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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 ARTLECTURE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삶으로서의 추상, 세계로서의 색채-
/Insight/
by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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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삶으로서의 추상, 세계로서의 색채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 삶으로서의 추상, 세계로서의 색채


2차 대전의 종전 이후 서구사회는 과거에 대한 반성작업을 역사 및 정치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철학, 예술의 영역까지 확대시켰다. 이전까지의 서구세계는 규정적 판단력이 주를 이뤘었다. 서구중심적인 사고 속에서 비서구를 자신들의 틀 안에서 규정하고, 자신들이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나 하위로 여겨지는 가치들에 있어선 소거를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태도의 여파가 비합리적인 규정을 이성으로 합리화하려는 2차 세계대전의 광기로 나타났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규정적 판단력 대신 반성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하였다. 자신들이 판단할 수 없는 영역에 다름 아닌, 그간 마주한적 없는 새롭고 낯선 가치들을 고루한 틀 안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출현과 존재를 이해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시키려 애쓰기 시작하였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이 민주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라는 거대 서사들의 충돌에 다름 아니었다면,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이념중심적인 삶이 아닌 미시적이고도 소규모의 서사로서의 개별적인 삶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담론들이 전개될 때 예술에서는 거대서사로서 모더니즘이 막을 내리고, 소규모의 서사로 나눠지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가 열어젖혀지고 있었다. 50년대에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열어젖힌 두 사조는 팝아트와 상황주의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본 글에서 다룰 아스거 욘은 상황주의에 속한다. 팝아트는 분명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신을 드러내는 사조로 여겨지곤 하였다. 모더니즘에서 배제하던 정치성, 예술장르 고유의 본령만을 추구하려던 교조주의, 그리고 대중들과 점점 더 멀어지던 엘리트주의 등 이전시대의 예술에 있어서 한계와 과오로 여겨지던 것들을 극복하는 사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팝아트가 언제나 예술계 내부에서 긍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영향력이 남아있던 모더니스트들에 의해서, 그리고 팝아티스트들보다 더욱 급진적이라 할 수 있는 상황주의자들에 의해서 반론이 제기되었다. 상황주의자들에게서 제기된 비판은 팝아트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감식안을 무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그리고 동시대에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철학가들에게서 자본주의는 2차 세계대전의 주요한 이념들과 마찬가지로 비판이 대상이 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위르겐 하버마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도구화되었던 이성이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도구화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자본주의가 모든 가치들을 자본에 귀속시켜 획일화시키고, 또한 인간적이라 여겨지는 가치들 또한 자본에 귀속시켜 비인간화를 촉발 시킨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상황주의자들도 일치하였고, 그들은 예술이 결코 자본에 의해 환원 및 귀속되어선 안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친숙한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대중들과 화해를 도모했을지언정, 이러한 이념을 무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팝아트에 대해서 상황주의자들은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전 시대의 이념, 동시대의 이념, 그리고 팝아트와 선을 긋는 상황주의자들의 미학은 개별적인 상황, 소외된 인간의 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이념에 의한 상황이 아닌 보다 미시적이고 실제적이며, 언제나 이념을 선행하는 실존적인 인류의 상황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모더니즘이 절대 불변하는 본질의 탐구요, 팝아트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이념에의 순응이었다면, 상황주의는 실존적인 인류와 즉각적이고 찰나적인 상황들에 대한 탐구가 도드라졌다. 그들의 예술적 토대는 다다이즘이 가장 대두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아방가르드라 할 수 있는 초현실주의와는 거리를 두었고 모더니즘의 끄트머리를 증명하는 추상표현주의와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경멸하였다. 상황주의 운동은 건축에서도 그리고 보다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서도 일어났지만, 보다 온건하다 할 수 있는 미술의 영역에서도 진행되었다. 



이 같은 미술의 영역에서의 상황주의 운동은 1955년 결성된 IMIB(Imagist Bauhaus)를 통해 전개되었고, 이 운동에서 아스거 욘과 그가 1948년부터 1951년까지 활동한 코브라(CoBrA)는 가장 큰 지양분이 되었다. 그들은 현실에서 유리된 초현실주의, 그리고 현실의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 추상표현주의에 반감을 품고 보다 현실을 담아내는 화풍을 고안했다. 실제적인 삶의 모습들을 화폭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문화권의 양식들이 지양분이 되었고, 아카데미즘에 입각한 정제된 화풍이 아닌 보다 즉흥적이고 솔직한 아마추어리즘에서 일련의 방법론을 길어오기도 하였다. 또한 형식에는 삶이 묻어나야하기 때문에 색채와 마티에르, 붓터치는 강건한 주관성이 표명되는 영역이었다. 이 같은 형식과 주고나성의 일치는 표현주의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IMIB와 코브라는 화폭 속에만 얽매이지 않았으며, 매체와 형식에 있어 일상적인 것, 공산품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문화, 일상의 개입은 팝아트와는 달리 당대의 이념의 부조리와, 이념이 은폐하고 억압하려는 생생한 삶을 드러내는 것에 있었다. 이러한 코브라 및 상황주의 운동의 가장 큰 축 중 하나였던 아스거 욘은 1914년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독실하고도 근본주의적인 카톨릭 교도였는데 욘은 이에 반감을 품곤 했으며, 또한 그의 청년시절에는 나치가 덴마크를 침략하여 그의 조국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이러한 부모님에 대한 반항과 당대의 거스를 수 없는 사건들은 욘에게서 전체주의적인 이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심어주었다. 카톨릭과 전체주의, 그리고 이후에는 자본주의의 배격이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추적으로 다뤄지는데, 이러한 대항마로 그가 긍정한 것은 사회주의였다. 실제로 욘은 덴마크 공산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남아있는데, 다만 그는 당대의 사회주의 국가들을 결코 긍정하지 않았다. 그가 증오한 다른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전체주의적 속성과 착취가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사회주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 도래시켜야만 하는 이론적인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유포리즘>, 1970


이렇게 급진적으로 당대의 자본주의의 물결을 배격했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회주의적 삶을 몸소 실현하려 노력했던 그이지만 동경하는 미래는 결코 그에게 쉬이 도래하지 않았다. 그는 작금의 예술계가 자본주의에 귀속되었다고 판단되어 보다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였고, 이에 대표적으로 구겐하임 재단의 미술상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수상 및 상금을 거부하였고, 이 같은 사례는 그의 일생 중 단지 일부에 국한되었기에 그에게서 가난은 마치 꼬리표처럼 온 일생을 쫓아다녔다. 가난에 의한 아내와의 불화는 곧 가정의 붕괴로 이어졌고, 그는 그저 연명할 정도로만 끼니를 때워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다. 이데올로기에 순응하지 않는 삶, 바깥에 놓이려 애쓰는 삶이 곧 삶의 한계이자 근접한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이 같은 체험을 화폭 속에 옮겨 담았다. 전시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유포리즘>과 이 옆에 좌우로 대비를 자아내는 <녹턴 2>, <가난한 자>가 이에 대표적이다. 행복에 도취된 상태를 그려낸 <유포리즘>, 그 도취란 당대 이데올로기에서 허용된 행복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에 끝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광적이고 쨍한 노란색이 주를 이룬다. 이에 사람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내면으로 집중하게끔 만들어 사람을 차분히 만드는 파랑색은 이 같은 병적인 노랑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간다. <유포리즘>의 행복은 오직 자본주의 내에서의 쾌락과 탐닉, 소모적이고도 동물적인 열광밖에 보이지 않으며, 인간과 그들이 도달하고자하는 신의 색채로서의 파랑은 서서히 사라져간다. 



<녹턴 2>, 1956



병적이나 비교적 풍요로워 보이는 곡선의 마티에르로 이뤄진 <유포리즘>과 달리 가난한 자의 필치는 날카롭다. 신경질적이고 빠른 필치에 밝아질수록 부정적인 함의가 강해지는 녹색 및 노랑과 같은 색채와 폭력, 피, 충돌을 연상케 하는 빨강, 그리고 운동성이 부재한 죽음에 근접하는 색채인 둔탁한 갈색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파랑은 화폭의 가장자리로 서서히 밀려나고 있으며 긍정적인 의미들은 서서히 소거되어 간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착했다면, 제목 자체부터 야상곡인 <녹턴 2>는 죽음을 다루는 아스거 욘의 형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용되는 색채는 모든 색채가 귀결되는 궁극적인 종착점으로서의 검정, 또한 이 같은 색채의 성질이 삶과 세계에 결부되어 모든 생명들의 최종적으로 향할 곳이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무로서의 검정이 강조된다. 이 같은 검정을 필두로 흰색으로 그려진 추상적인 마티에르가 즐비해있지만, 본 작품의 흰색은 결코 순일하지 않다. 온전하게 순일한 흰색은 백골에서 다시금 피어날 생명을 연상케 한다.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나는 무에 다름 아니다. 허나 아스거 욘의 흰색에는 회색조와 갈색, 그리고 노란빛이나 붉은빛이 섞여 들어가 있다. 백골로 향하는 부패의 과정을 포착하는 색채로서 아스거 욘은 결코 죽음을 경건한 것, 신성한 것으로 다뤄내지 않는다. 그는 대단히 현실적인 일반 인류들이 죽음에 갖는 공포와 혐오감을 색채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해 거품을 내고 소용돌이치며 대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검의 공포, 그 속에서 구더기가 우글거릴 것만 같은 그런 죽음의 본질을 말이다. 



본 세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듯 욘의 작품들은 대단히 거칠고 격정적이며, 또한 추상적인 요소를 동반한다. 하지만 욘이 활동하던 시기 미국에서 진행되던 추상표현주의의 두 축인 액션페인팅 및 색면 회화와는 달리 욘의 회화는 결코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그의 추상은 내면적인 자연이든 외부의 자연이든 그것을 화가가 자의적으로 재해석해내는 칸딘스키의 보다 온건한 추상에 그치고 있으며, 또한 추상보다는 오히려 조르주 루오풍의 아주 격정적인 표현주의 계통에 가깝다. 추상보다는 표현주의에 보다 밀접한 것처럼 그의 색채는 온당 유미주의적이진 않다. 비자연적인 것으로 환원된 색채는 그가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인류들을 주관적으로 강조 및 폭로한다. 거친 필치와 두텁고 신경질적인 마티에르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생애 전반에 거쳐 결코 배제될 수 없었던 반골적 기질, 번뇌와 고뇌가 형식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가 지칭되어 있다. 온당 회화의 자율적이고도 독자적인 세계로 빠지고자 노력하던 자족적인 모더니즘의 길과는 구획을 둔다. 물론 자본주의에 환원되지 않는 순수한 형식을 바란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삶의 형태가 아닌, 자본주의의 바깥에서 진실하게 목도한 삶과 세계를 풀어내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순수회화에 가까운 작품들에서도 당대의 모더니즘이 강조한 평면적인 흰 캔버스에 배치된 선과 색, 조형성과 물질성의 순일한 조화와는 거리가 멀어다. 그는 현실적인 재료인 금박이나 은박을 사용하여 3차원의 물질계를 환기시키기도 했고, 또한 서구 바깥의 매체나 형식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좌) <위험한 입맞춤>, 1955 / (우) <남성적 저항>, 1953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상품들이 장식적이고 사람을 안정시키게 만드는 심미적인 유형의 작품이라면, 욘의 작품들은 불쾌하고 당혹스러웠으며 고통스럽다. 욘이 바라보기에는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욘은 이 같은 형식 하에 에로티즘과 죽음을 다룬 작품들을 주로 만든다. 자본주의 내에서 통용되는 사랑에 대한 작품의 유형이라면 진주빛이 감미롭게 화폭을 휘감고 핑크빛이 구름처럼 퍼지는 로코코의 사랑, 그리고 르누아르풍의 찬란한 황금빛이 내리쬐는 한낮의 유희가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욘이 보기에 이 것은 가상이고 선전이었다. 욘의 사랑에 대한 작품들은 실로 광적이다. 큐비즘의 구도를 일부 차용한 <위험한 입맞춤>은 빨강과 파랑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파랑이 실로 이성적인 색채라면 빨강은 욕망 그 자체에 상응하는 색채이다. 아직까지는 파랑에 전면에 놓여있으나 빨강이 번지는 운동감은 서서히 파랑을 향해 덮쳐가며, 차갑고도 냉정한 이성을 잠식시켜나갈 동물적인 에로스를 예고한다. 금기를 지키는 이성적인 인간을 위협하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위반으로서의 핏빛, 욘이 보기에는 이 같은 붉은 욕망이 이 세계에 만연한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남성적 저항>은 어떠한가. 노란색과 파란색이 온전한 조화를 이룬 안정 그 자체로의 녹색이 아니라 채도와 밝기가 높아져 독을 가진 파충류를 연상케 하는 불길한 녹색, 내부로 응축되는 빨강이 아니라 발산되는 욕망으로서 동물적인 주홍, 또한 서로가 극단적인 위치에 놓여 결코 조화될 수 없는 빨강과 파랑의 결합으로서 얼어붙은 병적인 빨강으로서의 보라는 불쾌하고 음침한 표정과 구불거리며 우리를 휘감는 듯한 위협적인 형태감과 조화를 이룬다. 



<어미 개를 안은 새끼>, 1955


욕망을 응축하기 위한 남성적 저항인 것인가, 저항에 의해 뜨거운 욕망은 차가운 이성의 색채에 의해 얼어붙어 버렸나, 허나 그럼에도 내부에서는 에너지가 분출되길 끊임없이 바라고 외부에서는 불길한 녹색이 비극을 예고하는 듯하다. 욘의 작품이 이 같은 불쾌감과 고통을 동반하는 것은 색채를 혼탁하고 채도가 낮게, 그리고 검정을 섞어 운동감을 무디게 만들어 둔탁하게 사용한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또한 이 같은 색채로 이뤄진 형태는 명쾌하지 않고 줄곧 흘러내리고 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욘의 형태는 고체가 액체로 변해가는 것만 같은 양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고체가 액체로 변한다는 것은 곧 흐물거리며 변해가고 부패해가는 죽음의 이미지를, 그리고 구불거리고 꿈틀거리는 구더기와 벌레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기에 욘의 형식은 실로 공포스럽고 두렵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욘이 죽음을 줄곧 상기시키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죽음에서 비롯되고 또한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맞이할 절대적인 운명이 죽음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세계의 본질을 감상자들에게 보다 친숙히 매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 같은 죽음과 한 쌍을 맺고 있는 죽음의 본질적인 요소인 폭력을 동반하는 행위이자 잠시나마 죽음의 공포를 잊게 만들어주는 성을 두려움과 함께 위치시킨다. 무엇보다 욘은 죽음을 그려내며 끝만을 포착하지 않는다. <어미 개를 안은 새끼>라는 작품을 보면, 어미 개는 과거의 어린 개로서 치환되어 있고, 반면 새끼 개는 장성한 성체로 성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어미가 새끼를 안고 있는 구도를 뒤집는다. 이는 어미가 죽어서 다시금 새끼가 되고, 또한 새끼가 어미로 장성해나가는 순환을 그려내는 것이다. 죽음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은 피어날 수 없다. 그는 새로움이 시작되는 지양분으로서의 죽음을 포착한다.



그래서 둔탁하고 불길하며 흘러내리더라도 이를 온당 부정적인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욘이 포착하는 것은 사악한 자연, 그리고 이 자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우리의 초상이다. 그리고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깊고 어두운 심연을 그려낸다는 측면에서 그에게서 어둠은 꼬리표처럼 쫓아다닌다. <예기치 않은 분열>과 같은 작품은 거의 온전한 추상에 가까워 보인다. 어떠한 자연적인 형태도 포착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 내면의 어떠한 늬앙스, 울림을 화폭 속에 구현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작품은 분열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색의 어떤 것들이 본래 붙어져 있었다면, 본 작품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칠고 둔탁한 검정 선에 의해 서로 찢겨져나간 것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분열은 서로가 서로에게 결코 밀착할 수 없는 거대한 간극, 심연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렇게 나뉘어진 자리에는 광적인 필치로 포착된, 어떤 단일한 형태와 색채로 환원될 수 없는 조형만이 남아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구조 내에서 상시 착용하고 살아가는 가면의 뒤편에 존재하는 광적인 우리의 모습, 서로 결코 합치될 수 없는 이 같은 패턴에 우리의 삶은 줄곧 분열을 이루는 것이리라. 이 같은 솔직한 삶으로서 광인에 집중하였고 이에 거칠고 신경질적인 화풍 또한 그를 대표한다. 하지만 욘이 언제나 음침하고 거무튀튀한 작품들만을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은 아프리카 및 중남미, 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다채롭고 강렬한 보색대비가 주를 이루는 색채사용, 그리고 캔버스를 벗어난 테피스트리, 또한 어린 아이들의 순박한 시선에서 사용되는 미니멀한 형태와 자유분방한 색채를 그는 현 상황의 대안으로 본 듯하다. 그래서 <밤의 축제>와 같은 작품에서는 적당한 채도 속에서 안정감을 이루는 따스한 난색들과 배경을 가득 채우는 이상을 향한 동경의 색채로서 파랑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또한 형태감들은 곡선과 원형이 주를 이루지만,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형태가 제법 탄탄하다. 그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삶과 세계의 원형이 포착되는 작품이다. 



<세속의 마리아>, 1960



<밤의 축제>와 같은 작품에서는 마티스와 고갱, 나비파의 기수들이 보인 원시주의 및 상징주의에 대한 영향력이, 그리고 이전에 살펴본 신경질적이고 거친 회화들에서는 루오와 같은 표현주의자들의 영향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가 모더니스트들의 지양분만을 흡수하여 자라온 작가는 아니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방법론도 능숙히 답습한다. 그는 기존에 존재하는 회화들을 사들여 이에 자유롭게 변형을 가하는, 일련의 레디메이드 방식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가 주로 사들인 것은 종교화였는데 그가 지향하는 숭고의 성격을 느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간의 종교화가 이끄는 숭고함은 경건함과 신성함이 주를 이뤘었다. 거대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일기도 하지만, 이 같은 신성에는 매혹이 수반되어 사람들을 이끈다. 하지만 욘의 종교화와 그 숭고함은 이 같은 이상적인 영역을 지상으로 추락시키는 것에 있다. 거칠게 낙서되어 당혹스럽고 불완전한 성모의 모습, 과거의 이상화된 초상의 모습들, 욘의 숭고는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뒤흔드는 당혹스러움, 그리고 지금까지 권위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에 과감히 도전하는 숭고함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그의 숭고함은 과거의 환영으로부터 현재의 실제를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며, 정교한 노브러쉬 스트로크로 구현된 이성적인 세계를 브러쉬 스트로크를 바탕으로 하여 정념적인 세계로 뒤바꾸며, 인간이 결코 소거해내지 못할 감정, 정념의 영역을 환기한다. 또한 기존까지의 사고방식을 뒤흔드는 숭고에도 다름 아닌데, <이국 정서>와 같은 작품에서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한다. 그간의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시선에서 허용될 수 있는 이국적 취향만을 선별해내어 그들에게 심미적인 것들만을 취합해낸 거짓된 담론이었다면, 욘에게서 이국을 드러내는 방식은 서구가 허용하지 못한 것들을 화폭 속에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서구의 규정적 판단력으로 비서구를 판단해온 야만을 고발하고, 새롭고 당혹스러우며 낯선 것을 이해하기 위한 반성적 판단력을 사용하게끔 감상자를 줄곧 자극한다. 욘의 화폭 속에서 줄곧 인간은 동물로 환원되곤 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그에게서 인류는 더 이상 동물과 구별되는 지성체가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구획 짓는 금기들을 모두 훼손했고, 야만의 길로 추락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숭고함은 당대까지 진행되어 온 서구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반성하는, 그간의 이데올로기가 은폐하고 있던 금수의 얼굴을 마주함에 느껴지는 불편함이리라. 하지만 욘이 결코 미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의 <삼면 축구>라는 작품은 미래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이 제시되어 있다. 서로가 적이 되게끔 만들고 다름이 아닌 틀림만을 일깨우는 이분법적 구도는 삼면의 구도 속에서 극복된다. 또한 경기장이라는 구조를 규정하는 심판은 부재하고, 실제 참여하는 선수들이 능동적으로 규칙을 만들어나간다. 하버마스는 이성을 통해서 다시금 의사소통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리오타르는 진정한 공정함이란 사회의 구성원 그 어느 하나도 배제되지 않고 참여한 상태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라 말했다. 이 같은 이론가들의 가능성이 녹아있는 공간이 바로 <삼면 축구>이다. 규칙을 만드는 선수로서의 우리가 의사소통 능력을 일깨우는 장, 그리고 모두가 선수로서, 그리고 공정한 규칙을 만드는 토론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욘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추상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극단화된 표현이었던, 이를 통해 실제 삶의 상황들을 포착하였던 그의 형식은 결코 우리와 유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암담한 현실을 넘어서 도래해야할 화합과 공존의 장의 가능성, 그것이 바로 상황주의자들의 최종적인 귀결점이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상황주의자로서 욘의 작품들은 우리의 삶과 세계를 가리키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글_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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