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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내놓지 않는 이미지 | ARTLECTURE

의미를 내놓지 않는 이미지

-예술과 기술 : 상이한 것들의 공존-

/Insight/
by 김영주
의미를 내놓지 않는 이미지
-예술과 기술 : 상이한 것들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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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역할과 정체성, 현실과 가상,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들이 끝없이 교환되는 현재, 해방된 관객이 동시대 예술의 시사성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취하는 예술가 고유의 언어 번역 행위가 작품이 주는 스펙터클의 관건이다. 2021년을 사는 우리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아갈 수 있다. ‘선별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대부분의 세계는 우리와 비슷한 결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 예술의 시사성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건설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 731; J. R. EYERMAN/ TIME & LIFE PICTURES; GETTY IMAGES (47) 




예술 분야에서 기계의 등장은 단순히 예술계만의 사건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통찰력을 요구하는 사건이다TV라디오의 등장과 대중문화의 형성을 일견하고 프로파간다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서구의 선례는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가까운 과거에만 하더라도 매체를 통하여 예술을 받아들이는 관객 대중이라는 이들을 떠올리면 흔히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하는 집단예술을 오락으로 받아들이는 집단단순하고 말초적인 흥미의 만족에만 집중하는 집단이 연상되곤 했다대중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작품에 대하여 자조적인 투로 B 예술이라 언급하는 것도 심심찮게 들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객들은 인공지(AI; Artificial Intelligence) 의해 취향과 관념사상정치색이 시시각각 분석되고  안에서 계산된 각자에게 적합한 컨텐츠들은 집중포화적으로 공급된다시시각각 쏟아지는 정보와 문화예술 컨텐츠들 속에서 예술과 관객은 얼핏 과거 예술가들과 공학자들이 꿈꾸던 폭발적인 상호작용의 꿈을 이룬듯하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



키네토스코프(Kinétoscope) 영사 시스템

 

 


영화가 활동사진이라는 어색한 이름과 함께 처음 등장한 시절촬영한 영상을   있게 해주는 영사기 또한 현대인들에겐 낯선 방식으로 여럿 등장했다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Kinétoscope) 그중 하나였으나그의 영사기는 1명씩만   있었다는 점에서 더는 발전하지 못했고 번에 여러 인원을 수용할  있는 시네마토그라프(Cinématographe) 만들어내 극장주관객그리고 작품의 개방적인 발전을 가져온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의 시초영화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얻어낼  있었다.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수용자의 관심과 요구에 따라 아주 빠르게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전한 영화 매체는 영화관을 벗어나 오늘날, 1인을 위한 영사 시스템으로 회귀한다홈시어터스마트폰태블릿  오직  명을 위한 장비의 발전과 확산으로 인해 이제는 영화관’ 마저 본체의 물리적 형태를 포기하고 집안에서 관객    명과 가상의 상호작용을 시도한다수용자의 삶의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매체가 변화하고예술도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창작자기술자와 더불어 수용자는 예술을 발전시키는 주체로서 부정하기 힘든 입지를 차지한다그러나 우리는 관객은 쉽게 예술가들이 전달하는 삶과 사회문화와 철학에 대한 메세지를 수용하는 수신자로 여기는 것에 익숙하다예술세계에서 관객은 흔히 작품 밖에 있는 인물이며때때로는 계몽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듯하다

 

예술이 그것을 바라보는 각각을 위해 동일하게 생산되는 규격화된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예술은 상호작용보다는 교육의 논리에 가깝지 않을까그렇다면 예술에서 미디어 기술의 발전은 고작 칠판이 화이트보드로화이트보드가 빔프로젝터로 바뀌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생각에 잠긴 이미지

 


사진 © Rineke Dijkstra: Kolobrzeg, Polen 1992., Rineke Dijkstra: HILTON HEAD ISLAND, S. C., JUNE 27, 1992.




 

초상사진의 대가리네케 딕스트라(Rineke Dijkstra) 작품이다촬영된 의도도배경도예상되는 효과도 말하지 않는 위의 « 불분명한 » 이미지들이다




사진 © Walker Evans - Country church near Beaufort, S.C.




 

다큐멘터리 사진의  분야를 개척한 워커 에반(Walker Evans) 작품이다딕스트라의 사진과 마찬가지로언뜻 보면 임의적인 사진으로 보인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으로 출현한 사진영상 등은 예술의 카테고리에 진입하며 사진예술영상예술로 불리기 시작했다사실적인 것은  자체로 극적인 것이 아니다 작품들에 응집된 복잡다단한 사실성은 관객의 사회 인식과 얽혀 비로소 하나의 스펙터클이 되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의 삶은 임의적인 것에 신비를 부여한다인간이라는 동물은 주위에 있는 것을 보고듣고관찰하고반복하고실수하고자신의 오류를 교정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행위하며종래에는 스스로 해방한다예술과의 상호작용은 관객이  걸음  걸음 자기 앞에 있는 것을 관찰하고 자신이  것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이야기한 것을 입증하는 순간 이루어진다.

 

관객은 생각에 잠긴 이미지들을 바라보고 본인의 일상사회철학에 대한 조건과 인식에 연결하여 능동적으로 해석한다사실이 여기 있고 진리는 저기 있는 것이 아니다철학은 기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현대 예술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개인은 « 자기 앞에 있는 시의 요소들을 가지고 자기만의 시를 짓는다 »

 

 

 

 

해방된 관객 

 

우리는 배우고 우리는 가르친다우리는 행위하고 우리는 관객으로서 인식하기도 한다관객은  순간 자신이 보거나 말해온 하거나 꿈꿔온 것을 연결한다도처에 시작점교차매듭이 있으며그것들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어떤 것을 배울  있다[1]




Nam June Paik, Internet Dream, 1994, installation view, Tate Modern, London © Estate of Nam June Paik



 

모든 관객은 그들 각자의 영화의 주인공이다따라서 작품과 관객 사이에 메워야  간극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현실에서 얻은 것들을 비틀고뭉개고해체하고교차하고예술의 경계를 가로질러 다시 짓는 현시대의 예술은 이야기를 전유하기 위해 자신의 고유한 번역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 관객을 요구한다배우나 극작가연출가무용수 또는 퍼포머가 하듯 관객들이 그들 나름의 시를 짓는 만큼관객들도 뭔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한다.

 

역할과 정체성현실과 가상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들이 끝없이 교환되는 현재해방된 관객이 동시대 예술의 시사성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취하는 예술가 고유의 언어 번역 행위가 작품이 주는 스펙터클의 관건이다. 2021년을 사는 우리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아갈  있다선별 정보의 홍수 속에서우리가 인식하는 대부분의 세계는 우리와 비슷한 결을 가질 것이다그러나 동시대 예술의 시사성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건설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지키기 위해서는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해방된 관객(Le spectateur émancipé) »자크 랑시에(Jacques Rancière)


[1] « Le spectateur émancipé », Jacques Rancière, La fabrique éditions,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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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영주.Art director & Editor based in Paris/Insta @supersof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