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미술과 몸; 중세인의 심장(하)
중세의 종교적 사랑도 세속적 사랑과 마찬가지로 심장과 관련되어 있었다. 성경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세속적인 사랑에 있어서 ‘심장’과 ‘마음’을 동일시했던 것처럼 종교적 측면에서도 심장을 마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거기에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찾게 될 것이다. 너희가 마음(심장)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 뵐 것이다." (신명기 4장 29절)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심장)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마르코 7장 21~23절)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께서 사람의 마음(심장)을 살피시고 정직함을 좋아하시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정직한 마음(심장)으로 이 모든 예물을 바쳤습니다." (역대기(상) 29장 17절)
이렇게 성경의 내용에서 보면, ‘마음’과 ‘심장’은 서로 대체 가능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는 신을 향한 무언의 기도나 묵상에 관하여 기록할 때 “마음으로”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마음으로”는 현대어인 “진심으로(With my heart)”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중세인에게 있어서 신앙은 그들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의 가장 중요한 정점에 있었으며, 성경의 내용은 그를 수반하게 하는 이정표였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기반으로 중세인들의 심장은 신과 인간의 연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몸의 장소였으며, 영혼 또는 정신이 기거하는 장소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세 초기부터 그리스도의 심장은 그가 겪은 수난과 인류를 위한 헌신적 사랑을 은유하였으며, 남겨진 여러 문헌과 예술작품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사진 1).

<사진 1>
좌: Miniature of Christ’s Side Wound and Instruments of the Passion, detail, folio 331r, in the Prayer Book of Bonne of Luxembourg, before 1349
우: The heart of Christ viewed through the wound in his side, illustrated in a Book of Hours made in the Netherlands, 1405~1413
출처: https://smarthistory.org/jean-le-noir-bourgot-miniature-of-christ-wound-passion-prayer-book-bonne-luxembourg/
Medieval Bodies: Life, Death and Art in the Middle Ages, by Jack Hartnell
12세기 신학자 클레르보 드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는 참된 기도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최초로 주장하였다.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롱기누스의 창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꿰뚫었으며 그 창에 의해 생긴 구멍에서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비밀(성스러운 피와 물)이 새어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심장은 ‘성심(Sacred Heart)’이라고 불리며, 육체적 기관인 심장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인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포함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심장을 향한 독실한 신자들의 의식과 의례는 ‘성심 공경(Cult of Sacred Heart)’으로 명명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기독교에서는 성심 공경을 통해 신을 향한 독실한 신앙심, 즉 종교적 사랑을 배우고 나아가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14세기와 15세기 초의 삽화에서 묘사된 그리스도의 심장은 롱기누스 창에 의해서 벌어진 옆구리의 상처 사이로 구멍이 난 모습으로 나타난다(사진 1). 그리스도의 심장은 아몬드 모양의 하얀색 껍질에 둘러싸인 야릇한 물체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미지의 중앙에 창에 찔린 벌어진 상처와 붉은 피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되게 만든다. 이러한 충격적 이미지는 그리스도가 겪은 수난과 인류를 위한 사랑에 관하여 독실한 신자들이 묵상하고 깨우침을 얻도록 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숭고한 사랑이 신자들에게 구원의 열쇠가 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비오 12세 교황(Papa Pio XII, 1876~1958)가 그리스도 성심 축일 제정 100주년 기념 회칙 「물을 길으리라(Haurietis Aquas)」에서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은 신자들 영혼에 여러 가지 천상 선물을 쏟아부어 준다”라고 언급한 것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매년 6월을 그리스도의 성심 성월로 지정하여 그리스도의 성심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2>
좌: The Sacred Heart and the Wounds of Christ displayed on a Cross
Bodleian Library Arch. G f.13, University of Oxford, 1490~1500
우: The Sacred Heart and the wounds of Christ displayed on a Cross, with Angels
Bodleian Library Arch. G f.14, 1490~1500, University of Oxford
출처: https://digital.bodleian.ox.ac.uk/objects/502960d2-6643-4e09-b60a-e4076e5a1242/surfaces/49b594cf-4c97-4790-8d6a-9c349c82d892/
https://digital.bodleian.ox.ac.uk/objects/30d89cdc-b1a8-4a3d-bc13-e537b4bd161c/
이전 칼럼에서 세속적 사랑과 관련하여 언급했듯이, 중세 후반의 미술에서 나타나는 심장은 하트(♥) 모양으로 묘사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리스도의 심장 모양도 중세 후반으로 갈수록 하트(♥) 모양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사진 2). 149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영국에서 제작된 책의 삽화를 보면, 이 이전에 그리스도의 심장이 벌어진 아몬드 모양의 상처 안에 부분적으로 묘사되었던 것과 달리, 명확한 하트(♥)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장은 그의 몸의 상처 입은 다른 부위들과 함께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할 당시 그의 심장의 벌어진 상처에서 떨어지는 성스러운 피와 물은 성배(성스러운 잔)에 담기고 있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며 상처 입은 손과 발은 심장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상처를 입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은 화면의 중앙에 놓인 하트(♥) 모양의 그리스도 심장의 상징성을 더욱 강화한다. 이러한 맥락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리스도의 심장은 하트(♥) 모양에 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할 때 썼던 가시면류관을 두르고 십자가와 함께 불을 뿜는 이미지로 정형화되고 있다(사진 3).
<사진 3>
현대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예술에 나타난 그리스도 심장의 이미지
출처: https://themiscellany.org/look-sacred-heart
중세시대에 심장은 의학적인 측면에서 그 기능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과 여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중심 매개체였다. 중세의 미술에서 심장은 인간의 가장 처절하고 애잔한 심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가장 신성한 마음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심장은 중세인들의 삶의 중심, 그리고 중세인들의 몸의 중심에서 그들의 감정적 측면을 대변하는 특별한 기관이었던 것이다.
*이번 칼럼의 전반부의 정보는 잭 하트넬의 <<중세 시대의 몸>>, 2023‘을 참고하였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중세의 미술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지속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