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가 손으로 밥을 먹었다고?_아브라함 보스 ˹미각
-그림 속 매너 이야기-
<그림 속 매너 이야기> 루이 14세가 손으로 밥을 먹었다고?_아브라함 보스 ˹미각
처음으로 일등석 서비스를 맡았을 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입사가 확정되면 약 4개월간의 기내서비스와 안전업무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물론 유니폼을 입고 모형비행기에서 교육을 받긴 하지만 승무원이 되었다는 것이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있는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오후에 이루어지는 실습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포의 신입훈련이 끝나고 대략 일주일간의 시범비행을 마치면 가슴에 자랑스러운 윙을 달아준다. 드디어 승무원으로서 정식 스케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차차 회사와 유니폼에 적응해갈 무렵,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친다. 바로 상위클래스 교육이다. 열흘간의 교육 동안 나의 수면시간은 총 20시간이 채 안 되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로 하혈을 하는 동기도 있을 정도였다. 일단 내용 자체가 워낙 낯설기도 했고 읽기조차 힘든 와인 이름을 노선별로 외워야 하는 등 암기해야 하는 내용이 어마어마했다. 가성비가 중요한 회사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교육의 당사자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놈의 회사, 교육만 없으면 다닐만한데….’ 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고강도의 훈련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교육을 마치고 나의 일등석 데뷔비행! 로스앤젤레스였다.
일등석은 시니어와 주니어 그리고 갤리 듀티. 이렇게 세 사람이 맡는다. 시니어는 우리 팀 탑 언니(팀 선배 중 가장 맏언니를 이렇게 부른다)였고 주니어인 나는 언니의 서비스를 보조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 출입문을 닫고 나니 어젯밤에 달달 외웠던 서비스 프로시저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이륙 후 젖은 타월, 메뉴 북, 테이블보, 아니 테이블보 다음 메뉴 북인가……. 그다음 아페리티프, 수프와 빵 서비스. 오늘 탑재된 빵 이름은……. 아니 그전에 테이블 웨어 세팅……. 일등석은 이코노미석 서비스를 하나하나 자세히 펼쳐 놓은 것이라 정식 코스만도 십여 가지가 넘는다. 게다가 코스별 상차림이 다르고 일일이 챙겨야 할 세부사항들이 많다. 예를 들어 수프의 종류만 해도 2, 3가지가 되었고 각 수프에 올라가는 가니쉬가 각각 2, 3가지…. 비상사태는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가 착착 진행될 리 없었다. 테이블 웨어 세팅부터 엉망이 되어버렸다.
나와 마주하고 앉아있는 승객의 기준에 맞추어 놓아야 할 포크와 나이프를 나의 방향에 맞춰 전부 왼손잡이 승객이 되어버렸다. 포크는 또 왜 이렇게 모양이 다 제각각인지…. 수저 세트를 드려야 하는 한식 승객에게도 전부 양식으로 세팅을 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메인 디쉬 서비스가 끝나고 와인이 나갈 차례였다.
와인 바스켓에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4병을 꽂아 1A 승객 옆에 섰다.
그런데 나무로 짜인 바스켓이 와인의 무게에 못 이겨 밑바닥이 구멍이 나면서 포도주가 바닥에 떨어져 대굴대굴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하필 레드 와인이 병째 떨어지면서 1A 회장님의 흰색 셔츠가 보르도산 루비색으로 변해버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죄송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 오늘이 나의 마지막 비행이겠구나….’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사고 제대로 쳤네…. 자네 기수가 어떻게 되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지? 괜찮아 이까짓 옷 한 벌 버리면 되지 뭐….”하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제야 눈물 글썽이며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렸다. 좋은 분을 만나 천만다행이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양식 테이블 매너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우리에겐 너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서양식 테이블 매너. 엄마 뱃속에서부터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쥐고 태어날 것만 같은 프랑스인들도 지금의 우아한 식문화를 갖춘 지는 4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테이블 매너가 완성되기 전, 프랑스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식사를 했을까? 그때 그들의 식사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미각> 아브라함 보스. 연도 미상. 투르 미술관.
화려하게 수놓아진 태피스트리, 세련된 의자와 테이블, 냅킨을 들고 식사를 하는 두 부부의 우아한 제스처, 시종을 드는 세 명의 하인 등 한 눈으로 보아도 17세기 귀족의 격 있는 식사 장면이다. 지금의 식사 장면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하지만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마치 무릎담요를 연상시킬만한 크기의 냅킨이다. 그리고 테이블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서양식의 상징인 죽 늘어선 개인용 포크와 나이프가 없다. 안주인은 이제 막 손으로 아티초크를 집으려 하는 순간이다. 작품의 제작연도로 추정되는 17세기에는 음식을 손으로 먹던 시대였다. 태양왕이라 자칭했던 루이 14세 또한 만인들 앞에서 손으로 수프를 휘휘 저어가며 고기를 건져 먹곤 했다. 물론 포크가 존재하긴 했지만 큰 고기를 썰기 위해 고정하는 용도였고 그 무게만도 500g이 넘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커다란 냅킨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구석기인들의 식사나,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을 떠올리는 건 오산이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나름대로 까다로운 식사예절이 있었다. 예를 들어, 손은 반드시 오른손가락을 사용해야 하며, 손가락을 빨아서는 안 된다. 식사 후에는 상큼한 레몬 향이 들어간 물에 손을 헹구고, 생선은 뒤집지 않고 가시를 발라내고 먹는다. 등 오늘날의 테이블 매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크가 일상적인 식사 도구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18세기나 되어서였다.
앙리 2세의 부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로 시집을 오면서 이탈리아의 세련된 식문화가 프랑스로 유입된다. 중세까지만 해도 전 유럽에서 요리란 거의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금욕적인 기독교 문화로 인해 의도적으로 요리를 발전시키지 않았고 냉장시설이 존재하지 않아 다양한 요리를 만들기에 제약이 많았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식사의 개념이 크게 달라진다.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게 된 것이다. 즉 ‘미각’이 생활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일 것만 같았던 루이 14세의 동생 오를레앙공작은 스스로 요리하는 것을 즐겼고, 새로운 요리법을 담은 요리책이 발간되어 사람들을 열광시킨 것도 이 시기였다. 무엇보다 설탕에 매료되면서 프랑스에 화려한 디저트가 등장한 것도 18세기부터였다. 훌륭한 요리에는 와인이나 음료가 곁들여지기 마련. 요리의 발전은 프랑스를 유명 와인 산지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당시에는 미비한 정화시설 탓에 깨끗한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다섯 살이 지나면 와인이나 맥주를 물 대신 마셨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림 속 남자는 레드 와인을 들이키는 중이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와인잔은 투박한 주석이 아닌 투명한 유리로 만든 잔이다. 당시 무라노를 중심으로 베네치아의 유리잔이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면서 기존의 주석이나 은으로 만든 와인잔을 대체했다.
이러한 유리잔은 당시로는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치품 중 하나였다. 그의 뒤에 어린 남자 시종이 들고 있는 것이 주석 병이다. 아마도 바닥에 있는 구리단지 속에 시원하게 보관되어있는 와인을 남자 주인에게 서비스하는 역할을 맡은 듯하다.
식탁 위에는 아티초크라는 채소가 ‘허쇼’(다시 데운다. 라는 뜻의 프랑스어)라는 기구 위에 올려져 있다. 허쇼는 음식을 데우는 기능을 하는 도구로 당시의 음식 코스란 더운 요리, 찬요리, 구운 요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리법으로 코스를 나눈 셈이다. 코스별 요리는 2~3가지로 지금과는 달리 한 상에 차려놓고 먹었다. 음식의 주재료는 다름 아닌 육류였고 채소는 차가운 성질이라 생각하여 데워먹거나 말려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마도 ‘허쇼’는 테이블 위의 음식이 차가워지지 않게 데우는 풍로 같은 기구였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 옆으로 서양식 코스에서 빠져서는 안 될 빵이 보인다. 16세기까지만 해도 빵이란 지금의 뽀얀 우윳빛과는 거리가 먼 귀리와 보리로 만든 검으튀튀한 색이었다. 매우 딱딱해서 씹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테이블에 올려진 빵은 오늘날과 같은 흰색의 부드러운 빵이다. 17세기 중반 ‘제빵사’라는 전문인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정제된 하얀 밀가루로 만든 먹음직스러운 하얀 빵을 만들 수 있었다.
흰 빵, 데운 채소 요리, 투명 유리잔, 허쇼, 개인용 접시, 세련된 테이블 매너.
작품 속 두 주인공의 테이블은 당시에 유행하던 새로운 음식과 섬세한 식기들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17세기에 탄생한 ‘미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할 서양식 테이블 매너에 대해 알아보자.
코스 순서
일단 서양식이라 하면 복잡하고 긴 코스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흔히 ‘서양식 코스’라 함은
코스별로 구별된 요리가 한 가지씩 나오는 것을 생각한다. 이는 19세기 러시아에서 통용되던 것으로 코스마다 한두 가지 요리가 있었고, 음식은 하나씩 서비스되었다. 프랑스식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요리 방법에 따라 코스가 정해졌다. 가령 찬 음식, 더운 음식, 구운 음식으로 코스가 정해졌다면, 각 코스는 여러 가지 요리가 포함되었고 그것을 모두 한 상에 차려놓고 먹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식 테이블 매너는 프랑스식보다는 러시아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서양식 코스는 다음과 같다.
식전주(Apéritifs 아페리티프) - 전채요리(Hors-D’oeuvre 오르되브르) – 수프 - 빵 – 생선 – 소르베 – 육류 – 샐러드 – 디저트 – 과일과 치즈 – 커피와 식후주
코스별 주요 기능을 간단히 살펴보자.
- 식전주와 전채요리는 식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전채요리는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요리로 시각적으로 굉장히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최고급의 재료들이 많은데 세계 3대 진미라 하는 캐비어(철갑상어 알), 프와그라(거위 간), 트뤼플(향이 매우 독특한 송로버섯) 모두 전채요리에 해당한다.
- 빵은 보통 수프 코스에 이어 제공되며 디저트 코스까지 리필된다. 이는 배를 채우는 개념이 아니라 각 코스의 고유한 음식 맛이 섞이지 않도록 입 안을 씻어 주는 역할을 한다.
- 수프는 주요리에 앞서 소화를 용이하게 하고, 와인을 곁들이는 서양식에서 알코올로부터 위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샐러드는 육류요리 후에 서비스되는데 이는 알칼리성으로 육식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테이블 웨어 세팅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는 테이블 웨어 세팅이다.
내 앞에 테이블 웨어가 이렇게 펼쳐있다면 자신 있게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와인잔은 어떨까?
포크와 나이프는 그림의 빨간색 화살표가 말하듯 무조건 밖에서부터 안으로 차례차례 잡으면 된다. 자세히 보면 포크의 모양도 코스별로 다르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생선 나이프이다.
일반적으로 나이프는 엄지와 검지로 잡고 중지로 받치는데 생선 나이프는 연필 쥐듯이 잡는다. 생선이 통째로 나오는 경우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생선 비늘을 나이프로 벗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생선 살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이프의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으로 앞쪽에서 뒤쪽으로 벗겨낸다. 이제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포크를 이용하여 생선 살을 먹으면 된다. 생각처럼 쉽지 않으니 생선을 주문할 때는 필레(fillet: 뼈를 발라낸 살코기)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결정하기 바란다.
디저트 나이프와 포크는 그림처럼 미리 세팅되어있는 경우도 있고, 디저트가 나올 때 같이 주는 경우도 있으니 없다고 당황하지 말자.
다음으로 와인잔을 살펴보자.
와인잔은 와인의 종류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다. 통상 레드 와인잔은 볼이 넓고 크다. ‘와인 브리딩’을 위해서인데 공기와의 접촉이 많아야 더 깊고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은 공기와의 접촉을 줄여야 오랫동안 청량감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좁고 길쭉한 잔을 사용한다.
이러한 내용을 이해한다면 어떤 와인잔을 잡아야 할지 고민되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서양식 테이블 매너의 역사와 간단한 테이블 매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림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매번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예술이라는 것이 미학적인 기능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작품 한 점 한 점이 참으로 보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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