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미술과 몸; 중세의 변형된 몸의 형상들
앞선 칼럼에서 살펴보았듯이, 변형된 몸에 관한 관심은 아득히 오래된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중세시대에도 지속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은 중세후기 1493년 하르트만 셰델(Hartmann Schedel, 1440-1514)에 의하여 출판된 <<뉘른베르크 연대기(Nuremberg Chronicle)>>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기독교적 시각에서 본 세계를 백과사전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중세 후반의 인쇄술 및 목판화의 발전을 집약적으로 잘 보여주는 책이다. 당시 세계의 지도와 여러 도시의 모습, 역사적 사건, 초상화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주목할 점은 변형된 인간의 몸을 가진 초자연적 인물들의 형상을 묘사한 삽화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사진 1).
<사진 1>
Umbrella Foot / Headless / One Eye / Six Arms / Hairy Lady / Half Horse,
Woodcut from the Nuremberg Chronicle, 1493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search=Nuremberg+chronicles+-+Strange+People&title=Special:MediaSearch&go=Go&type=image
외발인 사람, 머리가 없어서 눈과 입이 몸의 상체에 있는 사람, 외눈박이, 팔이 여섯 개인 사람, 온몸이 털로 뒤덮인 여성, 말의 하반신을 가진 남성 등의 삽화들을 볼 수 있는데, 중세인들은 유럽 대륙에서 아주 먼 미지의 지역에 이러한 변형된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사실, 이 형상들은 낯설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칼럼에서 살펴본 고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변형된 몸의 형상을 가진 존재들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사진 2).
<사진 2>
산해경(山海經)의 변형된 몸의 형상을 가진 존재들(서왕모 / 형천 / 제강)
출처: 몸과 미술 No.8 칼럼 참고.
고대 중국의 변형된 몸을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가 중세 유럽의 변형된 몸의 형상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그러나 고대 중국인들이 변형된 몸에 대하여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중세인들은 이러한 존재들을 놀랍게 생각하면서도 악마적이며 추(醜)한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변형된 인간 몸의 존재들의 기원은 로마시대인 기원후 79년에 저술된 <<박물지(Natural History)>>라고 할 수 있는데, 두 책의 상관성을 통하여 통해 중세시대까지도 변형된 몸에 관한 사유들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영향 아래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박물지>>에서 머리가 없으며 눈과 입이 가슴에 달린 블레미에스(Blemmyae), 말의 하반신을 가진 켄타우로스(Centaur) 등의 몸의 형상은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변형된 몸을 가진 그들과 다름이 아니다.
<사진 3>
Siebenlasterweib(Woman of seven vices)
RDK II, 269, Abb. 3. u. 4. Mettener Bibel, um 1414. München.
출처: https://www.rdklabor.de/wiki/Benediktusmedaille_%28Benediktuskreuz,_Benediktuspfennig%29
중세시대에 기독교가 유럽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서 파생된 변형된 몸의 형상은 기독교적 관념과 융합하여 또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사례는 여성으로 의인화된 칠죄종(七罪宗, seven vices, SALIGIA)이다(사진 3). 칠죄종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7가지의 근원적 죄로 교만, 인색, 시기(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의 죄들을 말한다. 중세후기에 여성으로 의인화된 칠죄종의 이미지를 보면(사진 3), 그녀의 옆쪽에 있는 성자(聖者)의 변형되지 않은 몸과 그녀의 몸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녀는 박쥐 또는 용의 날개를 달고 있으며, 다리는 하나뿐인데 그 다리는 흡사 새의 다리와도 같아 보인다. 그녀의 꼬리는 용이나 뱀의 것으로 보이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녀의 외발을 물고 있다. 또한, 그녀의 복부에는 두 마리의 개 머리들이 서로 맞대어 붙어 있다. 범상치 않은 그녀의 팔, 다리, 꼬리 등은 칠죄종 각각을 의미하며, 이를 고려하면 변형된 그녀의 몸은 상당히 부정적 시각에서 해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4>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oil on oak panels, 205.5 cm × 384.9 cm, Museo del Prado, Madrid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Garden_of_Earthly_Delights
이러한 중세의 변형된 몸에 대한 부정적 관념은 중세후기 네델란드 출신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의 회화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스는 괴물과 지옥을 소재로 한 인상적인 작품들을 많이 남겼기에 악마의 화가 또는 지옥의 화가라고 불리었다. 보스가 그린 괴물들의 몸의 형상은 <<뉘른베르크 연대기>>에 등장하는 변형된 몸의 존재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기괴하고 섬뜩하다. 또 다른 시점에서 보면, 더욱 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 차원 높은 상상력이 가미된 형상들이다. 보스의 3면화 대표작인 <지상의 환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을 보면, 왼편의 그림은 낙원인 에덴동산을 묘사한 그림이고, 중앙의 그림은 지상의 환락의 정원을 그린 그림이며, 오른편 그림은 지옥을 묘사한 그림이다(사진 4). 천국과 지상의 장면에서는 변형된 몸을 가진 동물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변형된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러나 지옥 장면에서는 변형된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들이 시야에 강렬하게 들어온다.
<사진 5>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Part of Hell), oil on oak panels, 205.5 cm × 384.9 cm, Museo del Prado, Madrid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Garden_of_Earthly_Delights
지옥 장면의 하단을 보면(사진 5, 좌), 인간의 몸의 형상에 새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네 개의 기다란 손가락을 가진 괴물이 눈에 띈다. 이 새 머리를 한 존재는 사람을 집어삼키고 있으며, 동시에 파란색의 반투명한 요강(그의 몸의 일부일지도 모르는)에 삼켰던 사람을 배설하고 있다. 새 머리 존재의 의자 밑으로 나뭇가지 팔을 한 엎드려있는 존재는 마치 우주인이 쓸 법한 투명한 구체의 반구를 쓰고 있으며, 그 옆의 검은 개인지 늑대인지의 머리를 한 존재는 네 개의 손가락을 가진 손으로 한 여인의 복부를 탐욕스럽게 부여잡고 있다. 지옥 장면 중앙 상단부를 보면(사진 5, 우), 거대한 한 남자가 허리를 잘린 채 엎드려있다. 그의 복부 속을 채우는 것은 그의 장기들이 아니라 지옥 버전의 술집의 풍경이 삽입되어 있다. 그의 머리에는 커다란 원반이 얹혀 있고, 그 위를 변형된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들(악마라고 생각되는 존재들)이 벌거벗은 채 겁먹은 인간들을 잡아끌며 거닐고 있다.
보스의 회화에서 인간의 변형된 몸을 한 존재들은 그들의 외모가 변형된 만큼 나쁜 짓을 하거나 기괴한 동작을 하고 있거나, 또는 부정적 상황에 노출되어있는데, 그로 인해 변형된 몸의 존재들은 악마이거나 악마적 존재로 인식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변형된 몸을 한 존재들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보스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독특한 회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회화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변형된 몸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악마적으로 인식했던 중세인들의 관념에서는 멀어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르네상스시대의 몸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