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시간>에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온다. 영화의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오하나는 출판사에서 원고를 교정하는 일을 했다. 오하나는 매일 아침 합정역에서 파주 출판 단지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어떤 인간적인 교류 없이 업무상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일했다. 하루하루 그렇게 살다가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병원에 가고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기이한 현실을 자각한 순간부터 오하나의 삶은 무너진다. 회사가 주는 소속감과 매달 지급되는 월급 때문에 버티고 있었지만 사실 그전부터 오하나의 일상은 반복적인 피로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쳇바퀴 돌듯 회사와 집을 오가는 무미건조한 삶을 견디지 못한 오하나는 결국 퇴사를 한다. 백수가 된 오하나는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요가를 하고 시를 읽는다. 주체성의 위기를 맞이한 오하나는 삶의 본질과 실존 및 사회 체제의 모순에 대해 고민한다. 오하나가 낭송하는 임경섭 시인의 「죄책감」과 「새들은 지하를 날지 않는다」에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회 현실에 대한 그의 무력과 절망이 투영되어 있다.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오하나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시 읽기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오하나에게 있어 시 읽기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이자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삶을 마주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작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인 김수덕은 영화계에 수십 년간 종사해 온 전문가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공황 장애로 인해 심리적 균형이 무너진 상태이다. 스스로를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김수덕은 자기 존재에 대해 심한 무력감과 무가치함을 느끼고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 그에게 시 읽기는 마음의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김수덕은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인 ‘지금’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우연히 발견하고 읽는다. 김수덕에게 있어 '지금'은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 세상의 진리가 무엇이든 간에 지금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사 내가 어떤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 그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행위의 주체는 나이고 내가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명백하고 확실하게 존재하는 '지금'은 김수덕의 두려움을 없애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받는 김수덕에게 시 읽기는 불안을 경감시키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순간의 위안이자 세계 안에 존재하는 주체로서의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인 안태형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지만 일거리가 없어 쉬는 일이 많다. 안태형은 일이 없으면 취직해서 일하다가 회사에서 잘리면 다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반복한다. 불안정한 수입으로 인해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안태형은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자리를 잡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다. 부모님이 기대하는 인생의 행로에서 벗어난 그는 무기력하고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안태형은 투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자기만족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을 좋아한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임과는 달리 열심히 일해도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그는 절망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나이 들어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던 그는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을 만나 결혼한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 그전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었지만 안태형은 여전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안태형이 좋아하는 게임에는 공략법이 있다. 하지만 시에는 정답이 없다. 게임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명료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시는 모호하고 갈피를 잡기 어렵고 때로는 불친절하다. 그러나 시는 혼돈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안태형은 시가 없으면 현실 세계가 휴대폰 게임 속 세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는 지금 살제로 존재하는 현실을 초월하고 개인의 지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계를 보여 준다.
네 번째 등장인물인 임재춘은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에서 일하다가 해고된 노동자이다. 임재춘은 동료들과 함께 기약 없는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평생을 기타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큰 충격을 받는다. 임재춘과 동료들은 콜트콜텍 본사에 찾아가 농성을 하고 회장이 있는 건물에 쳐들어가고 단식을 감행한다. 그는 농성을 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만 복직 투쟁을 그만두지 않는다.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해고된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예술인들이 농성장으로 모여든다. 임재춘은 예술인들과 함께 복직 투쟁을 하며 난생처음 연극을 하고 시를 읊는다. 주어진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회사의 부속품으로 충실히 살아가던 그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하며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게 된다. 기약 없는 농성을 하며 임재춘은 울분을 해소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시를 읽는다. 시 읽기는 근대적 인간으로 살던 임재춘의 자유 의지의 표명이자 주체적 존재로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그가 읽은 김남주 시인의 「자유」는 그러한 임재춘의 자아의식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다섯 번째 등장인물인 하마무는 일본 태생의 페미니스트 미술가이다. 하마무는 여성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제약을 가하는 일본 사회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한국으로 유학을 온다. 그림, 사진, 영상, 시 쓰기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하마무는 억눌려져 있는 자신의 감정을 분출한다. 하마무는 언어가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약하고 불안하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지만 그로 인해 소통의 불완전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무언가를 말할 때 우리는 불완전함을 경험한다. 불완전함은 불안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하마무는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완벽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언어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기에 하마무는 불완전한 언어를 가지고 스스로 말하기를 선택한다.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시를 쓰고 읽으며 하마무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토해낸다. 하마무에게 시 읽기와 쓰기는 끝없는 번민에서 헤어나기 위한 방법이자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한 인간의 자서전적 행위이다.
시 읽는 시간 스틸컷>
이수정 감독의 영화 <시 읽는 시간>은 결말을 명확하게 내지 않은 채로 끝난다. 그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잘 만들어진 가상 캐릭터가 아닌 앞으로도 삶을 계속 살아갈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시에는 정답이 없고 인생 또한 그렇다. 그렇기에 생은 시의 속성과 닮아 있다. 시 읽기는 인생이라는 긴 행로를 숨가쁘게 걸어가다가 문득 멈춰 서서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시 읽는 시간>은 또한 존재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성이 황폐화되고 물질 만능주의에 젖은 현대 사회에서 인생의 방향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시는 구원과 치유의 상징이 된다. 시 읽기는 실용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행위이다. 그러나 시는 영혼의 허기를 채워 준다. 각자의 이유로 존재의 위기를 맞이한 인간에게 시는 위안이 된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섯 사람은 시 읽기를 통해 자신의 실존을 재확인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점점 무뎌져가는 이 시대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이수정 감독은 사회의 무감성을 비판하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