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델 미술관(Städel Mueseum, 오른쪽)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하고 바쁘게 움직이던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의 모습이 마치 서울 한복판 같았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는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유로타워가 보인다. 이곳에 있는 유로사인을 보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들어왔는데, 이 앞에서 사진을 찍는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던 기억이 난다.
요한 볼프강 괴테(Goethe)의 고향이자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인 이곳은 마인 강을 중심으로 14개의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괴테가 26살 독일의 바이마르로 가기 전까지 살았던 프랑크푸르트는 도시 곳곳에 그의 흔적을 기록해 놓았다. 괴테가 살았던 집과 그를 기념하여 이름이 바뀐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슈테델 미술관까지 도시 전체가 괴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슈테델 미술관(Städel Mueseum)은 14세기 초반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렘브란트, 루벤스, 모네, 르누아르, 빌헬름, 피카소 등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들은 주로 왕이나 권력자의 의도로 개관되었으나 슈테델 미술관은 은행가였던 슈테델의 현금으로 설립되었다.
Gerhard Richter, Kahnfahrt, 1965 / Lucio Fontana, Concetto spaziale -Attese, 1962 – 1963
가장 최근의 작품들로 시작해서 14세기 초반의 작품들까지 아래층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시대를 거스르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를 가장 잘 설명하는 사진전을 시작으로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20세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신문 사진을 그림으로 재현한 <Boat Trip>을 더불어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캔버스를 날카로운 칼로 베어낸 작품 Concetto spaziale - Attese (Original Title)를 그들의 특별전이 아닌 그냥 일반 소장전 만으로 관람할 수 있다. 기존 예술의 미학을 벗어나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를 둔,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공간 주의’를 주장한 그는 캔버스에 구멍을 뚫거나 캔버스를 칼로 베어내면서 또 다른 공간을 암시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캔버스 뒤편을 검은 천 혹은 테이프로 마감함으로써 빈 공간의 외형과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전시회를 준비 중이었던 그가 수정하려던 그림을 망쳐버린 것에 화가 나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칼로 캔버스 한가운데를 그어버렸다. 그 덕분에 2차원의 평면에 펼쳐진 착시효과로 인한 가상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기존의 평면 회화가 아닌 진짜 3차원의 공간을 창조하게 되었다.
Pablo Picasso, Femme accroupie, 1960
웅크린 나체의 풍만한 몸을 텅 빈 공간에 배치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Femme accroupie>는 머리, 팔, 가슴 부분만 색상으로 정의되며 신체의 표현은 다음과 같이 선에 집중된다. 이 여성은 후에 피카소의 아내가 될 Jacqueline roque로 피카소는 빠른 붓놀림으로 캔버스 넓은 영역을 비워두고 육중한 몸에 가벼운 느낌을 준다.
Andy Warhol, Johann Wolfgang von Goethe, 1982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J.H. Wilhelm Tischbein)의 유명한 ‘캄파냐에서의 괴테’ 초상화를 이 미술관에 방문하는 동안 보았다. 독일 문화를 대표하는 괴테 초상화를 본 그는 괴테를 슈테델의 슈퍼스타로 무대에 올리면서 판화로 찍어내었다. 미국 팝아트의 핵심 인물인 워홀은 너무나도 유명한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유명인들의 언론 사진을 실크스크린 기술로 재현했고 미디어에 의해 전파된 이미지들 덕분에 전 세계에 알려진 모델들을 화려한 색상과 대담한 2차원으로 번역함으로써 관람객에게 친숙해지게 했다. 그가 직접 공장이라고 지칭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그의 예술작품을 연속적으로 제작함으로써 워홀은 대중 매체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근대 작품을 뒤로한 채 층계를 올라가면 앤디 워홀 작품의 모토인 빌헬름의 ‘캄파냐에서의 괴테’를 볼 수 있다. 모토로 한 작품을 층계만 올라가면 바로 볼 수 있게 구성함으로 작품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J.H. Wilhelm Tischbein, Goethe in der römischen Campagna, 1787
“이것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입니다. 아아, 그것은 북유럽 주택들에게는 너무 클 것입니다.”
괴테는 1786년 로마에서 이 실물 크기의 초상화에 이렇게 말했다. 여행용 외투를 걸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는 골동품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슈테델 미술관의 소장품인 빌헬름의 작품은 로마 근교의 폐허가 된 유적지 캄파냐를 배경으로 한다. 괴테의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의 비이상적인 비율과 양 발이 왼발로 묘사된 점 등 설명되지 않는 기이함에도 불구하고 괴테의 초상화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Rembrandt Harmensz. Van Rijn, Die Blendung Simsons, 1636
‘렘브란트의 나라’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인 빛의 대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Rembrandt Harmensz. Van Rijn)은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만들어내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고 인물의 섬세한 묘사와 인간의 감정을 담아낸다. 슈테델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The Blinding of Samson>은 구약 시대의 삼손이 데릴라에게 속아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잘리고 불레셋 군인들에게 눈이 뽑히는 장면을 묘사하며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는 연극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작품은 슈테델 미술관의 가장 화려한 소장품 중 하나로 이전에 이 작품을 구매할 때 슈테델 가문만으로는 그 금액을 지불할 수 없자 며칠 안에 85명의 개인 기부자들, 시와 베레인 박물관에서도 많은 금액을 제공해 1905년에 구매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렘브란트 특별전이 올 초까지 슈테델 미술관에서 진행되었을 만큼 렘브란트는 슈테델 미술관이 가장 애정 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괴테 광장 옆 구텐베르크 동상(Gutenberg Denkmal)
코로나로부터 독일은 많이 자유로워지면서 개인의 외부 활동량이 증가하게 되었고 그에 맞춰 많은 미술관은 유명 작가들의 특별전이나 그룹전들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 독일로 출국할 때 많은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용한다. 이곳에 잠시 들를 기회가 생긴다면 마인 강을 따라 산책한 후 슈테델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다. 현재는 르누아르의 특별전이 진행 중이고 특별전 이외의 일반 전시실에서도 말로만 듣던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관람할 수 있다. 독일은 맥주와 소시지가 가장 유명한 나라지만, 이렇게 미술을 사랑하는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슈테델 미술관을 둘러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