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코 동굴의 동물그림>,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부분도, 17000년 전 추정.
사진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image/3539/cave-painting-in-lascaux/
프랑스 몽티냐크(Montignac)에 위치한 라스코 동굴은 현존하는 동굴벽화 중 가장 유명한 벽화들이 있는 장소이다. 1940년 네 명의 소년들이 라스코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였고, 그들은 입구에서 15미터 정도 걸어 들어가 동굴의 벽과 천장에 뒤덮인 선사시대 그림들을 발견하였다. 동굴 안의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의 이미지와 현란한 손바닥 자국들은 언제 그려졌는지 가늠하기 힘들었을지라도 그들에게 타임슬립(Time Slip)을 한 것과도 같은 경험을 선사했을 것이다. 라스코 동굴은 거대한 타임캡슐과도 같았고, 이후 동굴을 통해 머나먼 과거로 여행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1963년 프랑스 정부는 라스코 동굴을 세균, 곰팡이, 벽화 훼손 등의 문제로 보존을 위하여 폐쇄하고, 1983년 이후부터 라스코 동굴 주변에 복제 동굴들을 지어 대중에게 공개하였다. 공개된 복제 동굴은 내부에 인공조명을 도입하여 동굴벽화를 보다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라스코 동굴의 말 그림>,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부분도, 17000년 전 추정.
사진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image/5589/painting-of-a-horse-lascaux-cave/
라스코 동굴의 벽과 천장에 그려진 약 600개의 벽화들은 크게 동물, 손바닥 자국,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적 이미지 세 가지로 분류된다. 그려진 동물들은 말, 사슴, 사자, 곰, 소, 새, 고양이 등 현대에도 볼 수 있는 동물들이 대부분이다. 지난번 살펴본 슬라웨시 동물벽화와 마찬가지로 라스코 동굴의 동물들은 누가 보더라도 어떤 동물인지 구분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되어있다. 그러나 슬라웨시 동물벽화와 비교했을 때, 사용된 색채의 색감은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졌다. 또한, 동물의 형태를 선으로 강조하여 묘사한 회화 기법이 눈에 띈다. 동물의 몸을 표현한 색상도 단색으로 균일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고 흐리고 진한 농담을 조절하여 표현했으며, 비슷한 계열의 다른 색상을 섞어서 사용한 것도 있다. 이러한 색채적 특징 외에도 라스코의 동물들은 고유의 움직임이 형태와 함께 묘사되어있으며, 많은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여러 동물들이 한 장면에 겹쳐서 묘사된 부분도 있으며, 같은 동물이더라도 크기를 다르게 묘사하여 거리감을 표현한 점은 동굴 전체의 이미지를 더욱 풍성하고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
주목할 점은 라스코 동굴의 벽화가 평평하지 않은 굴곡진 면에 그려졌으며, 라스코 동굴의 화가들은 이를 인식하고 화면의 굴곡과 공간적 형태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체계적 문자언어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원시인류는 동굴 벽의 질감과 공간감을 활용하여 그림과 그 주변 환경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20m 높이의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의 천장에 그린 거대한 천장화가 관람자들이 밑에서 올려다볼 것을 고려하고 그렸듯이, 라스코의 화가들도 그들의 그림을 관람자들이 몸을 움직여 감상할 것을 고려하고 그렸다. 다시 말해, 화가 자신의 시각을 고려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관람자의 시점을 고려해서 그림의 위치와 구도를 정하여 그렸다는 것이다. 이는 동굴의 원시 화가가 다른 사람들 또는 뒷세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그림을 남겼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이러한 사실은 라스코 동굴의 손바닥 자국들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라스코 동굴의 손바닥 자국들>,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부분도, 17000년 전 추정.
사진출처: https://www.reddit.com/r/interestingasfuck/comments/gpp6fm/lascaux_hand_paintings_17000_years_old/?rdt=49751
손바닥 자국은 인류가 기록을 남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창작된 인류 최초의 몸의 형상이다. 인류학자들은 원시인류가 손바닥 자국을 남겼던 이유에 대하여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거나, 손바닥 자국이 언어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었다고 추측한다. 라스코 동굴의 손바닥 형상은 저마다 다르다. 손바닥의 주인이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손바닥 자국의 주인들은 대부분 여성이며, 손바닥은 왼손인 경우가 많고, 어깨높이에서 손바닥 자국을 주로 남겼다고 한다. 손바닥 자국의 주인이 오른손으로 물감을 뿌려서 왼손 자국을 남겼거나, 타인이 손바닥 주인의 왼손 자국을 남기는 것을 물감을 뿌려 도와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보았을 때, 원시인류는 현대 인간과 동일하게 오른손잡이가 대다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혹 손바닥 자국 중에서 손가락의 일부분이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를 두고 어떤 불의의 사고나 사건으로 인해 손가락을 잃은 사례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일부러 손가락의 일부분을 찍히지 않게 자국을 남겨 수신호, 즉 언어적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가설도 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원주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손가락으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시시대의 손바닥 자국이 언어적 기능을 목적으로 남겨졌다는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을 뒤로 하고, 손바닥 자국을 남긴 보다 근원적 원인을 생각해보자. 손바닥 자국은 슬라웨시, 라스코 동굴 외에도 많은 동굴유적에 공통으로 남아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사실이 시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이 몸의 자국을 남기려면 가장 쉬운 것은 다른 부위보다 자유롭게 움직임이 가능한 손이나 발일 가능성이 크다.(1) 인간 몸의 구조상 머리나 엉덩이 등의 자국을 남기려면 손이나 발과 비교해서 불편한 일이다.
선사시대 남겨진 원시인류의 발자국이 많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라스코 동굴의 손바닥 자국과 같이 어떤 메시지나 존재의 흔적을 인위적으로 남기고자 했던 이유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우연한 존재의 흔적이다. 물론 드물게 예외의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은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요점은 원시인류는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손바닥 자국을 남기고자 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손으로 많은 것을 수행한다. 발은 원거리 이동과 상하(上下)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지만, 손은 음식을 먹게 하고 돌을 줍게 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인간 몸의 연장 기능을 한다. 손을 이용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 고유의 특징이다. 원숭이나 침팬지도 그들의 손을 이용하여 일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의 손은 이보다 체계적이고 섬세하고 세밀한 일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 고유의 특성을 자각하고, 원시인류는 인간으로서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원시시대에는 손의 지문에 대한 자각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현재 인간의 지문 모양이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사람의 신원을 조사하기 위해서 지문부터 조사하는 것은 아주 상식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손가락과 손바닥의 모양도 각자 고유의 모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현재도 원주민 스타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일부는 손바닥의 모양을 보면 가족이나 친지 중 누구인지 인식 가능하다고 한다. 원시인류가 이렇게 손의 모양을 통해 가까운 인간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을지의 여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2) 다수의 원시인류가 손바닥 자국을 동굴 벽에 남기고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그들도 저마다 다른 손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동물의 형상을 구분하여 묘사하고 동물의 움직임을 각 동물의 특성을 담아 묘사할 수 있었던 회화기술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원시인류는 손의 형상이 각자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원시인류가 손바닥 자국이 인간 고유 존재의 표식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 손을 통해 동물과는 차별화된 행위가 가능했던 그들 ‘몸의 존재성’을 타인과 뒷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의지가 있었던 것만큼은 자명한 사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다음 편에서는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몸 완전체 형상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von Willendorf)와 로셀의 비너스(Venus of Laussel)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
(1)인간 몸의 구조상 머리나 엉덩이 등의 자국을 남기려면 손이나 발과 비교해서 불편한 일이다.
(2)다수의 원시인류가 손바닥 자국을 동굴 벽에 남기고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그들도 저마다 다른 손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동물의 형상을 구분하여 묘사하고 동물의 움직임을 각 동물의 특성을 담아 묘사할 수 있었던 회화기술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원시인류는 손의 형상이 각자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