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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말 없이 통하는 소통의 언어 | ARTLECTURE

사진, 말 없이 통하는 소통의 언어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임응식의 구직-
/Picture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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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사진으로 쓰는 시각 언어는 두루 통하는 소통의 언어다. 말과 글은 서로 정해진 약속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구술, 문자 언어지만 사진의 시각 언어는 서로의 약속이 달라도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다. 브레송과 임응식이 남긴 사진을 보며 새삼 이러한 진리를 깨닫는다. 우리는 1952년의 함부르크에 가 본 적이 없어도 브레송의 사진이 전달하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후 한국을 알지 못하는 독일 사람이 임응식의 사진을 보아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테다. 고난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마음이 카메라 프레임을 거쳐 인류 공통의 보편적 언어로 다시 쓰였다.



카르티에-브레송과 임응식


얼마 전, 포토 아스날 빈(Foto Arsenal Wien)에서 열린 사진전에 다녀왔다. 두 개 전시가 동시에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Watch! Watch! Watch!》[^1]였다. 전시는 1930~70년대 사이에 찍은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과 잡지 작업, 다큐멘터리 영상 등등 200여 점을 모아 놓은 회고전이었다.


전시장을 거닐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 브레송을 말할 때 나오는 결정적 순간이나 완벽한 구도 같은 걸 다 떠나서, 무엇보다도 그는 훌륭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였다고. 브레송은 유럽과 아시아, 남미까지 전 세계를 오가며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기록했다. 전시는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천천히 작품을 보던 중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1952년 말, 한 해가 넘어가는 겨울 무렵 독일 함부르크에서 찍은 작품이었다. 사진이 눈에 띈 건 벽에 기대선 남자의 목에 걸린 팻말 때문이었다. "일자리 구함(Suche Arbeite)". (요즘 독일어 공부를 조금 하고 있는 게 도움이 됐다) '곧바로(gleich)'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다는 남자는 작은 모자 하나를 눌러쓴 채, 표정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 하나가 떠올랐다. 한국의 1세대 사진작가 임응식이 찍은 "구직(求職)" 작품도 촬영 시기가 비슷했던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 자료를 검색해 보니, "구직" 사진은 1953년 명동에서 찍은 것이었다. 임응식의 프레임 안에는 반질반질한 대리석 벽에 기대어 선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벙거지를깊숙이 눌러쓴 채 '일을 찾는다'라는 팻말 하나를 둘러 묶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명동 거리 한편을 채우고 있었다.



(c) Henri Cartier-Bresson


다른 공간, 같은 시선


1952년 겨울의 함부르크와 1953년의 명동.


전쟁의 참상이 채 가시지 않았던, 풍족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에 두 남자가 집을 나섰다. 오직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팻말을 목에 걸고, 또 몸에 묶고 길 위로 나섰다. 그날 아침, 낡은 외투를 걸쳐 입으며 오늘은 꼭 일자리를 찾겠다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중 한 명은 운이 좋아서, 저녁으로 먹을 고기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연 닿을 일 없었을 함부르크의 그와 서울의 그는 또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북해의 항구 도시를 거닐며 셔터를 누르던 브레송과 미도파 백화점 주변에 모인 명동의 인파 사이로 섞여 든 임응식이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을 품은 브레송과 임응식의 눈에는 일자리를 찾던 두 남성의 모습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비록 궁핍해 보여도, 삶의 무게에 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함부르크의 그와 명동의 그를 프레임 안으로 이끌었다. 두 작가는 사람을 사랑했기에 사람이 있는 풍경을 찍었고, 길 위에서 만난 삶의 풍경을 담았다. 


70여 년 전, 오늘날처럼 세상이 연결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말도, 사람도, 공기도 서로 다른 지구 반대편의 길을 걷던 두 사진작가가 비슷한 시선으로 순간을 포착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c) 임응식


사진, 말없이 통하는 소통의 언어


사진으로 쓰는 시각 언어는 두루 통하는 소통의 언어다. 말과 글은 서로 정해진 약속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구술, 문자 언어지만 사진의 시각 언어는 서로의 약속이 달라도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다. 


브레송과 임응식이 남긴 사진을 보며 새삼 이러한 진리를 깨닫는다. 우리는 1952년의 함부르크에 가 본 적이 없어도 브레송의 사진이 전달하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후 한국을 알지 못하는 독일 사람이 임응식의 사진을 보아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테다. 고난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마음이 카메라 프레임을 거쳐 인류 공통의 보편적 언어로 다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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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시 제목 Watch! Watch! Watch!》는 카르티에-브레송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 시각적인 사람입니다. 보고, 보고, 보죠. 눈을 통해서 사물을 이해합니다. (I am a visual man. I watch, watch, watch. I understand things through my eyes.)"에서 왔다.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브레송에게 카메라는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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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운은 이미지를 만나며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보고 읽는데 더 큰 흥미를 갖고 있으며, 뉴욕에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 탐방기인 『뉴욕, 사진, 갤러리』(2021)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