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 오종, 우정수, 전명은, 표민홍, 황수연 갤러리2 2020.01.05—02.06 |
“대부분의 스나크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 중 몇몇은 부점(Boojum)이라네.
이 말이 끝나자 제빵사는 쓰러졌고
벨맨의 연설은 중단되었다.(1)”
-Lewis Carroll, The Hunting of the Snark 중, 1876.
전시 ⟪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로 유명한 루이스 캐럴(Louis Carroll, 1832-1898)의 넌센스 시류 『스나크 사냥: 여덟 편의 사투』(1876)’의 내용에 착안한다. 『스나크 사냥: 여덟 편의 사투』은 벨맨과 제빵사, 변호사 등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인물들 10명이 미지의 동물 ‘스나크(Snark)’를 추적하는 내용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진 여덟 편의 서사시로, ‘스나크’란 달팽이(snail)와 상어(shark)의 합성어 혹은 뱀(snake)과 짖다(bark)의 합성어로 해석이 가능하다.(2)
스나크는 여러 대상들이 혼합된 가상의 동물인 동시에 그것을 사냥하는 이들의 환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실제처럼 느껴질 수 있는 유동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스나크의 형태를 상상하다 끝내는 자신의 불안과 욕망을 그것에 투영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전적으로 스나크의 가변성과 허구성에 기인한다.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두려움이 무지에서 온다고 할 때, 스나크의 불분명한 정체성은 등장인물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공포감은 2장 ‘벨멘의 연설(Bellman’s Speech)’와 3장 ‘제빵사의 이야기(Baker’s Tale)’에서 ‘부점(Boojum)’이라는 스나크의 새로운 유형이 소개되면서 극에 달한다. ‘부점(Boojum)’은 그것을 접하는 대상을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스나크의 한 종류로, 그 존재를 알게 된 사냥꾼들을 패닉에 빠뜨린다.
스나크 사냥 8절 ‘실종’ 에서 발췌한 이미지 출처: 인터넷 사이트 Melotopia
⟪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은 인간의 공허한 불안, 그리고 그 불안에 대한 허구로 작동하는 스나크처럼 가시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의 잠재적 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다룬다. 참여작가 오종, 우정수, 전명은, 표민홍, 황수연은 서사시에 나타나는 허구적 대상과의 필사적인 사투처럼 각자의 작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un-seen)과 말해질 수 없는 것들(un-said)을 표현하며, 오히려 대상이 특정 공간에 놓였을 때 더욱이 부각되는 ‘부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들은 불안-그 무엇도 확실치 않기에 생긴-이라는 공통된 기반 위에서 아직 작품을 통해 표출되지 않은 이면의 것들을 다루고자 한다. 이 때 그들이 취하는 태도란 스나크 사냥꾼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부재를 탐구하되 부재에 잠식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나크 사냥꾼들이 스나크를 잡으려다 부점을 만나게 될까 두려워 했던 것처럼 이들 작가 다섯은 아직 발화되지 않은 작품의 언어를 끌어내려다 역으로 그 내부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작품소개>
오종의 <Folding Drawing>(2020)과 <Room Drawing>(2020)은 캐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빈 지도(empty map)의 형식을 본딴 설치 구조물이다. 빈 지도가 추상적 기호만으로 대상의 위치를 기록한 평면에 불과했다면 <Folding Drawing>과 <Room Drawing>은 이를 실제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모서리로부터 허공으로 뻗어나온 선들은 지도의 방위표와 같은 형상으로 공간을 구획하나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정보가 실재로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완벽히 부재하는 공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관람자는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존재와 부재의 양면성을 경험하게 되며 실, 낚싯줄, 철사로 만들어진 팽팽한 선들은 그것을 따라가면 찾고자 하는 미지의 대상에 다다를 수 있다는 모종의 시각적 환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오종, Folding Drawing #29, 2020, 나무판, 페인트, 철사
오종, Room Drawing #1, 2020, 실, 낚싯줄, 철사, 체인, 페인트, 비즈, 연필선, 바니쉬
우정수는 <스나크(The Snark)>(2020) 연작에서 세 개의 분절된 에피소드들을 각기 다른 작품에 삽입하여 서사 중간중간 의도적인 틈을 형성한다. 애니메이션 타잔을 모티브로 제작된 <스나크(The Snark)> 연작은 만화의 줄거리를 반영하는 주인공들의 캐리커처가 흑색 잉크로 뚜렷하게 그려지는 한편 그 배경은 그와는 전혀 연관없는 장식적이고 반복적인 도상과 패턴들로 복잡하게 채워져 있다. 특히 <클래식 패턴 위드 타잔>(2020)에서는 캐릭터와 배경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조각난 이야기들은 자취를 감췄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이처럼 연계성을 찾아볼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의 혼재는 마치 넌센스 문학이 그러하듯 다양한 감각의 충돌과 상충,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고, 이는 이야기가 부재하는 곳에서 낯선 시각적 효과를 창출해 낸다.

우정수, 스나크 연작, 2020, 캔버스 천에 잉크, 아크릴

우정수, 스나크Ⅰ, 2020, 캔버스 천에 잉크, 아크릴
전명은의 <베클램트(Beklemmt)>(2020)는 특정 사물로부터 뻗어나간 역사의 뿌리와 시간의 변화를 기록한다. ‘옥죄고, 괴롭고, 압박한다’라는 뜻을 지닌 ‘베클램트’는 베토벤이 후기 현악 4중주 OP.130 ‘카바티나(Cavatina)’ 중 바이올린 파트에 남긴 지시어로 심리적 고통에 지지 않고 연주를 끌고가는 바이올린처럼 인간의 마음에 깊은 잔상을 남기며 감정을 고조화하는 대상들을 비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사진들은 지난한 시간의 흐름 속 대상의 존재를 증명하는 어떤 증거에 가깝다. 연작에서 보여지는 대상들은 누군가에 의해 생성되어 다른 사람에게 건네지고 또 어딘가로 옮겨진 각종 골동품들이다. 이들 각각의 서사는 이미지의 표면이 아닌 그보다 훨씬 깊숙한 차원에 위치하는 한편, 이들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의 존재와 부재를 모두 포괄한다. 그 결과 관람자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작가와 피사체, 그리고 각 작품들 간의 연결고리를 상상하며 오랜 시간 축적되어 왔을 개인의 사적 서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전명은, 베클램트 #5, 202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전명은, 베클램트 #6, 202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표민홍은 자전거 도난 사건을 주제로 한 2채널 비디오 <낮밤(day for night)>(2020)에서 잃어버린 자전거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둑의 자취를 좆으며 ‘부재’라는 하나의 사태를 설명한다. 총 3개의 챕터로 기록된 <낮밤(day for night)>은 도난당했던 자전거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원래 주인(일곱 살 소년)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논-내러티브 영상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기다렸던 침묵의 밤들, 그리고 끝내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도둑은 소년의 상상 속에서 그럴싸한 허구로 재탄생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현실화, 실재화, 가시화 시키기 위해 상상의 언어를 동원하는 작가의 행위는 앞이 깜깜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밤을 위해(for night) 낮(day)의 빛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작품의 설정과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텍스트 작업인 <당신에 관한 것이 아닌>(2020)과 <나를 봤다면, 보지 않았다면>(2019)은 유약하거나 투명한 매체의 물성을 활용해 ‘보임(seen)’과 ‘보이지 않음(un-seen)’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창문에 아크릴 바니쉬, 수정구슬에 바이닐 텍스트로 구성된 각각의 작품들은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설령 확인이 가능하다 해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작가의 ‘말’을 상징한다.
표민홍, 낮밤, 2020, 4K 2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컬러, 13분 50초 (캡쳐)
표민홍, 낮밤, 2020, 4K 2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컬러, 13분 50초 (캡쳐)
황수연은 <P.or>(2020), <줄무늬, 긴(Stripes, long)>(2020), <3(Three)>(2020)에서 종이 도면을 이용해 대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이시킨다. 본디 재료가 가지고 있는 기존 물성에 반해 새로운 양감과 형태를 만드는 시도를 지속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그가 생각하는 특정 질료에 대한 감각을 과감히 구현하는 방식을 택한다. 본 전시에서 작가가 주목한 ‘니치(niche)’라는 용어는 직역하면 ‘틈새’라는 뜻인데, 이는 주로 희귀한 성질을 지닌 또는 희소성이 강한 그 무엇을 의미할 때 쓰인다. 이를 생태계에 적용한다면 니치 종(species)은 일반 종과 다른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종이 조각을 오리고 붙이고 접는 등의 조각적 실험을 통해 이러한 니치 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종이와 그것의 변주를 통해 탄생한 여러 다른 조각들은 마치 생물종이 진화를 거듭하듯 새로운 조각으로 재탄생한다. 이는 기존 작업의 조형적 한계, 다시 말해 관념적 형상에 구속되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계속해서 다른 정체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틈새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황수연, P.or, 2020, 프린트
황수연, 3, 2020, 프린트
<결언>
작가 다섯명이 구성한 ⟪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를 불안하고 공포에 떨게 만드는 존재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공통의 불안으로부터 출발한 무형의 두려움이 개개인에 다다라 얼마나 구체적인 양상을 띨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부재가 두려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서는 역으로 부재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다섯명은 각각이 지닌 가장 큰 공포와 마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가의 언어를 자제하고, 틈을 만들고, 또 그 간격을 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은 단절과 고립 대신 고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수많은 자아와 마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것이 넌센스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 아닐까. 우리는 적어도 괴물을 잡다가 괴물이 되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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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스 캐럴, 「스나크 사냥」, 유페이퍼 번역, 2017, p22
2) 추성아, 「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 전시서문, 갤러리2, 2021, p1
<참고자료>
루이스 캐럴, 「스나크 사냥」, 유페이퍼 번역, 착한문고, 2017
추성아, 「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 전시서문, 갤러리2,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