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찾아 자기 계발을 하고자 하는 요즘 우리들의 모습은 이미 20세기부터 모여 당시의 예술적 트렌드와 사회적 이슈를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던 예술가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 당시 20세기는 끝없는 혁명과 전쟁으로 인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사회적 기반과 골격을 다져가고자 했다면 요즘 우리는 4차 산업으로 인해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으며 인간의 속도를 초월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더딘 속도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와 공감을 더 중요시하는 모임의 형태가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취향을 토대로 만들어진 만남의 형태가 점차적으로 확대되어간다. 개인 중심적 사회가 확장되는 만큼 요즘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의 바운더리를 침범 받고 싶지 않아 한다.아이러니하게도 간섭받기 싫지만 타인에게 공감받고 싶고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은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는다.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사실은 불변의 진리여서일까?
우리는 더더욱 삼삼오오 모여 지속적인 사회적 교류를 통한 자극을 추구한다.내가 어제는 무엇을 먹었는지,어떤 새로운 것을 보았는지 정말 단순하고 시시한 것이라도 괜찮다.개인화가 익숙해질수록 이러한 것들도 요즘 우리들에게는 자극과 공감의 자투리가 된다. 불과 5-6년 전부터 이러한 취미와 취향 기반으로 하는 ‘살롱’이라는 개념의 모임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양권에서는 이러한 사교와 취향의 문화가 궁정에서 시작되었고 점차 귀족의 문화로 변화되어갔다.그러나 20 새기 초반, 전쟁이 일어난 후 예술적 방향성과 길을 잃은 아티스트들에게 등대 역할을 해주었던 곳 역시 살롱이다.바로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거트루드 스타인 (Gerturde Stein)의 살롱이다.
이미지: Leo, Gertrude, Michael Stein in Paris in 1907, 출처: Metropolitan Museum of Art
“난 항상 역사적이고 싶었어.”
임종을 맞이 하기 전에 남긴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이다.이렇게 거창한 말을 남긴 인물답게 거트루드는 덩치가 크고 주도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미국 출생 비평가,시인이며 미술품 수집의 큰 손이다.모던 아트의 거장인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앙드레 드렝과 같은 모던 아티스트들과 문학가인 헤밍웨이,스콧 피츠제럴드와 친분이 있었다.화상이었던 오빠 레오 스타인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1900년경 레오를 따라 예술의 중심부 런던과 파리를 다녔다.
스타인 남매는 1914년까지 파리 룩셈부르크 정원 근처에 있는 두 층으로 이뤄진 아파트에 거주한다.바로 이 장소,7 Rue de Fleurus에 위치한 이 아파트가 수많은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문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모임의 장소이다.
이미지:파리에 위치한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이었던 아파트
살롱을 찾아가면 거트루드의 인생 파트너이자 조력자였던 알리스 B. 토클라스가 손님들을 맞이한다.스타인이 주로 남성들이었던 아티스트들과 미술에 대한 담론을 이어가는 동안 토클라스는 그들의 연인들이나 부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그들의 만남은 토요일 저녁으로 지정되었다.그림을 보기 위해 불쑥 방문하는 것이 싫었던 거트루드는 자신이 글을 쓰는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토요일에만 공식적인 방문을 허락했다.아티스트들은 토요일 저녁이 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을까?
이미지:왼쪽 단발머리 여성이 알리스 B. 토클라스,오른쪽 여성이 거트루드 스타인, 1922년. 출처: Contemporary Jewish Museum
<스타인 살롱에 걸려있던 작품들>
Pablo Picasso, Gertrude Stein, 1905–6 // Henri Matisse, A Woman with a Hat, 1905 // Paul Gauguin, Three Tahitians, 1899
살롱 룸은 최신 미술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한 갤러리와 다름 없었다.모든 벽면과 천장까지 회화 작품들과 드로잉들로 도배되었다.작은 MoMA (Museum of Modern Art)가 이 공간에서 태어난 것이다.거트루드는 오빠 레오와 1904년부터 본격적인 컬렉션을 시작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구매한 페인팅들은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고갱의 <해바라기> 와 <세명의 타이티인들>,그리고 르누아르의 두 회화 작품이다.그 이후에는 후기 인상주의 앙리 드 툴르즈 로트렉,피에르 보나드,오귀스트 르누아르,앙리 마티스,파블로 피카소 등 20세기 모던 아트 거장들의 작품들을 구매하였다. 토요일 저녁마다 아티스트들이 모이면서 살롱 문화가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이유를 야수파 앙리 마티스 덕분이라고 공표하기도 했다.그 당시 야수 처럼 정제되지 않은 색감과 붓 터치로 충격적인 비주얼을 안겨주었던 마티스의 작품 때문이다. 세잔의 입체주의 회화 작도 인기 있던 작품이다.나중에 사이가 틀어졌지만 <노인과 바다>의 저자 어니스트 허밍웨이 역시 스타인 살롱의 단골 방문객이었다.
거투르드 스타인은 아트 컬렉터이자 살롱을 이끈 후원자 이기 전에 전업 작가였다.스타인의 <세 인생>, <후안 그리스의 삶과 죽음>,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 등 20세기 문학에 기여할 만한 작품들을 남겼다.특히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은 자신의 파트너인 토클라스가 쓴 거트루드에 대한 자서전 같지만,사실 거트루드가 자신에 대해 쓴 책이다.친구의 입을 빌려 자신을 자화자찬을 하는 형태로 자서전을 썼다.이러한 독특한 시각과 실험적인 정신 덕분에 거트루드는 미술계에서도 가능성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 하며 지속적으로 미래의 예술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취향을 찾아 자기 계발을 하고자 하는 요즘 우리들의 모습은 이미 20세기부터 모여 당시의 예술적 트렌드와 사회적 이슈를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던 예술가들의 모습과 닮아있다.그 당시 20세기는 끝없는 혁명과 전쟁으로 인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사회적 기반과 골격을 다져가고자 했다면 요즘 우리는 4차 산업으로 인해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으며 인간의 속도를 초월한 시대를 살아간다.그래서인지 조금은 더딘 속도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와 공감을 더 중요시하는 모임의 형태가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스타인의 살롱에 입장하여 커피,보드카,맥주 한잔씩 기울이며 자신의 취향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공감 받는 열띤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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