/3>, 2014,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20초
<소장품, 미술관의 얼굴> 展, 2017.2.16.~4.16, 경기도미술관)
미술관은 전시를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없던 벽을 만든다. 영상 속의 작가는 전시장을 누비며 망치질을 하고 페인트칠을 한다. 여느 작업자와 똑같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편안한 감상을 위해 관람 동선과 분위기를 만든다. 작품은 이 모든 과정을 마친 뒤에야 제자리에 들어와 앉는다. <만능벽 Ed.1/3>은 작품의 자릴 마련하는, 전시기 사작되기 전의 미술관을 보여주고 있다.
직업이 뭐예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애매함.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불일치에서 오는 쭈뼛거림. 먹고 사는 일이 직업이라면 그의 직업은 ‘전시장 보조 인력’ 정도일까. 그러나 그는 엄연한 ‘예술가’다. 본업과 부업이 우선순위를 바꾸며 때때마다 달라져도 ‘생활력이 강’한 예술가는 지칠 수 없다. 우리 모두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기에 이런 분신술(!)쯤은 쉽게 이해가 된다. 다른 작가의 배경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그 자신이 가장 갖고 싶은 공간을 남에게 내줘야만 하는 상황은 씁쓸하다. 이루고 싶은 일을 이어나가기 위해 부가적으로 이뤄야 하는 일이 오히려 더 막중해질 때, 이 모순된 상황이 예술가의 외면 당한 노동 현실이다.
권용주 인터뷰
<기울어진>, 2016, 목재 구조에 페인트, 420X1500X60, 50X180X50
<사월의 동행> 展, 2016.4.16.~6.26, 경기도미술관
전시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구조물은 기울어진 형태로 우뚝 서 있다. 이곳과 저곳을 나누고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벽이다. 한 품에 가늠할 수 없기에 무겁고, 단단하다. 그 모습은, 우리의 기억 속에 절대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장면으로 생생하다. 기억하는 것조차 가슴이 미어지는 서사를 뒤로하더라도, 답답하고 먹먹한 통증은 가시지 않는다. 기울어지고 가라앉는 바닥,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무력감, 현실을 외면한 대가를 인과 관계없이 떠안은 이들을 향한 황망한 죄책감이 바닥을 흔든다.
“ 작가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
작가 권용주는 말한다. 3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노동 현장 속에서 숱한 젊음이 익명의 소모품이 되어 실을 잇고 있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을 끊김 없이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회라고. 예술가가 예술이라는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생계와 싸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며, 그 현실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기울어진>을 보라. 세상이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딛고 있는 바닥이 얼마나 부실하게 위태로운지. 그래서 또다시 피해를 보고 수그러드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기울어진>, 2016, 목재 구조에 페인트, 420X1500X60, 50X180X50
<사월의 동행> 展, 2018.4.16.~6.26, 경기도미술관
경기도미술관은 배를 닮았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문물을 향해 힘차게 바람을 맞는 배 모양이다. <기울어진> 위로 빛이 쏟아질 때 누군가는 고개를 들어 천창을 바라보았다. 까마득한 선창을 닮은 그 모습은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이곳’이 그날의 ‘바로-그곳’임을 금세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구분은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다. 긴 시간을 두고 인간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해 왔는지 모르지만,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구현되는 세상은 더디고 무변하다. 우리는 자신의 발밑을 지나치게 믿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권용주는 자꾸만 두드린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고. 노동 현장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여전하며, 예술을 위한 공간마저도 예술가의 노동을 지우고 가리는 곳이라고. 그날의 배가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자리에 여전히 단단한 척 거짓을 꾸미고 있다고. 과거라 믿은 부조리가 지금도 여전히 곁에 있다고, ‘지금-이곳’이 ‘바로-그곳’이라고.자신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은 남아있다고. 우리가 퍽(!) 잘살고 있다는 착각은 개나 줘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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