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아름다움은 젊음을 포함하는 성질이 있다. 젊음에는 생기가 있기 떄문이다. 청춘도 그들에게서 뿜어나오는 생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옛 그림에서 여인의 생기는 신윤복에게서 자주 표현되는 것이었다. 신윤복은 기녀들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움, 性, 옛 사람들의 풍류문화들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 조선시대 기녀들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었다. 옛 그림에 대해 글을 쓰시는 손철주선생님은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에서 화려한 젊음이 지나간 기녀의 모습에 대해 언급한다. 갸름한 얼굴에 애처로움이 남아 있대도 우두망찰 넋 놓은 표정은 어여쁘기보다 수심에 그늘졌다. 그녀의 꽃다운 생기는 갔다.1) 여인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은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여인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시간이 펼쳐질 것이다. 가녀린 몸도 굵어지고 수줍었던 미소와 태도도 억척스러워 질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은 아니다. 이제 삶의 안식일이 찾아올테니...
여기 검버섯 활짝 핀 할머니가 있다. 그녀들은 웃고 있다. 환한 꽃처럼. 임서령의 <웃는 여잔 다 예뻐>에서 꽃만큼이나 고운 그녀들의 웃음을 볼 수 있다. 할머니들은 짧은 파마머리를 대부분 고수한다. 늙은 몸은 병치레 할 일만 남았다. 꽃다움을 잃었으니 인생의 재미가 남아있을까 싶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생을 잘 살았다면 노경(老境)으로 접어드는 행운도 맛 볼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다 절로 노경에 접어 드는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켜켜히 쌓아놓은 내공으로 절로 살얼음처럼 청량해 지는 경지가 노경이다. 임서령의 그림 <웃을 수 없던 날>은 우리네 할머니들의 결혼식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결혼식날 할머니는 웃을 수 없었다. 깊은 사귐도 없이 부모님들이 맺어준 사람과 혼인을 올리는 할머니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층층이 시집살이와 많은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 겁나지 않았을까? 젊은 시절 웃을 수 없었던 할머니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웃고 있다. 이제는 쉴 때가 되었다. 나도 할머니가 되면 이렇게 웃고 싶다. 그럴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울테니...
1) 손철주,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현암사, p. 86-87.
신윤복 <연못가의 여인>, 18세기, 비단에 채색, 28.2*29.7cm
임서령 <웃는 여잔 다 예뻐-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2008, 장지에 수간채색.
임서령, <웃을 수 없던 날>, 2010, 장지에 수묵, 70*2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