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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 경계는 무너질 것인가 | ARTLECTURE

«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 경계는 무너질 것인가


/Insight/
by 아트팩트
«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 경계는 무너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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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 있어 1989년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전 세계에 큰 변화가 잇따른 해이다. 정치적으로는 동독과 서독의 통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중국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꺾는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의 확대로 호황을 맞이했으며, 웹의 탄생으로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제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전 지구화' 시대가 도래한다. 이는 미술계에도 역시 영향을 미치는데, '1989'이라는 명확한 시기를 기준으로 미술사에서는 '동시대성' '탈식민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들이 등장한다. 이제 더이상 미술사와 현대 미술을 논의함에 있어 소위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던 서양 백인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주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이데올로기 아래 외면 받아온 '주변부', 3세계 작가들과 작품들이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비서구 사회의 문화와 예술, 특히 아프리카 미술과 아시아 미술은 19세기 말에 도입된 비엔날레와 박람회 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서구 사회에 소개된 바 있지만, 이는 언제나 식민주의 이념을 뒷받침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오브제들로 구성되었고, 서양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예술과 동일한 범주 안에 들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비서구 미술에 대한 식민주의적, 인종차별주의적 시선은 백 여년이 지난 20세기 후반까지도 박물관 또는 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이어진다. 물론 서양인 기획자들은 그러한 시선을 배제하고, 나아가 깨기 위한 의도로서 전시를 기획하지만, 주변부의 미술은 그곳에서 또 다시 타자화 되고, '원시주의'라는 틀 안에 갇히고 만다. 이를 잘 보여주는 전시가 1984-85년 뉴욕 모마(MoMA)의 기획전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Primitivism in 20th Century Art)»이다. 이 전시는 모더니즘 회화를 대표하는 서양 작가들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원시부족의 오브제들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보여주고자 한 전시였다. 전시의 기획의도는 제3세계 예술이 20세기 서양 미술사의 거대한 흐름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서양의 모더니스트들이 원시부족의 오브제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분명치 않았으며, 과거의 비엔날레나 박람회장에서 이루어진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오브제들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배경 또는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과정은 수반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전시는 비서구 미술의 동시대성을 반영하지 않았음은 물론, 여전히 이를 원시적인 것으로 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림 1]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1984-85) 전시실 전경(1) ©MoMA

 

[그림 2]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1984-85) 전시실 전경(2) ©MoMA

 

 

모마에서의 전시가 막을 내리고 4년 뒤인 1989, 미술사에서 '최초''동시대 국제전'«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프랑스 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 Pompidou)와 라 빌레트(La Villette)에서 열린다. 프랑스는 파리 비엔날레를 통해 그동안 세계 각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소개해왔지만, 이미 유럽 내의 다른 비엔날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서구 중심의 기획을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입지가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에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정부 이외에는 이렇다할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인 난관을 헤쳐나갈 새로운 전시의 기획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당시 퐁피두 센터의 관장이었던 장-위베르 마르탱(Jean-Hubert Martin, 1944-)은 살아있는 서구, 비서구 예술가 100여 명을 조명하는 «대지의 마법사들»(1989)전을 기획하게 된다. 마르탱 역시 파리 비엔날레를 비롯한 유럽 각지의 비엔날레가 비서구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 그리고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전이 거듭한 오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준비 단계에서부터 그 방향성을 달리하였다. 그는 전시가 열리기까지 3년의 준비 기간동안 전시기획팀이 세계 각지를 직접 방문하며 작가를 선정하도록 하였다. 이에 그동안 예술의 중심부로 자리해왔던 미국과 유럽의 예술가 50명과 그 주변부로 여겨졌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호주의 예술가 50명이 선정되어 이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퐁피두 센터와 라 빌레트를 16개 주제의 16개 구역으로 동일하게 나누고, 비서구 작가들은 작품이 전시될 공간에서 직접 작업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1] 마르탱은 이 전시에서 만큼은 두 세계의 미술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비서구 미술이 서구 미술의 시대적 특징과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부차적인 역할에 그치는 것을 피하고자 노력하였다. 때문에 그는 서구 사회에는 낯설고 신비로운 동시대 비서구 작가들을 최초로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이들을 '마법사들(Magiciens)'로 표현하였고, 전 지구를 아우르는 의미로써 프랑스어로 지구이자 땅을 의미하는 '대지(Terre)'라는 단어를 전시의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그림 3] «대지의 마법사들»(1989)이 개최된 파리 라 빌레트의 입구 ©Centre Pompidou, Bibliothèque Kandinsky

 


기존과 차별화된 국제전이었던 «대지의 마법사들»은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서 언제나 주변으로 밀려나있던 제3세계 미술을 오랜 시간 예술의 중심지로 인정받아온 프랑스 파리의 현대 미술관에서 선보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로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이 이 전시의 유일한 참여 작가였지만, 이후 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굴지의 해외 미술관과 행사에서 전시를 개최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그 출발선상에도 이 전시가 포함될 것이다.

 

 

[그림 4] «대지의 마법사들»(1989) Richard Long, Red Earth Circle, 1989

© Centre Pompidou, MNAM-CCI, Bibliothèque Kandinsky

 

[그림 5] «대지의 마법사들»(1989) Esther Mahlangu, Maison, 1989 © Centre Pompidou

 

 

그런데 «대지의 마법사들»전 또한 비서구 미술을 향한 서구의 일방적인 관점을 탈피하지 못한 전시라는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비판에 직면하였다. 먼저, 전시의 기획 단계에서 '중심부 미술''주변부 미술'을 구분지어 작가를 선정한 것은 단순히 참여 작가의 숫자만 동일하게 맞춘 뒤,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서구 미술과 비서구 미술 간의 위계 설정을 전제한 것이었다. 또한 장-위베르 마르탱은 이 전시가 국가적, 국제적인 정치적 장치로부터 전적으로 독립된 프로젝트임을 밝혔는데,[2] 3세계의 부족 단위, 민족 단위 예술에는 그 집단의 오래된 관습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반영된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기나긴 식민지배의 아픔을 가진 탈식민국가들의 경우, 예술가들이 지배 세력의 억압에 저항하고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작품에 담아낸 경우가 상당수였기 때문에 외부 요인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작품의 형식만을 가지고 이를 이해하려는 모습은 올바른 해석의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기획자인 마르탱이 작가들에게 각각 퐁피두 센터와 라 빌레트의 전시 구역에서 작품을 완성시키도록 한 판단은 전시의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의도에서였지만, 이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했음은 물론, 비서구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가지는 고유한 정체성을 흐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동시대' 비서구 미술을 조명하는 전시임이 분명했음에도 작가들을 예술가 그 자체가 아닌 마법사에 비유했다는 점과 원시주의적이고, 이국주의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 작품들을 선정 대상으로 두었다는 점은 오히려 이들의 동시대성을 부인하고,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과거 모습에 머물러 있는 문화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그림 6] «대지의 마법사들: 전설적인 전시의 귀환»(2014) 전시실 전경 ©Centre Pompidou

 

 

이렇듯 역사적으로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모두 받고 있는 1989«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전은 개최 25주년을 맞아 2014, 아카이브 전시의 형태로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재차 열렸다. -위베르 마르탱 역시 이 기념전의 준비에 참여했는데, 당시 국내 미술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1989년 전시 당시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3]


현대미술의 국제화가 시작된 지 어느덧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작가와 작품의 정체성을 하나의 단어나 틀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다양해졌다. 또한 '동시대성'이라는 주제 아래 기획할 수 있는 전시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앞으로의 미술이 어떠한 이야기와 형태를 담아낼지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일 것이다.

 


참고문헌

한의정, "현대미술의 원시주의에 대한 연구-«대지의 마법사들»(1989)을 중심으로", 조형디자인연구 vol.19, no.4, 2016, 141-162.

김기수, "1989년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동시대성의 문제미술사적 담론을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 vol.21, no.1, 2017, 53-112.

조광석, "1980년대 퐁피두센터 기획 전시와 패권주의", 현대미술학 논문집 vol.11, 2007, 219-243.



[1] 한의정, "현대미술의 원시주의에 대한 연구-«대지의 마법사들»(1989)을 중심으로", 조형디자인연구 vol.19, no.4, 2016, 153-155.

각 구역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 1. 태초에는 모두가 영웅이었다고 가정한다면, 2. 기호의 의미는 이미 거기에 있는가, 3. 상처자국과 기원이란 그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4. 장식이 벽을 만드는가?, 5. 의심스러운 두 육체 사이에 매달린 에코들, 6. 우리는 모두 원죄를 가지고 있는가?, 7. 신들이 너에게 설명하는가 아니면 너를 만들었는가?, 8. 영원의 거울, 9. 그가 거기에 서명한다, 10. 그가 너를 본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가 너를 생각한다: 너는 무엇을 보는가?, 11.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12. 어떤 비평이 있을까? 누구를 위해?, 13. 둘 중 하나는 이미 망가진 것인가?, 14. 두 개의 여정: 미리 선택해야 한다, 누가 그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15. 그러나 그는 치유를 기억한다, 16. 그는 죽음을 잊었다

[2] Jean-Hubert Martin, "The Death of Art - Long Live Art", 1986, 221. 김기수, "1989년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동시대성의 문제: 미술사적 담론을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 vol.21, no.1, 2017, 83 재인용.

[3] http://www.artinculture.kr/online/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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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제현 Jehyun LEE _아트팩트는 팟캐스트, 칼럼,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탄탄한 관련 정보 수집 및 전공자들의 해석을 기반으로, 양질의 예술 정보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며, 대중적인 시각으로 예술을 사회적 논의로 풀어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예술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예술에 관련한 풍부한 사회문화적 담론을 이끌어내 전공인과 비전공인 사이의 예술적 가교 역할을 추구하는 그룹이다. artfactproj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