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게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전시’를 통해서 함께 결합하기 시작했다. 뮤지엄의 게임은 대개 ‘게이미피케이션’의 형식으로, 교육 또는 체험에 있어 흥미로운 요소를 가미하기 위한 학습적 장치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게임 그 자체를 전시의 주제로 사용하거나 메가 게임 IP와의 콜라보를 진행하는 등 오늘날 뮤지엄이라는 공간에서 게임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게임이 일종의 뮤지엄 브랜딩 수단으로써 활용된다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네덜란드의 반 고흐 뮤지엄이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각 기관은 뮤지엄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중과 친숙한 게임을 매개체로 삼아 일상적인 방식으로 관람객과 소통하려 노력하였다. 구체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미술과 게임의 흥미로운 접점을 찾아보는 «게임사회»를 통해 미술관의 예술성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였고, 반 고흐 뮤지엄은 포켓몬 컴퍼니와 협업한 «포켓몬X반 고흐»로 작품과 관람객을 연결하는 신선한 방식을 가시화하였다. 다음 단락에서는 각 사례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어떻게 뮤지엄과 게임이 상호 호혜적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은 여느 국외 현대미술관과 달리 기관명에 모던(Modern)과 동시대(Contemporary)라는 두 가지 단어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외부에 의해 주입되듯이 뮤지엄이 도입된 국내의 현대 미술사 흐름을 반영한 명칭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모던과 동시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현대미술의 상을 제시하는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중 «게임사회»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전시 연출이 아닌 ‘게임’ 그 자체를 새로운 전시물로 인식하고, 이를 참여와 관여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현대적인 몰입을 시도한 특징적인 전시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여 다양한 관람객의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게임’을 매개체로 삼아 현대미술과 게임에 있어 자신만의 접점을 찾아보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구성으로 작품이 전시되었는지는 다음 단락에서 돌아보도록 하자.
«게임사회»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는 비디오 게임이 세상에 알려진 지 50년이 흐른 오늘날,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예술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고자 기획된 전시로, 2010년부터 뉴욕현대미술관과 스미소니언 미술관이 수집한 비디오 게임 소장품과 국내 작품을 포함한 9점의 게임,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과 함께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는 총 ‘예술게임, 게임예술’, ‘세계 너머의 세계’, ‘정체성 게임’이라 는 3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우선 ‘예술게임, 게임예술’에서는 예술 게임의 정의와 매체로서의 게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 특징으로, 하룬 파로키, 코리 아칸젤의 작품과 뉴욕현대미술관의 게임 소장품 플로우, 플라워, 스미소니언 미술관의 <헤일로 2600>이 전시되었다. ‘세계 너머의 세계’는 ‘예술게임, 게임예술’의 메시지가 연장되는 공간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습을 게임에 투영하고 새로운 매체로 일상의 경험에 주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구체적으로 로렉스 렉, 재키 코놀리의 작품과 <심시티2000>, <마인크래프트> 게임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전시실인 ‘정체성 게임’은 게임과 사회의 강력한 동기화로 가속화된 세계의 확장을 살펴보고 게임이란 매체를 통해 공동체가 겪는 사회적 경험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지에 주목해 보는 공간으로, 뉴욕현대미술관의 팩맨과 포털 작품과 같이 직접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 작품이 많이 전시된 것이 특징이었다.
«게임사회»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는 오늘날 새로운 이야기가 창발되는 플랫폼이자, 사회적 경험의 사유를 제공하는 ‘게임’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하여 동시대적 감각으로 관람객에게 선보인 전시였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를 현대미술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의의가 있음과 동시에 국립현대미술관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 모던과 동시대의 접점을 새롭게 드러냈다는 측면에서도 «게임사회»에 함의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친숙한 매체로 뮤지엄의 정체성을 강화한 «게임사회», 앞으로의 국립현대미술관이 더 기대되는 이유가 이런 전시 덕분인 듯하다.
2. 반 고흐 뮤지엄 «포켓몬X반 고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Van Gogh Museum)은 개관 50주년을 맞아 모든 이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메가 게임 IP, 포켓몬 컴퍼니와의 공식 협업을 진행하였다. 반 고흐 뮤지엄은 고흐의 예술과 세계관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일본 문화와의 콜라보를 통해 특별한 뮤지엄 경험을 선사하고자 기획하였다고 전했다.
‘And we wouldn’t be able to study Japanese art, it seems to me,
without becoming much happier and more cheerful, (후략)’
고흐가 남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 일부 ©Van Gogh Museum
또한 기관장인 에밀리 고덴커(Emilie Gordenker)는 “반 고흐 뮤지엄과 포켓몬을 통해 다음 세대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과 인생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언급하며 기획전의 의도를 밝히기도 하였다. 2023년 9월 개최된 «포켓몬X반 고흐»는 홍보 티저 영상이 2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콜라보 굿즈가 하루만에 매진되는 등 폭발적인 팬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렇다면 반 고흐 뮤지엄에서는 게임 IP를 어떻게 뮤지엄과 작품에 녹여냈는지 구체적인 전시 현장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Van Gogh Museum
«포켓몬X반 고흐»는 반 고흐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콜라보 회화 작품, 포켓몬 어드벤처, 온라인 학습자료, 영상 가이드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전시실에서는 피카츄, 해루미, 잠만보 등의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활용한 회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반 고흐의 <Self-Portrait with Grey Felt Hat>에서 영감을 받은 피카츄의 자화상부터 해바라기 포켓몬 ‘해루미’로 만들어진 <해바라기>까지 반 고흐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포켓몬스터 게임의 재치있는 캐릭터들로 변형되었다.

©Van Gogh Museum
반 고흐 뮤지엄에서는 일본 문화와 공유된 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교육 활동을 개발했다. 1층의 회화 작품과 연계되는 ‘포켓몬 어드벤처’ 활동은 6세 이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6가지의 콜라보 작품을 따라 그림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는 구성이다. 포켓몬 어드벤처 활동을 완료한 참가자에게는 특별 프로모션 카드가 제공되는 등 어린이 관람객의 흥미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선보였다. 또한 피카츄 드로잉 가이드, 온라인 레슨 등 반 고흐와 일본의 연관성과 영감을 중심으로 한 학습적인 내용을 포켓몬스터를 통해 더욱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 하였다.

©Van Gogh Museum
이번 «포켓몬X반 고흐» 특별전은 단순히 게임과 뮤지엄의 협업을 넘어, 새로운 세대가 예술을 향유하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게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세대의 경계를 ‘게임’을 통해 넘나드는 반 고흐 뮤지엄은 오늘날 과거의 예술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였다. 반 고흐 뮤지엄의 «포켓몬X반 고흐»은 오는 2024년 1월 7일까지 진행될 예정으로 반 고흐와 포켓몬스터, 또는 뮤지엄의 게임에 흥미가 생긴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과거 뮤지엄이란 그릇에는 고정된 유물, 소장품, 작품만이 전시되었다면 이제는 예술의 울타리를 파괴하는 실험적인 콘텐츠들이 담기고 있다. 앞으로의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또 어떤 다른 ‘예술’이 담길 수 있을지 기대하는 바이다.
참고자료 국립현대미술관, 발간자료, “게임과 현대미술 그 경계에 서다 «게임사회»”, https://www.mmca.go.kr/artResearch/newsLetterInfo.do?nlId=202305150000922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유튜브 채널,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전시투어”, https://youtu.be/O-LBsNBW5j0?feature=shared
Van Gogh Museum, “Pokémon at the Van Gogh Museum”, https://www.vangoghmuseum.nl/en/van-gogh-museum-x-pokemon
Van Gogh Museum, News and press, “The Van Gogh Museum Partners with The Pokémon Company International”, https://www.vangoghmuseum.nl/en/about/news-and-press/press-releases/20230927-the-van-gogh-museum-partners-with-the-pokemon-company-international |