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막을 수 없이 사라진 공간들이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라진 그곳들은 공간을 꾸려나간 모든 이들의 기억과 남겨진 기록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어딘지 마음 한편에서 씁쓸한 감정도 든다. 여기 또 하나의 기억과 기록으로 사라질 공간이 있다. 25년간 한국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함께 나이를 먹은 대안적 성격의 공공기관 인미공(구 인사미술공간)이다.
새 천년인 2000년에 시작하여 수많은 전시와 연구, 프로그램을 선보인 인미공은 마지막 전시인 《그런 공간》과 함께 운영이 종료된다. 2025년 4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인미공은 어떤 공간인가’를 쌓여온 25년간의 파편들과 함께 정의해 보고자 하는 탐구적인 아카이브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공간을 채워온 작가들과 기획자들의 기억을 토대로 “인미공은 그런 공간이었죠.”라고 발화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본 글에서는 각 층마다 작품 한 가지와 함께 인미공과 인미공을 거쳐 간 많은 이들이 어떤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타임 패치워크〉, 2025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타임 패치워크〉는 신진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큐레이터 과정〉에 참여한 9명의 큐레이터 ‘아트-토커’(프로젝트 참여 당시 만들어진 팀명이다)가 구성한 인미공의 타임라인이다. ‘인사’, ‘미술’, ‘공간’으로 나누어 인미공에서 이루어졌던 전시 및 프로그램과 당시에 함께 발생한 사회 현상, 그리고 미술 동향을 연도별로 나열하는 이 작업은 인미공의 25년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이 전시가 끝날 때까지 수정되고 덧붙여진다는 점은 단순한 아카이브로는 정리되지 않는 인미공의 탐구와 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깥에서〉, 2025
김익현’= 작가의 〈바깥에서〉는 인미공에 남은 사진들을 통하여 인미공의 성격을 되돌아보는 작품이다. 지금의 인미공에는 없는 가구와 공간들이 담긴 사진들을 바깥의 풍경들과 교차시켜 ‘인미공의 안과 밖’을 연속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미술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제까지 관심을 갖고 이를 공간에서 함께 풀어내고자 했던 인미공의 실천들과 유사하다. ‘사진은 긴 여정의 부분이고 과거는 이 부분들로 미래와 소통한다’는 김익현 작가의 문장처럼 여정은 종료되어도 여전히 미래와 연결될 인미공의 자료는 방대하게 남아있다.
〈아카이브 복제 기록실〉, 2025
2006년 아카이브를 활용한 작업을 통해 인미공의 아이덴티티 사용 매뉴얼을 만들었던 ‘슬기와 민’은 2025년 다시금 이 매뉴얼을 들춰보고, 사용자의 이름을 지우는 새로운 작업을 진행했다. 기능을 상실한 매뉴얼이 과거의 자료로 아카이빙 되는 수순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 수순을 어긋내는 슬기와 민의 〈아카이브 복제 기록실〉 작품은 폐관 후 과거에 머무는 여느 공간들과 달리 인미공은 실체는 사라져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지는 않을지 지워진 색색의 공란들을 바라보며 생각하게끔 만든다.
〈프린트 숍: 단어, 개념, 이름 그리고 초상들〉,2025
사무공간이 있는 3층은 흩뿌려진 종이들,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듯한 크레용, 연필들의 불규칙한 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박보마 작가의 작품 〈프린트 숍: 단어, 개념, 이름 그리고 초상들〉은 인미공과 관련된 자료들에서 총 360여 개의 이름과 400여 개의 단어를 수집 후 AI를 통해 각본을 만들어 프린트한 작품이다. 관람객은 극본을 읽으며 인미공의 25년이란 하나의 극을 전개해 온 이들을 간접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커튼 뒤로 가려진 공간에서 여전히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인미공이란 극은 아직 맺음이 아닌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며 관람자는 이 결말을 함께 하는 등장인물이라는 특별한 감각 속으로 인도한다.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공간의 성격이 어떠했는가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인미공이 시도해 온 다양한 공간적 성격과 지원, 그리고 프로젝트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마지막이 다가왔음에도 여전히 ‘인미공은 그런 공간이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인미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인미공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인미공은 사라지는 하나의 공간이 아닌 여러 모습으로 채워지는 공간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먼 미래에 다시금 인미공을 들춰볼 때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기능의 공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