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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로댕<칼레의 시민> | ARTLECTURE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로댕<칼레의 시민>


/Picture Essay/
by 이지아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로댕<칼레의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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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작은 손해를 넘어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야 할 때가 있다. 또한, 희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상황도 만나게 된다. 이럴 때 나는 과연 여섯 군상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로댕은 칼레의 시민에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쥐를 본 것은 아닐까? 이것은 단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닌 전체 시민이 협동하여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구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고심 끝에 완성한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다....

인천발 푸켓행 전세기였다.

전세기란 항공사의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편수가 아닌 일정 계약에 의해 한시적으로 운행하는 항공편수를 말한다. 일등석부터 삼등석까지 전 클래스가 만석이었던 비행은 총 4박 5일의 일정을 승객과 승무원이 함께 움직이는 스케줄이었다. 승객 전원이 신혼 여행객으로 대략 작년 5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행히 신혼 여행객들은 승객 특성상 까다롭지 않아 비교적 수월한? 축에 든다. 게다가 동남아 노선은 2박 3일의 빠듯한 일정으로 늘 아쉬움이 남는 비행인데, 푸켓을 4박 5일로 갈 수 있다니…. 무려 한 달 하고도 열흘 전에 받은 스케줄을 보며 나름의 계획을 잔뜩 세우고 있는 참이었다.      

스케줄은 매월 20일에서 25일경 특정 사이트를 통해 일괄적으로 배포된다. 디데이가 되면 전 세계에서 동시 접속하는 크루들 때문에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발생할 정도였고, 7천 명 크루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약간의 기대와 약간의 설렘 그리고 대부분의 호기심으로 밤새워 뒤척이며 스케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드디어 출발 당일!

대략 6시간가량의 비행을 가뿐히 마치고 수영복과 선글라스, 카메라…. 등등을 챙겨 전원이 해변으로 달려갔다. 이제 한바탕 신이 나서 바닷가로 뛰어들려는 내게 15년 차 선배가 찬물을 확 끼얹었다.  

    

“막내가 누구죠?”

“저…. 전데요….” 뭔가 불길했다.

“저 올 때까지 여기 제 옷이랑 귀중품 좀 지키고 있어요.”      

말인즉슨 자신은 바닷가에서 놀다 올 테니 이 뜨거운 태양 빛 아래서 본인 옷이나 지키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순간 화가 나기도 하고 너무 황당하여     

“언니, 저도 갈 곳이 있어서요….”

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일어났다. 일등석에서 우아한 서비스를 하셔야 할 그녀께서 굳이 삼등석까지 와서 나를 혼내고 가는 것을 6시간 내내 반복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로서야 ‘할 말을 했을 뿐’이라 생각하지만, 시니어로선 참 밉상인 후배였다. 어떤 이는 나의 이런 태도를 두고 ‘좌충우돌’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고군분투’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본인은 이 사회의 보편적 기호나 주류에 맞는 사람은 아닌 듯싶다.      

이제 겨우 입사한 지 5개월 남짓한 내게 어떤 이유로든 위풍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우월한 지위’ 덕분이었다. 권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을 아주 조금 휘둘렀을 뿐이다. 물론 내게는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람의 행동을 전부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녀의 행동은 선배로서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경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혹시나 알량한 지위를 이용하여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진 않은지 늘 염두에 두는 것이다. 최소한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고 싶다.       

여기, 그 상식을 넘어 마음 깊이 짓눌린 육중한 무게감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 모두가 회피하는 책임감을 오롯이 떠안고 있는 것일까?  


   

노블레스 오블리쥐;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칼레의 시민들> 오귀스트 로댕, 1884~1889년, 청동  

   


칼레시는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영국과 가장 가까이 있어 역사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은 지역이다. 14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인 장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 의하면 1347년 8월 3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칼레시가 오랜 저항 끝에 항복한 날이었다. 영국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되자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로 향하는 모든 보급로를 차단해 버린다. 오랫동안 굶주린 칼레시는 기나긴 투쟁 끝에 결국 항복하고 만다. 이에 의기양양해진 에드워드 3세는 철수의 조건으로 칼레를 대표하는 시민 6명을 선발해 교수형에 쓰일 밧줄로 몸을 묶고 성문 열쇠를 들고 나오라고 요구한다.


깊이 분노한 칼레 시민들은 시민 회의를 열고….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을 깨고 가장 부유한 지도자인 유스타슈 생 피에르가 앞장섰다. 이를 지켜본 시민 중 5명도 그와 함께하겠노라며 용기를 낸다.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의 대열에 동참한 6명의 당당하고 결의에 찬 모습에 놀란다. 이것을 지켜본 왕비 역시 그들의 용기에 감동하여 자비를 베풀 것을 왕에게 간청한다. 결국, 6명의 시민은 목숨을 구하게 된다.      


로댕이 작품을 의뢰받았을 당시, 칼레시는 유스타슈 생 피에르를 영웅시하는 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연대기를 읽은 로댕의 생각은 달랐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닌 전체 시민이 협동하여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구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고심 끝에 완성한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다.


로댕은 칼레의 시민에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쥐를 본 것은 아닐까?






정중앙에 위치하여 무리를 이끄는 군상이 유스타슈 생 피에르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그의 표정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가 짊어지고 있는 육중한 책임감의 무게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만 같다.  

   

 




그의 왼편으로 성문 열쇠를 들고 있는 시민은 장 데르이다. 자기 삶의 터전을 적에게 내주어야 하는 심정과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감당하려 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4명의 군상은 두 사람처럼 죽음 앞에 초연하지 못하다. 억지로 누르고 있는 감정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어찌할 바를 모르고 표출되고 있다.     


 





가장 오른편에 서 있는 두 군상은 피에르 드 비상과 자크 드 비상 형제이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피에르 드 비상은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뒤틀며 뒤따라오는 동생을 재촉한다. 일그러진 그의 표정과 역동적인 제스처는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정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옆으로 장 드 핀네와 앙드리외 당드레이다. 한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넋이 나간 모습으로, 또 다른 이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파리 로댕갤러리 정원에 놓여있는 작품 앞에 서면 숭고한 군상들의 눈빛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심지어 생을 마감하기 직전 힘줄이 툭툭 불거진 그들의 팔과 다리를 만질 수도 있을 듯하다. 군상들은 우리와 같은 지면을 밟고 서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듯 매우 사실적인 모습이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군상의 모습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작은 손해를 넘어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야 할 때가 있다. 또한, 희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상황도 만나게 된다. 이럴 때 나는 과연 여섯 군상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만 손해 볼세라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며 사는 게 인간 사이다. 소위 권력자라고 칭하는 자들의 비리나 부정은 이러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일부 권력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무게나 책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것을 이용하여 취할 수 있는 이득만을 목표로 상처 받거나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고 타인을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원래 갖고 있었던 권리란 없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생명의 본질은 안정감이라고 한다. 안정감은 균형과 공존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균형과 공존 없이는 서로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깊이 있는 신뢰가 쌓일 수 없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도 같은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서로 연대하고 포용할 수 있는 문화.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사회. 대다수가 바라는 사회일 것이다.


권력이든, 돈이든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나누거나 포기하기란 매우 힘든 일임을 잘 안다. 하지만 칼레의 시민만큼은 아니더라도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과 희생정신, 더불어 공동체 의식이 바탕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훨씬 더 건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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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_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직하며 겪었던 일상과 예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로 살수 있는지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