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 어딘가에 있을 나만의 영화에게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포함해 3관왕의 영예를 안은 김초희 감독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는 감독 본인이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20대 시절 때부터 해왔던 고민을 ‘찬실(강말금)’이라는 캐릭터에 투영해 펼쳐낸 작품이다. 대개 감독의 고민이 담긴 영화는 담담하거나 무거운 톤을 띠지만, 이와 정반대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전작 단편영화 <산나물 처녀> (2016)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던 과잉된 독특성을 보완하고, 진솔함을 추가함으로써 기발하고 재미있는 분위기 속에서 서사를 전개한다.
김초희 감독 (출처: Daum 영화)


이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던 어느 날 찬실의 눈앞에 귀신이 등장한다. 그 귀신은 찬실에게 자기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 (1990)에서 주인공 ‘아비’를 연기한 홍콩의 유명 배우 ‘장국영(김영민)’이라고 소개하며 밤마다 그녀의 곁에 등장한다. 처음에 찬실은 헛것을 보기 시작했다며 귀신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귀신에게 고민을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한다. 심지어 찬실은 귀신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계기였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 (1989)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즉, 귀신 장국영은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고민이라도 들어줬으면 하는 찬실의 심정이 환영으로 표출된 것이자, 찬실의 영화를 향한 사랑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영화적인 존재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을 떠올리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20대 시절을 상기한 찬실은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그간 미룬 다른 질문들을 서서히 마주한다. 비로소 삶이 무엇인지 궁금해진 찬실은 본인의 삶을 성찰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삶 속 어딘가에 위치한 영화 덕분에 오늘날 자기가 이 땅 위에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초심을 되찾은 찬실은 용기를 잃지 않고 본인이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그리고 느끼고 싶은 것을 영화 한 편으로 완성하겠다고 결심한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집사의 시간> (1989)
영화는 찬실의 결심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나리오 작성에 몰두하는 그녀의 행위로 그려낸다.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진 찬실을 담아낸 이미지는 축적되면서 그녀가 타인에게서 행복을 찾으려는 수동적 인물에서 자기에로의 몰입을 통해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는 능동적인 인물로 성장했음을 함축적으로 이야기한다. 끝으로 영화는 늦은 밤에 전등을 사러 동료들과 밖으로 나온 찬실이 뒤에 서서 랜턴을 비추며 “내가 비춰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출발해, 어딘가에 있는 위치한 터널을 통과한 다음, 찬실이가 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를 보며 박수를 치는 귀신 장국영의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찬실이 비춘 빛이 터널을 통과해 어느 극장에 필름의 형태로 도달하는 엔딩 시퀀스는 프로듀서로서의 삶에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연출자로서의 삶을 환영하는 찬실의 모습이자 영화를 향한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인 감정이 담긴 헌사를 영화롭게 공존시킨 마법적인 시퀀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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