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미술과 몸;
<용봉사녀도(龍鳳仕女圖)>와 진시황의 병마용(兵馬俑, Qin Terra-cotta Warriors and Horses)
<용봉사녀도(龍鳳仕女圖)>, 기원전 3세기, 수묵담채, 31.2×23.2cm,
호남 성진가대산초묘 출토, 호남성박물관
사진출처: https://zh.wikipedia.org/zh-tw/%E4%BA%BA%E7%89%A9%E9%BE%99%E5%87%A4%E5%B8%9B%E7%94%BB
<용봉사녀도>는 기원전 3세기경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회화작품 중 하나이다(사진 1). 이 작품은 종이가 아닌 비단 위에 그려진 작품인데, 이 작품이 기원전 3세기의 것이라는 ‘진위여부(眞僞與否)’를 떠나, 종이로 된 작품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을 넘어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중국과는 다르게 한국에서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하나의 완성된 회화작품이 실존하여 남아있는 작품 사례는 고려시대(918년~1392년)부터 시작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회화는 무덤벽화나 조각, 공예 등에 남아있는 것으로 삼국시대에도 종이나 비단 위에 그려진 회화작품들이 있었다는 기록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어쨌든 <용봉사녀도>는 중국의 전통 및 고대 회화를 대변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선(線)이 강조된다는 사실이다. <용봉사녀도> 화폭의 여성과 동물들은 선에 의해 그 형상이 묘사되어 있으며, 색채적 표현은 없다. 물론 작품이 제작되던 당시에는 색채가 가미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이 형상을 묘사하는 주요 표현법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선이 중요시되는 회화적 특성은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주요 표현법으로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왔는데, 그 기원을 기원 이전의 시대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용봉사녀도>에서 몸을 묘사한 방식을 보면, 리얼리티(reality)에 바탕을 둔 묘사가 아니라 도형이나 문양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하고 간결한 방법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머리와 몸의 비례는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팔이나 다리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고 여성이 입은 옷이나 옷의 패턴에 묘사에 주안점이 있다. 그녀의 얼굴은 개인적 특성이나 누구인지 식별 가능한 묘사가 없어서 누구의 얼굴인지 인식이 가능하지 않으며, 여성임을 드러내는 데만 초점이 있는 듯하다. 그녀의 머리와 옷의 형식에서 그녀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은 아마도 그녀의 사회적 위치와 담당하는 역할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특성을 강조한 초상화로 보기는 힘들다. 아마도 당시의 사람들은 개개인의 몸의 특성보다는 성별, 지위, 역할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더욱 많은 관심을 두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뒤엎는 방대한 유물들이 중국의 서안(西安)에서 1974년 발견되었다.
<진시황릉의 병마용>, 진시황 재위 기간: B.C.247~B.C.220, 서안, 중국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erracotta_Army
서안에서 발견된 방대한 유물들은 바로 ‘진시황(秦始皇)의 병마용(兵馬俑)’으로 알려진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기마군대이다(사진 2). 병마용들이 남아있는 지하굴, 즉 병마용갱(兵馬俑坑)은 진시황의 무덤에서 1km가량 떨어진 유적지이다. 병마용갱 안에는 흙으로 구워서 만들어진 병사, 장군, 말, 전차 등의 모형들이 있으며. 현재 발견된 병사의 수는 8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병마용갱은 아직도 발굴을 진행 중이며, 근처의 진시황의 무덤은 아직 발굴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진시황릉의 주변은 토양이 많은 수은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조사되었고, 발굴에 따른 여러 가지 위험부담으로 아직 발굴이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원격 탐지기를 이용하여 지하의 진시황릉이 높이 76미터, 350평방미터의 면적에 달하는 흙으로 된 거대한 피라미드라는 것을 밝혀냈는데, 그 규모는 중국의 전 역사 중에서 가장 큰 황릉이다.
<진시황릉의 병마용>, 진시황 재위 기간: B.C.247~B.C.220, 서안, 중국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erracotta_Army
다시 진시황제의 병마용(兵馬俑) 이야기로 돌아오면, 대다수의 테라코타 병사, 악사, 곡예사 등의 키는 1.7미터에서 1.9미터 사이이며, 장군들의 키는 대부분 2미터에 달한다(사진 3). 병마용 구성원의 몸은 실제 크기보다 약간 크게 만들어졌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머리, 발, 다리, 손 크기 등의 비례를 보았을 때 추정되는 사실이다. 실제의 몸 크기에 비해 약간 크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 병마용의 군사들은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병마용갱 안의 모든 군사들의 모습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얼굴의 형태나 특성, 표정, 취하고 있는 자세, 몸의 비만도, 머리 모양, 모든 신체적 특징이 다르다. 심지어 병사마다 몸에 각기 다른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병사마다 실제 모델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중국 고대시대에 이렇듯 개인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며 실제와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알려진 조각상은 진시황릉의 병마용이 유일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중국 고대의 다른 조각상이나 다른 병마용들과 비교해보면 매우 차별적이다(사진 4).
<주발(周勃)의 병마용>, 주발의 생애: ?~B.C.169, 양가만, 중국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Yangjiawan_terracotta_army
진시황제의 병마용(兵馬俑)의 리얼리티(reality)와 관련하여, 서구권의 몇몇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의 리얼리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펼쳤지만, 그 주장은 커다란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병마용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제작 방식과는 다르며(병마용은 머리, 몸, 팔, 다리가 각각 제작된 뒤 결합된 방식이라고 알려짐), 신(god)이나 높은 지위의 있는 사람의 권위와 힘을 내포하는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개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는 사실에서도 고대 그리스 조각의 리얼리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진시황릉의 병마용>, 진시황 재위 기간: B.C.247~B.C.220, 서안, 중국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erracotta_Army

<진시황릉의 곡예사들>, 진시황 재위 기간: B.C.247~B.C.220, 서안, 중국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erracotta_Army
진시황제의 병마용은 이집트의 스핑크스와도 같이(고대 그리스 조각도 채색이 되었다고 함)
제작 당시에 채색이 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대부분 병마용에 채색된 색들이 공기 중으로 사라졌지만, 아직 채색이 남아있는 병마용들을 보면 개인적 특성이 더욱 드러나 무섭도록 현실적이다(사진 5). 색채가 입혀진 병마용들을 보면 현실적 묘사에 있어서 과장이 없어 보이며 피부색 등의 개인적 특성이 더욱 드러난다. 또한, 병마용 중에서 곡예사들은 상반신에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 상태로 표현되었는데, 곡예사들의 몸은 살집이 있는 몸이 있는가 하면 왜소한 몸도 있다(사진 6). 병마용들 가운데, 한 장군과 한 중위 계급 무사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개인적 특성의 차이점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눈과 코의 크기 및 모양, 머리의 모양, 수염의 길이와 모양, 얼굴형, 주름의 모양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다르다(사진 7).
<진시황릉의 병마용>의 장군과 중위 계급 무사의 얼굴
진시황 재위 기간: B.C.247~B.C.220, 서안, 중국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erracotta_Army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고대 그리스 조각상은 리얼리티에 기반을 두었지만 인위적 미를 추구하는 이상적 몸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진시황의 병마용은 이상적인 몸 형체의 구현과는 거리가 있으며 보다 생생한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대 그리스는 사회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미를 기반으로 이상적 몸을 예술적 측면에서 추구했다고 할 수 있으며, 고대 중국은 이상적 몸을 추구하지 않고 개인이 가진 몸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고가 예술로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시황릉의 병마용 사례만을 가지고 이러한 결론은 내는 것은 섣부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이어지는 칼럼에서 다른 미술작품들과 함께 몸에 대하여 다시 논의해 보도록 한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중국 고대 신화와 지리 및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산해경(山海經)’과 몸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