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도슨트를 아십니까? | ARTLECTURE

도슨트를 아십니까?

-에피메테우스의 스물여덟 번째 질문-

/Artist's Studio/
by youwallsang
Tag : #도슨트
도슨트를 아십니까?
-에피메테우스의 스물여덟 번째 질문-
VIEW 2929

HIGHLIGHT


도슨트 :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일반 관람객들에게 작품, 작가
그리고 각 시대 미술의 흐름 따위를 설명하여 주는 사람. -네이버 국어사전

언젠가 한번은 말하고 싶었다. 지금은 조금 씁쓸하면서 약간 의기소침하고, 어느 정도 자괴감에 어깨가 내려앉은, 풀기 없이 시무룩한 시간이다. 이건 자의적 우울감이라기보다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구조적 우울감인 것 같다. 때마다 고용불안은 당연한 몫이고, 자원봉사자만 못한 기간제 노동자(전시 기간만 근무)임을 감사해야 하는 처지라니. 가끔은 ‘미술관의 꽃’이라 불리지만, 있어도 없고 없는 듯 있어야 하는 유령대접을 받는 이들이 미술관에 살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도슨트다.

“도슨트를 아십니까…?”



서울 한복판이건, 지방의 한적한 곳이건, 미술관은 주변 장소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공간특성을 갖는다. 미술관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일상을 내려놓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데이트 장소로, 즐거운 수다거리로 좋은, SNS 셀카 한 장으로 인증되는 취향의 품격. 미술관 나들이는 언제나,

.....

여기저기 입소문을 타는 유명 전시가 아니라면, 복닥거리는 어깨들과 힘겨룰 필요 없는 미술관은 나들이 장소로 완벽하다.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는 없지만, 동시대 젊은 작품들이 호기롭게 미술관을 채우고 있으니 시간을 보내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러나 문득 '이건 뭐라는 거지?' 싶은 갸웃거림 앞에서 걸음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누가 여기에 있는 걸까, 헤매고 있는 나를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누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가?





대단한 환호성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친절한 미술관이 관람과 감상을 돕기 위해 조용히 다가온다. 먼저 화이트 큐브의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이 시선을 틔운다. 집중하기 좋은 층고와 적당한 온도의 안락함. 예술을 감상하기에 완벽한 공간이다. 다음으로 그 공간 하나하나를 계획하고 작품으로 율동 시키는 전시 큐레이팅이 눈에 들어온다. 입맛 까다로운 손님을 위해 엄선된 작품들의 정연한 자리 배치. 벽을 따라 이야기를 입은 작품들이 리듬감 있게 흐른다. 전시는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이뤄진 식탁처럼 아름답고 맛깔스러워 보인다. 은근한 조명과 자신감 넘치는 작품들은, 모두가 다르면서도 하나의 주제를 따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작품을 위해 계획된 공간과 전시가 어우러져 또 다른 예술을 내보일 때, 어디선가 도슨트가 다가온다. 아름다운 공간에서, 위대한 작품들을, 솜씨 좋게 전시한 이 전시회를 관람객 앞으로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는 맛일지라도, 재료를 알려 주고, 요리사의 노력을 소개하고, 멋진 플레이팅을 일깨워주지 않는다면, 미슐랭 별 세 개도 그저 한 끼 식사일 뿐. 미술관 나들이가 사진 맛집 순례와 다르지 않고, 작품이 SNS 해시태그 한 줄에 불과하다면, 쾌적하고 멋진 건축물, 심오해 보이는 다양한 작품들, 우아한 동선, 그리고 말 많은 도슨트까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미술관의 모든 것들이 당신을 환영할 때 유일하게 박수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사람은, 건축가도 작가도 큐레이터도 아닌 도슨트. 미술관엔, 건축가도 작가도 살지 않는다. 큐레이터는 사무동의 무거운 책상 앞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그들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술관에 와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도슨트다.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을 지키며 정해진 시간에 도슨트를 준비하는 스텝 도슨트는 작가만큼이나 오래 작품을 마주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전시장에는 보안요원과 전시 지킴이 자원봉사자, 전시 도슨트 자원봉사자, 또는 보안요원의 일과 전시 도슨트를 겸하는 스텝 도슨트 등이 있다) 작품을 과시나 투자의 대상이 아닌 애정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첫 번째 예술애호가처럼, 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틈새의 잉여 시선으로, 도슨트는 열정(자원봉사자)과 전문성(보안요원) 사이에 끼어 비좁은 걸음을 걷고 있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판매원을 닮은 사람들이라 진저리를 치는 관람객도 있고,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듣고 있는 관람객도 있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자기 생각과 행위를 표현하고, 건축가는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큐레이터는 작품이 주목받도록 유연한 전시로 관람객을 이끄는데,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도슨트는 왜 미술관에 있는 걸까.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일 도슨트는 왜 남의 밥상에 굳이 숟가락을 얹는 걸까.

 




도슨트는 말발로 이루어진 아무 말 대잔치주최자가 아니다. 사회성 좋은 영업사원의 호객 행위도 아니다. 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해 고난의 질문들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모험가들이다. 매번 새로운 작품들과 매번 다른 방식의 질문들에 기꺼이 시달리며 그 모두를 관람객과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즐거운 고행자들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예술은 무용한 것일지 모르지만, 관계를 만듦으로 생겨나 비로소 유용해지는 예술의 효용이 관람객과 도슨트 사이에 있다. 작품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 그 관계가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술은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맥락을 부여하는 것, 나와 전혀 상관없었던 작품이 나와의 관계를 통해 새롭게 인식되는 것, 도슨트는 그 관계 맺기의 중간자로서 관람객과 작품 사이에 서 있다. 도슨트는 자원봉사자와 다르고, ‘~따위를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관계를 만들고 함께 예술로 다가가는 사람들이다. 작품과 의 끊임없는 사적인 관계를 만들어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는dosere 사람이 아니라 함께ensemble 걸어가는 사람이라 믿는다.

 



가장 오랜 시간, 작품과 마주하는 긴 시간, 사랑만으로 바라보며 누리는 시간, 도슨트의 시간이다. 아직도 여전히 관람객 앞은 두렵고 설레는 자리다. 달뜬 얼굴로 종달새처럼 떠들던 시간도 있었고, 관람객의 작은 제스쳐 하나에 마음이 상했던 시간도 있었다. 전시의 첫머리는 허니문의 시간이었고, 매일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은 권태기도, 애틋함도 느껴지는, 하루하루가 질리지 않는 연애와 같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약간의 굳은살과 잔 근육이 제법 튼실하게 붙어 웬만한 일에 끄떡없는 지금도, 얕은 불안이 행복을 파고든다.

나는 언제나 어제의 나를 후회하는 사람이다. 후회는 잘못을 깨닫고 반성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나는 언제나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나은 사람일 것이다. 비록 내일 다시 오늘을 후회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즐기자. 늦된 에피메테우스는 얕은 선택으로 어제를 후회했지만, 오늘은 최고의 미녀 판도라를 얻지 않았는가. 예술의 가십을 퍼 나르기보다 예술과 우리가 만나는 접촉의 순간을 지속시키기를 나, 도슨트는 바란다.

 

나는 도슨트입니다.

나는 도슨트였습니다

나는 도슨트이고, 싶습니다.”

 

늦은 원고의 변 - 몇 번을 갈아엎은 글이다. 자신을 톺아보는 글은 넋두리와 하소연과

분풀이로 얼룩졌다, 그때마다 멈춰주고 다독여 준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의 저자 가와우치 아리오씨에게 감사한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쓴이 youwall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