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렘 플루서는 그의 저서 『글쓰기에 미래는 있는가(Die Schrift: Hat Schreiben Zukunft?)』(1987)에서 인간이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을 갖게 된 것에는 문자의 사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서양 문자로 된) 텍스트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행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쌓아가는 형태를 띤다. 이는 곧 ‘서사성’으로 이어지며 역사의식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문자, 이처럼 행의 형태로 기호들을 나란히 배열하는 것이 역사의식을 비로소 가능케 한다. 행의 형태로 문자를 씀으로써 비로소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계산하고 비판하고 과학하며 철학할 수 있게 되었고―그리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인간은 순환 상태에서 맴돌았다(플루서, 2015, p. 23).

글쓰기라는 행위가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 맴돌던 사고를 선형적으로 바꾸어 정돈한다. 그리고 그렇게 새겨진(graphein) 텍스트는 독자를 향해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 정치, 과학, 철학은 모두 텍스트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구조화된 코드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신속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인간들보다 글쓰기를 더 잘 ‘수행’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텍스트를 읽는 우리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Chat GPT를 어느 정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텍스트를 마주했을 때 이것이 사람이 쓴 글인지, 인공지능이 쓴 글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인공지능 특유의 문체나 단어 사용, 구조를 알아차리면 왜인지 그 발신자의 호감도가 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것을 내가 끝까지 읽어야 하는지 묘한 거리낌도 든다. 필자는 그 이유가 ‘그럴듯함’에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으로 적당히 분량을 채우기 위해, 어딘가에 위치시키기 위해 ‘대충 그럴듯해 보이는’ 글을 만들어내면, 그런 ‘허울’로 가득한 세상이 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글을 쓴다는 것은 애초에 무엇을 표출(Ausdruck)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저자의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텍스트를 통해 논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능력을 길러 왔다. 여기에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발화하거나 글 쓰는 일을 멈추게 된다면, 기계가 이 일을 대신해 준다면, 생각을 기계에게 맡긴다면 커뮤니케이션 자체, 그리고 인간의 역사 자체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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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서는 저서 『몸짓들: 현상학 시론(Gesten: Versuch einer Phänomenologie)』(1991/1993)에서 기계 장치와 일(Arbeit)의 의의에 대해 언급한다.
과거에 인간은 어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일을 했고,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계 장치가 등장한 근대를 거쳐 현대로 넘어오면서 이 당위성이 사라졌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왜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가치인가’,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까지 도달하며 이 질문들에 답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제 일은 더 이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게 됐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계를 이용하는 대신에 점점 기계로 하기에 좋은(gut) 일을 향하게 된다.
과거에 대한 향수로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기능의 승리 이후에는 ‘현실’과 ‘가치’를 복원할 수 없다. 대상과 과정, 변증법과 계획의 자리를, 관계, 영역, 생태계, 형태 (Gestalt), 구조가 최종적으로 차지한다. ‘진실한 것’의 개념과 ‘선한 것’의 개념은 최종적으로 난센스의 블랙박스 속에 처넣어졌다. 인식론적 사고는 윤리적 사고와 함께 최종적으로 인공지능의, 전략적 사고와 프로그램 분석으로 대체되었다. 역사는 끝났다(플루서, 2018, p. 30).
참고문헌
빌렘 플루서, 『글쓰기에 미래는 있는가(Die Schrift: Hat Schreiben Zukunft?)』, 윤종석 옮김, 엑스북스, 2015.
빌렘 플루서, 『몸짓들: 현상학 시론(Gesten: Versuch einer Phänomenologie)』, 안규철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