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성곡미술관에서 9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서울 오후 3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독립 큐레이터 이은주 선생님은 2천년대 초중반 사진을 원료로 다양한 회화 작업을 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습니다. 전시 제목의 “오후 3시”는 현실에 온전히 메이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박차고 떠나지도 못하는 중간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이제는 4~50대 중견 작가가 된 이들이 이십여 년 전에 그린 회화 작품 50여 점은 서울, 사진, 풍경의 키워드로 묶여 있습니다. 전시를 여는 1장 ‘서울에서 그리다’에서 기획자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에 집중한 작가들의 시선을 느껴보길 권합니다. 그들은 한강공원과 다리, 재개발 중이거나 재개발을 앞둔 동네들, 서울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공원처럼 수도 곳곳의 풍경을 캔버스 안으로 불러왔습니다.


2장 ‘사진에서 그림으로’는 이번 전시의 메인 키워드인 ‘사진’과 ‘그림’의 관계를 조금 더 파고듭니다. 이은주 선생님은 2천년대 초에 디지털카메라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서, 당시 젊은이였던 작가들이 스케치를 위해 사진을 찍고, 이를 원료로 그림을 그린 작업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콜라주한 사진들을 보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강렬한 플래시 섬광이 만든 콘트라스트를 물감으로 녹여 내고, 크롭하여 그린 인물화가 사진으로부터 우러나왔습니다. 2장 전시에는 작가들이 바탕으로 쓴 필름과 사진 원본이 한쪽 구석에 놓여 있어, 어떤 사진들에서 관객이 보는 그림이 나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1장과 2장이 서울과 사진에 주목했다면, 3장 ‘풍경 안에 그들이 있었다’에선 온전하게 그림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장소입니다. 자화상, 적막한 풍경, 김밥 먹는 순간의 네 컷 그림과 여름날 선풍기 바람 앞의 풍경이 화가가 그린 공간의 감정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줍니다. 필자는 이곳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좀 더 편안히 화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사실적인 그림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이 그림에 대한 사진의 충실한 목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2천년대 서울의 젊은 작가들은 사진이 그저 충실한 현실 복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창작에 아이디어를 더하는 밑바탕으로 쓸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을 자신만의 붓질로 재해석, 재구성하여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의 그림을 창조해 냈습니다. 플래시 불빛의 강렬함이 살아있지만, 불빛에 미친 먼지는 달과 별이 되고, 로모그래피처럼 네 컷으로 만들었지만, 찰나의 차이보다 조금 더 이어져서 흘러가는 시간의 느낌이 되었습니다.
그림 전시이지만 사진이 보이기도 하는 이번 전시는 필자 개인적으로 지난 몇 달 동안 본 전시 중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전시 기간은 12월 8일까지로 아직 여유가 있으니 꼭 한 번 관람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